▲ 2008년에 한글판이 나온 그림책 <종이 비행기>
한림출판사
요사이 '어른그림책(어른만 보는 그림책)'이 바람(유행)을 타고서 잔뜩 나옵니다. 어른만 보는 그림책이 나쁘다고는 여기지 않으나, 여러모로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어른그림책은 아이가 볼 수 없거든요. 아니, 어른그림책은 아이를 아예 아랑곳하지 않는 얼거리로 나온 터라, '그림책'이라는 숨빛을 잊기 일쑤예요. 그야말로 '눈물달래기(위로·위안·치유·힐링·여행)'에서 멎고 멈추고 그칩니다. '그림책'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책은 모름지기 "누구나 읽고 누리고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철들어 살림빛을 작은씨앗으로 심어서 손수 일구고 깨우는 즐거운 걸음걸이"인 줄 모르는 셈입니다.
덧붙이자면, 그림책이 왜 "아이어른이 함께 누리는 책"이면서 '누구나책'이냐 하면, 처음부터 그림책은 '놀이 + 노래'를 바탕으로 '나 스스로 + 너랑 함께'라는 실마리로 이어서 '서로이웃 + 둥글게 두레 + 도우며 동무'라는 속마음을 담거든요. 한글판으로 나온 하야시 아키코님 그림책을 가만히 짚어 보겠습니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은 아이 스스로 내딛는 발걸음으로 집과 마을과 이웃과 새와 모두를 천천히 알아가고 사귀면서 기쁘게 일하고 돕는 마음을 웃음꽃으로 배우는 이야기입니다. <순이와 어린 동생>은 '나'도 어리지만, 나보다 어린 동생을 지켜보고 돌아보면서, 내가 어떻게 사랑 받으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목욕은 즐거워>는 뛰놀 적에만 즐거울 일이 없이, 씻고 치우고 갈무리하는 모든 일도, 그러니까 빨래하고 말리고 걷고 개는 일까지도, 언제나 즐거운 하루인 줄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숲 속의 요술물감>은 '예술'도 '문화'도 '교육'도 아닌 숲이웃하고 나란히 어울리면서 붓으로 노래하듯 놀면서 태어나는 그림이 아름드리나무처럼 아름답다고 하는 이야기를 밝힙니다. <종이비행기>는 어린이가 저희 손으로 한 땀씩 빚고 짓고 가꾸는 동안 서로서로 바람을 타고 바람을 가르고 바람하고 속삭이는 발걸음과 손짓이 노래로 피어나는 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래오래 아이 곁에서 읽히는 <달님 안녕>이며 <은지와 푹신이>이며 <숲 속의 숨바꼭질>이며 <오늘은 무슨 날>이며 <10까지 셀 줄 아는 아기염소>이며 <우리 친구하자>이며, 다들 아름답게 피어나는 붓끝으로 노래하는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994년에 한글판이 나온 그림책 <우리 친구하자>
한림출판사
붓 한 자루를 쥐고서, 그림책으로 숲을 짓는 길을 천천히 걸어온 분이 눈을 감았습니다. 모든 아름드리숲은 처음에는 씨앗 한 톨이었습니다. 우리 사람도 처음에는 더없이 작은 씨앗 한 톨이었습니다. 암꽃과 수꽃이 저마다 하나씩 품은 작은씨가 만나기에 풀과 나무로 자라나서 어느덧 푸른바람이 일렁이는 숲으로 거듭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마다 하나씩 품은 작은씨가 만나기에 아기로 태어나서 어느새 푸른들을 마음껏 달리며 뛰노는 작은사람으로 어버이 곁에 섭니다.
그림책숲을 이룬 쉰 해를 마감하고서 떠나는 길은 아쉽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누리고 즐기면서 그림붓을 이어받은 그림지기가 새롭게 있거든요. 다 다르게 그림붓을 잇고, 저마다 새롭게 그림길을 걷습니다. 놀이와 노래를 밑자락에 부드럽게 펼치고서, 살림과 소꿉과 일이 즐겁게 만나는 길을 차분히 엮어내는 손길이 반짝입니다. '살림'이란 "살리는 손빛으로 이루는 일"을 가리킵니다. 숨을 살리고, 몸을 살리고 마음을 살리기에 '살림'입니다. 살리는 손길로 하루를 지내기에 '살다'입니다. 모든 '사람'은 살림을 짓고 삶을 누리면서 사이를 새롭게 잇는 동안 사랑에 눈뜨고 사랑으로 일어서는 목숨붙이입니다.
숲으로 돌아간 그림님 한 분을 그리고 기립니다.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아흐레가 지나고서야 비로소 글 한 자락을 쓸 수 있군요. 고맙습니다.

▲ 1994년에 한글판이 나온 그림책 <은지와 푹신이>
한림출판사

▲ 일본 복음관서점은 2026년에 '하야시 아키코' 그림지기 쉰 돌을 기리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아직 한글판은 안 나왔습니다.
복음관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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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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