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기초의회는 중요하다"

국민권익위 조사관에서 지방의회 전문위원으로 , 이일우 전문위원이 말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등록 2026.07.10 15:14수정 2026.07.1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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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에서 지방의회 전문위원으로. 스펙만 놓고 보면 '거꾸로 간' 이력이다. 월급도 줄었을 법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일우 전문위원은 10년째 지방의회 현장을 지키며 두 권의 책을 냈다. 최근작 제목은 <어쨌든 지방의회>. 그는 지방의회를 향한 세간의 비판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비판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한다. 다만 그가 하려는 일은 폭로가 아니라 변호다. 온갖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기초의회는 왜 필요한가, 그 '어쨌든'이라는 부사에 그의 결론이 담겨 있다.

왜 지방의회였나

권익위 시절 그는 주택·건축 분야 조사관이었다. 재개발·주택금융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임대주택 퇴거자, 이행강제금 민원 등 주거복지 영역만은 애정을 갖고 버텼다. 그러던 중 조사관들 사이의 농담이 진로를 바꿨다. "민원 조사는 결국 행정 집행이 끝난 뒤의 이의 제기이니 일종의 '설거지' 아니냐. 설거지도 의미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밥을 짓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게임의 룰인 법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국회 보좌관을 꿈꿨고, 경력을 쌓기 위한 차선책으로 지방의회를 택했다. 서울시의회에서 1년, 이후 기초의회로.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은평시민신문
책 제목에 담긴 뜻

원래 그가 염두에 둔 제목은 '아무튼 지방의회'였다. 좋아하던 '아무튼 시리즈'에 착안한 것이다. 출판사가 "식상하다"며 비슷한 뜻의 다른 단어를 제안했고, 그렇게 '어쨌든'이 됐다.

그는 이 단어에 하고 싶은 말의 결론을 담았다고 했다.

"지방의회와 지방의원이 주민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잘 압니다. 외유성 해외연수, 각종 비리, 갑질, 그런 비판이 왜 나오는지 저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역사와 선진국의 정치 제도, 우리 지방자치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보면 지방의회만한 민주주의 제도가 없습니다. 약점이 있고 미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하다 그 뜻이 '어쨌든'입니다."


"기관대립형 지방의회는 없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기초지자체에는 (지방의회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중요하다면서 없다니,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없어야 한다'가 아니라 현실을 짚은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지방자치 교과서는 정부 기관 구성 형태를 기관대립형(집행기관과 의회가 견제·대립), 기관통합형(의회가 집행기관을 선출), 혼합형으로 나눈다. 우리 지방자치법은 집행기관과 의회의 역할·권한을 나눠 서로 견제하도록 한 '기관대립형'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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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은 대립은커녕 거의 한몸입니다. 특히 기초 지자체가 그래요. 구청·군청 팀장이 '어릴 때부터 보던 사람'이고,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집 자녀고, 조기축구회 후배고, 아파트 동대표의 남편이 공무원이고… 이렇게 얽혀 있으니 견제와 대립이 쉽지 않습니다."

그가 말한 "없다"는 곧, 교과서에 나오는 기관대립형 구성 형태로서의 지방의회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선거 때 구청장 후보와 의원 후보가 '원팀'을 외치다 당선 후엔 견제 관계로 돌아서야 하는 모순도 같은 맥락이다.

"선거 때가 제일 하이라이트지만, 평상시에도 그렇습니다."

그는 이를 이식된 제도의 적응 과정으로 봤다. 서구는 오랜 시간에 걸쳐 분권이 형성됐지만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9년에 지방자치법이 제정· 공포되어 법제화됐다는 것이다.

"중앙집권적 문화가 여전하고 토착적·연고주의적 문화가 강한 상태에서 기관대립형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죠. 그렇다고 헌법과 법률이 위임한 제도를 형해화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30년의 단절

지방자치사의 가장 치명적인 대목으로 그는 군사정권기의 공백을 꼽았다.

"1961년 5·16 이후부터 1991년 지방자치 부활까지 약 30년의 단절.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 30년을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어왔다면 우리 지방자치와 지방의회가 지금보다 훨씬 성숙했을 겁니다. 촛불 때 보셨듯 우리 국민의 필터링 능력은 충분합니다. 그 성숙의 계기가 강압적으로 끊긴 것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자질론'은 본질을 가린다

"어쩌다 저런 사람이 공천, 당선됐나" 싶은 기초의원이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자질론'이 본질을 가린다고 본다. 신영복 선생의 "우리 시대 정치인의 얼굴은 우리들의 얼굴"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두 가지 구조적 원인을 제시했다.

첫째는 공천이다.

"수준 낮은 지방의원은 수준 낮은 공천의 결과입니다. 전·현직 국회의원을 포함한 지역위원장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국회의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만 보고 뽑은 유권자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열악한 지방의회 사무기구다.

"괜찮은 분이 들어와도 조례 하나 만들려 하면 '이래서 안 됩니다, 저래서 안 됩니다' 태클이 많고, 예산을 조정하려 해도 구청장 입김이 크죠. 이 두 가지를 말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비리나 외유성 연수만 문제 삼으면 '수박 겉 핥기식 비판'이 될 뿐입니다."

"의회직은 법률 용어가 아니다"

그는 사무기구 인력의 구조적 한계도 짚었다. 지방의회 직원은 집행기관인 구청·시청·군청에서 1~2년 나온 '파견직'과, 의장이 임용장을 준 '의회 소속 직원'으로 나뉜다. 실무상 후자를 '의회직'이라 부르지만, 이는 법률 용어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개인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공백이라는 점을 그는 분명히 했다.

"지방공무원법상 의회 직렬이 없습니다. 건축직·토목직·속기직처럼 별도 직렬이 없어요. 의장에게 임용장을 받았을 뿐 신분은 여전히 행정 직렬입니다. 승진과 인사가 집행기관에 매여 있으니, 아무리 성실한 직원이라도 의회를 온전히 보좌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죠."

대안은 지방의회법 제정을 통한 의회 직렬 신설이다.

"기술직이 서울시 전체로 인사를 도는 것처럼, 의회 직렬을 만들어 기초의회끼리, 광역과도 인사 교류가 가능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인물을 벗어나 사무기구에 활력이 생깁니다. 직원 탓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문제입니다."

흑백논리를 경계한다

그는 자신의 시각이 처음부터 이렇게 균형 잡혀 있던 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첫 책을 쓸 무렵엔 행정직에 대한 적대감이 컸다는 것이다.

"서울시의회를 그만두고 1년쯤 쉬면서 성찰해보니, 임기제냐 행정직이냐로 편을 가르는 게 다가 아니더군요. 실력 없이 정치질만 하는 임기제도 있고,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행정직도 있습니다. 흑백논리로 보는 건 큰 오류였다고, 두 번째 책에 솔직하게 고백했습니다."

그의 비판이 특정 집단을 향한 것이 아니라 관료주의 일반과 제도의 공백을 향한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정활동 보좌 시스템의 격차를 그는 유통업에 빗댔다. 국회는 백화점, 광역의회는 대형마트, 기초의회는 편의점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9명의 보좌진을 둔다. 광역의회에는 입법담당관·예산담당관 등 입법조사처·예산정책처에 준하는 조직이 있고, 상임위마다 실·국별로 입법조사관이 배치된다. 반면 기초의회는 전문위원 서너 명과 정책지원관이 전부다.

"제가 수석전문위원이지만 결재권도 부하 직원도 없습니다. 검토보고서를 쓰고 의원들께 자료와 질의서 팁을 드리는 정도의 영향력으로 함께 의정활동을 만들어갈 뿐, 제도적으로 보장된 건 없습니다."

조례 하나를 만들 때 광역의원은 상의할 전문가가 즐비하지만, 기초의원은 전문위원과 정책지원관 외엔 없다.

정책지원관, 아직은 과도기

기초의회에 도입된 정책지원관 제도에 대해서는 '과도기'라는 진단을 내놨다. 현재는 지원관 1명이 의원 2명을 담당하는 구조여서 신뢰 관계 형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의원을 동시에 모시는 지원관 입장에선 질의서를 어떻게 씁니까. 같은 당 안에서도 특정 사업에 찬반이 갈리는데요. 정책지원관은 의원 1인당 1명이 맞습니다. 예산만 늘리면 되는 부분이라 행안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압니다."

지방의회법, 왜 필요한가

현행 지방자치법의 가장 큰 문제로 그는 "덩치가 너무 크다"는 점을 들었다.

"현행법 조항 상당수가 지방자치 일반에 관한 사항이고 주로 단체장의 권한에 많이 할애돼 있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입니다. 지방의회의 역할을 부각하고 힘을 실으려면 별도의 독립법인 지방의회법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 사안이 행정안전부 소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는 점을 들어 제정 가능성을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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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의 효능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예산을 몇억 깎지도 못하면서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적 시각에 대해 그는 정면으로 답했다.

"국회조차 그 많은 보좌진을 두고도 정부 예산안에서 0.몇 퍼센트를 삭감합니다. 하물며 기초의회는 어떻겠습니까. 동작구만 해도 집행기관 직원이 1400여 명, 예산은 약 9000억 원인데, 의회 사무기구는 38명입니다. 그중 운전직·방호직을 빼면 실제 정책을 보좌하는 인력은 몇 명뿐이죠. 매일매일 노량해전이 벌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효능감의 잣대도 삭감액만으로 재선 안 된다고 했다.

"조례안, 5분 발언, 민원 해결까지, 주민의 정치적 욕구를 의원이 대신하는 모든 활동이 효능감입니다. 한 측면만 부각해 비판하는 것은 침소봉대예요. 학교에서 체벌 사례 하나로 교사를 없애자는 것과 같은 논리 비약입니다." 그는 다만 직관적으로 와닿는 비판이 더 힘을 얻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길게 설명하면 들으려 하지 않죠. 전체적인 이해도가 높아져야 합니다."

주민자치, 그리고 지역 언론

강원국 작가가 쓴 추천사 "지방의회가 바로 서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반쪽짜리다"의 나머지 반쪽을 묻자, 그는 "주민자치"라고 답했다. "지방의회가 간접민주주의로 주민 의견을 대변하는 기관이라면, 부족한 부분은 주민자치가 함께 채워야 합니다. 양자는 상호보완 관계입니다." 미숙함은 운영의 문제이지 설계 취지의 문제가 아니며, "폐기할 것이냐 보완할 것이냐는 결국 주민이 선택할 몫"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시민의 무관심을 깨는 열쇠로 지역 언론을 꼽았다.

"주민들은 각자도생의 각박한 환경에서 스스로 지방의회를 찾아볼 여력이 없어요. 결국 언론이 정리해 취사선택한 것을 소비할 뿐입니다. 지역 언론이 죽어가는데 지방의회가 살 수 있겠습니까. 지역 언론과 지방의회는 상당히 밀접한 공생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의회에서 일하길 잘했다고 느낀 순간을 물었다. 그는 신간의 '가방 끈' 꼭지에 쓴 한 의원 이야기를 꺼냈다.

학력은 짧지만 60대의 그 의원은 오래 미뤄져 온 동 복합청사 건립을 임기 중 가시화하려 5분 발언, 구정 질문, 상임위 질의를 거듭했다. 마침내 기공 단계에 이른 어느 날, 버스 안에서 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목소리가 격앙돼 있었다.

"동장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이제 진도가 나가 주민들에게 이걸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그동안 미뤄지기만 하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는데 이제 가시화됐다고, 동 주민센터 여러 단체장들에게 임기 중 이걸 해냈다고 자랑할 수 있게 됐다고… 어린애처럼 신나서 얘기하시더군요."

부지 선정부터 부서와 협의하고, 어르고 달래가며 지역 현안을 가시적 성과로 만들어낸 과정. 그는 그때 확신했다고 한다. "아, 이래서 동네 구의원이라는 편의점이 필요하구나." 온갖 미숙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쨌든' 지방의회를 붙드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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