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교육감 출마 선언했던 강민정 전 의원
강민정 전 의원 제공
- 최근 제81회 청룡기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자'라고 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학생들과 관련된 문제가 큰 사회 이슈가 됐는데, 결국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혐오와 조롱이 문제가 된 거잖아요. 배재고 사태는 청소년 사이에 혐오 문화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교육계와 사회 일각에서 극우가 놀이화되는 청소년 문화를 걱정해 온 분들이 많았는데, 그게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논의의 출발점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 이것의 근본 문제는 뭘까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봐요.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 약화예요.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반민주주의적 의식이나 정서가 상당히 넓게 퍼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고요. 다른 하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혐오와 조롱이 일상의 문화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민주주의의 기초는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인데, 혐오나 조롱은 그 존중과 양립할 수 없어요. 예전에는 공적 공간에서의 혐오나 차별을 자제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많이 약화된 것 같아요. 상대에게 상처를 주든 말든 내 느낌대로 얘기해도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인식이 생긴 거죠. 이건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약화라는 사회 변화가 기저에 깔린 결과라고 봅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디지털 친화적인 세대라 스레드나 인스타그램 같은 매체 속에서 혐오나 차별이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퍼져 있었어요. 그동안은 공적 공간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청룡기 대회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까지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런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전면에 드러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몰라서 그랬다는 말이 많은데요, 그건 어떻게 보세요?
"5·18에 대해서 모르지 않아요. 고교 야구 선수들이고, 이미 학교 교육을 통해 배웠고, 수십 년간 해마다 5·18 추모식이나 기념식이 뉴스에 나오잖아요. 최근에는 5·18을 헌법전문에 넣자는 논의도 있었을 만큼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거고요.
이번 경기 상대가 광주일고였잖아요. 다른 학교가 아니라 광주일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그런 발언과 행동을 했다는 건, 배재고 학생들이 5·18과 광주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행동이라고 보는 게 맞아요. 그러니 몰랐다고 얘기하는 건 그 학생들을 과잉 엄호하려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운동부의 교육은 어떤가요?
"원래 학교 대표 선수들은 훈련을 위해 수업에 거의 안 들어와도 됐는데, 지금은 기본 수업을 다 이수하면서 훈련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저는 그게 맞다고 봐요. 초중등 교육은 시민이면 알아야 할 보편 교육이고, 선수도 그런 소양을 갖춰야 하니까요.
특히 학생 선수들 중에는 직업 선수로 진로가 풀리지 않는 아이들도 많은데, 나중에 다른 진로로 가게 될 때 기본 소양 없이 사회에 던져지면 너무 준비되지 않은 상태가 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도 수업을 병행하는 지금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배재고 사태 같은 문제가 터진 건 단지 학생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학생들의 전반적인 문화와 관련된 문제라고 봅니다."
- 아이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교과서 속의 박제된 지식일 뿐, 일상과 연결된 역사적 상처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 역사 교육이 학생들의 인식 체계에 실질적으로 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5·18 민주화운동이 아이들에게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오래전 일이긴 하죠. 그럼에도 학교에서 현대사 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조선도 배워야 하지만, 지금 우리 삶과 사회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가장 가까운 과거인 근현대사거든요. 그런데 우리 교육과정에서는 이 부분이 많이 부족해요.
고등학교에 근현대사 과목이 따로 생기긴 했지만, 5·18은 최근까지도 헌법 전문 수록이 쟁점이 됐을 만큼 학교에서 더 제대로 가르쳐야 할 주제예요. 배재고 사건이 학생들 사이의 극우 밈 놀이 문화를 사회에 드러낸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생님들이 5·18과 그 희생자를 혐오 대상으로 삼는 문화를 극복하도록 가르치려 할 때 겪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 어떤 거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선생님들이 5·18을 가르치다가 정치 편향이라는 공격을 받고 위축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선생님들이 교육적 관점에서 자유롭게 가르칠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다 보니, 정치적이거나 역사적인 쟁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환경이 만들어진 거죠. 민원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에게 해줘야 할 얘기를 제대로 못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해요. 그래서 교사의 정치 기본권 보장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이건 아이들이 역사관을 형성하고 비판적 의식을 갖는 데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 '스타벅스 가야지'가 5·18을 조롱하는 말이란 걸 모르고 있을까요? 오히려 역사적 맥락을 잘 알고 학생 선수들 자극하려고 한 거 같기도 한데요.
"일반적으로 혐오나 조롱은 약자를 대상으로 행해지죠. 아마 배재고 선수들도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피해자였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광주에서 비극이 일어났고 광주 학생들이 그와 간접적으로 관련 있다는 걸 아는 것과, 5·18의 역사적 맥락을 제대로 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
역사적 맥락을 안다는 건 사실로서의 역사적 진실과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까지 이해한다는 뜻이고, 그게 바로 역사교육의 의의죠. 그래서 역사교육을 제대로 받는다는 건 인권 존중과 국가 폭력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혐오 표현이나 특정 지역 비하를 '장난'이나 '밈(meme)'으로 소비하는 현상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너무 위험한 지점까지 왔고, 심각한 문제라고 봐요. 밈이나 놀이로 소비한다는 건 아무 문제의식 없이 재미로 즐긴다는 뜻이잖아요. 아이들에게는 그게 숨 쉬는 공기처럼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돼버린 거죠. 우리가 기대하는 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을 가진 시민으로 자라는 건데, 지금은 거기서 너무 멀리 가 있는 상황이라 안타깝고 걱정됩니다.
그래서 교육계, 정치계, 학계가 다 같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대책을 세웠으면 좋겠어요. 이 문제를 잠깐 떠들다가 없던 일처럼 넘어가서는 안 돼요. 청소년 문화의 심각성을 사회 문제로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청소년 디지털 문화 분석이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같은 대책도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진단과 해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논쟁·사과 과정서 광주일고 학생들 목소리 충분히 다뤄지지 않아"

▲ 지역 비하 성격을 가진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대표 선수가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사과문을 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사건 이후 학교 차원의 공식 사과나 묘지 참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셨어요?
"공식 사과 과정이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됐던 만큼 어느 정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을 거란 생각은 들어요. 배재고 학생들과 코치, 교장 선생님이 광주일고에 가서 사과문을 읽었고, 광주일고 교장 선생님도 사과와 반성을 받아들이며 격려의 말까지 하셨죠.
그런데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논쟁이 벌어지는 과정에서도, 사과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정작 상처받은 광주일고 학생들의 목소리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어요. 배재고를 어떻게 징계할지, 무엇이 문제인지는 많이 얘기됐지만, 광주일고 학생들이 어떻게 느꼈고 사과에 납득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죠.
대신 어른들이 화내고 비판했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치유됐을 수도 있지만,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됐던 아이들의 치유가 충분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에요. 이벤트성으로 사과문 한 번 읽고 묘역 참배한 것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무엇이 필요할까요?
"학교 안팎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충분히 얘기할 수 있어야 해요. 공식적으로 사과했으니 끝이 아니라, 배재고 학생은 학생대로, 광주일고 학생은 학생대로 사건과 사과 이후 과정을 어떻게 느꼈는지 얘기할 기회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걸 놓치지 말아야 해요. 마치 하나의 의식 행사를 치르듯 끝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 스포츠 교육 현장에도 인권 교육이 필수적으로 도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교육 현장에 녹아들어야 할까요?
"선수들도 기본 교육 과정을 이수하니까, 수업 안에서 인권 교육이나 역사 교육이 기본적으로 이뤄져야 해요. 이번 배재고 사건으로 학교 대표 선수들에 대한 인권 교육의 필요성이 더 분명히 드러났다고 봐요. 다만 보여주기식 일회성 교육이 아니어야 하고, 제대로 된 스포츠 정신 교육 자체가 곧 인권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량이나 기술 훈련만 중심에 두지 말고, 스포츠 정신에 대한 교육도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하죠.
이번 사건은 전국 모든 학생 선수에게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배재고 학생이 사과문에 '이기고 지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와 인성도 중요하다는 걸 이번에 배웠다'고 썼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앞으로 스포츠 선수들의 훈련과 교육 과정에서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아이들의 언어는 어른들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정치권이나 미디어에서 지역 혐오를 공공연히 사용하는 현실 속에서, 교육 현장의 아이들에게 '혐오를 멈추라'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처음에 말씀드렸듯 이번 배재고 사태는 우리 사회 문제의 반영이자 결과예요. 정치권과 사회가 반성해야 할 문제죠. 정치권에서도 멸칭을 쓰고 혐오나 조롱성 공격을 남발하고 있잖아요. 어른들, 특히 정치권이 자기 객관화를 해야 해요. 배재고 학생들에게만 할 얘기가 아니고, 단순한 표현의 자유 문제도 아니에요. 연예인과 정치인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큰데, 학생 선수 교육만 얘기할 게 아니라 정치 스스로도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경기장에서 인종차별이나 장애 비하 같은 사소한 혐오 발언에도 강한 제재를 받는다고 하잖아요. 꼭 경기 중이 아니어도, 학교 규정이나 스포츠 경기 규칙에 혐오·조롱 행위를 제재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더 근본적으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뤄져야 사회 전반의 혐오와 차별에 대한 기준선이 마련될 수 있어요. 법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인데, 국회에서 번번이 좌절돼온 차별금지법 제정도 이번 사태로 드러난 문화를 바꾸는 데 중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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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사태, 사과·묘역 참배가 끝 아냐... 아이들 충분히 치유했나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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