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 부지에서 수원을 찾자, '레인팹'을 제안한다

200mm 폭우도 새로운 수원이 된다… 빗물을 붙잡아 홍수를 줄이고 산업용수를 확보하는 새로운 물관리 모델

등록 2026.07.10 14:47수정 2026.07.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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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부지에도 새로운 수원이 있다

오늘도 중부지방에는 2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하천은 범람하고 도로는 물에 잠기며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하루빨리 비가 그치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몇 달 뒤 가뭄이 찾아오면 우리는 다시 물 부족을 걱정한다. 홍수와 가뭄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같은 비가 때로는 재난이 되고, 때로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 된다. 결국 문제는 비의 양이 아니라 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물을 어디에서 더 가져올 것인가를 고민해 왔다. 댐을 짓고 광역상수도를 연결하며 재이용수를 확대하는 정책은 앞으로도 필요하다. 그러나 공급만 늘리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질 때다. 반도체 공장 부지 자체를 새로운 수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나는 이러한 새로운 개념을 레인팹(Rain Fab)이라고 제안한다. 레인팹은 공장 부지에 내리는 빗물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용도에 맞게 공급하는 산업 물관리 시스템이다. 핵심은 빗물을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가 아니라, 공장 부지를 하나의 수원으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에 있다.

새로 조성되는 반도체 산업단지를 약 250만 평(826만㎡)이라고 가정해 보자. 오늘처럼 200mm의 폭우가 내리면 하루에 약 165만 톤의 빗물이 공장 부지에 떨어진다. 물론 이 물을 모두 저장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일부만 활용하더라도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수원이 만들어진다.

수질에 따라 두 종류의 물을 공급한다

레인팹은 모든 빗물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빗물도 용도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가장 깨끗한 지붕 빗물은 별도로 모아 고도처리를 거친 뒤 반도체 공정용수의 원수로 활용한다. 반면 도로와 주차장에 내린 빗물은 화장실 세척과 청소, 조경, 냉각탑 보충수 등 기타용수로 이용한다.


레인팹(Rain Fab) 개념도 레인팹(Rain Fab)은 반도체 공장 부지에 내리는 빗물을 새로운 수원으로 활용하는 산업 물관리 모델이다. 지붕의 깨끗한 빗물은 처리 후 공정용수로 이용하고, 도로·주차장 빗물은 별도로 집수하여 조경·청소 등 기타용수로 활용하는 수질별 이중급수 개념을 나타낸다.
▲레인팹(Rain Fab) 개념도 레인팹(Rain Fab)은 반도체 공장 부지에 내리는 빗물을 새로운 수원으로 활용하는 산업 물관리 모델이다. 지붕의 깨끗한 빗물은 처리 후 공정용수로 이용하고, 도로·주차장 빗물은 별도로 집수하여 조경·청소 등 기타용수로 활용하는 수질별 이중급수 개념을 나타낸다. 한무영

이처럼 수질에 따른 이중급수 체계를 적용하면 모든 물을 최고 수준으로 처리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곳에는 가장 좋은 물을 공급하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그 용도에 맞는 물을 공급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며 지속가능하다. 결국 레인팹은 새로운 정수기술이 아니라 같은 빗물의 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물관리 시스템이다.

이미 검증된 철학, 이제 산업으로 확장할 때다


이러한 생각은 새로운 상상이 아니다. 나는 2003년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 주상복합아파트를 설계하면서 100mm 강우까지 외부로 방류하지 않는 무방류 빗물관리 시스템을 적용하였다. 저장된 빗물은 생활용수와 소방용수로 활용되었으며, 이 시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지역의 홍수 한번 난적 없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국제물협회(IWA)의 대표 잡지 Water21의 커버스토리로 소개되면서 세계적인 빗물관리 사례로 인정받았다. 레인팹은 이 철학을 반도체 산업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도시에서 가능했던 일이 산업단지에서는 더 큰 규모로 구현될 수 있다.

2001년 김대중 정부는 세계 최초로 수도법에 빗물이용시설을 제도화하며 물수요관리라는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다. 이제는 그 철학을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발전시켜, 산업도 스스로 새로운 수원을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 내린 165만 톤의 빗물을 모두 저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방울도 생각하지 않는 것과 일부라도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든다.

반도체 공장 부지에도 이미 수원이 있다. 레인팹은 더 많은 물을 요구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장 부지에서 새로운 수원을 찾는 산업 물관리 철학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반도체와 물' 연재의 네 번째 글입니다.

앞선 세 편에서는 반도체 용수 문제를 단순한 물 부족이 아니라 물관리 방식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어 기후위기 시대에는 공급 확대만이 아니라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이는 분산형 물관리가 필요하며, 최근 빈번해지는 200mm 이상의 집중호우도 새로운 수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구체적인 산업 모델인 '레인팹(Rain Fab)'으로 정리했습니다. 레인팹은 반도체 공장 부지에 내리는 빗물을 새로운 수원으로 활용하는 개념으로, 깨끗한 지붕 빗물은 공정용수로, 도로와 주차장의 빗물은 조경·청소 등 기타용수로 활용하는 수질별 이중급수를 기본 철학으로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1년 세계 최초로 수도법에 빗물이용시설을 제도화하며 물수요관리 시대를 열었고, 2003년 스타시티를 통해 대규모 도시 빗물관리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이제 이러한 경험을 반도체 산업으로 확장한다면, 대한민국은 산업 물관리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도체 기술뿐 아니라 물관리 철학까지 수출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레인팹을 단순한 새로운 수원이 아니라, 홍수 저감과 가뭄 대응, 화재 예방, 폭염 완화까지 아우르는 '기후위기 적응 인프라'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같은 시설이 어떻게 여러 기후위험에 동시에 대응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이것이 미래 산업의 경쟁력이 되는지를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레인팹 #빗물관리 #반도체용수 #스타시티 #빗물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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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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