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환경 연구"를 목표로 반년간 <문학과 환경>이 2002년 12월 창간되었다. 문학과 환경학회에서 발행했다.
문학과 환경학회는 고문 김우창·김종철·성찬경·이동승·이명성·정진농·정현종·홍기삼, 회장 정정호 등 학계의 중진급 인사들이 참여한 학회다. 학회는 기관지 <문학과 환경>을 창간하고자 편집위원 김동윤·김명복·김홍민·박인찬·박태일·사순옥 등을 위촉하고, 발행인 최열·편집인 정정호, 발행처 도요새이다.
창간호는 '환경과 인문과학', '개인의 언어와 공동체의 언어', '생태사회를 위한 문학' 등의 논설을 실었다.
정정호 회장의 창간사 앞 부분이다.
환경생태계의 위기는 오늘날 인간이 만들어낸 근대 문명의 최대의 화두이다. 진보신화와 발전논리라는 주거너트의 마차는 이제 제동장치가 망가진 채 무서운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죽음과 유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지구상의 미중유의 생태교란의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이제 환경오염이나 생태위기의 문제는 개발론자나 환경정책당국자 또는 환경공학자들, 그리고 환경운동가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환경문제는 인문학자들도 모두 나서야 하는 전면전이 되었다.
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도 인간중심주의문명의 위기라는 황야의 한가운데 놓이기 되었고 바로 이 지점이 문학지식인들이 개입할 곳이다. 문학이 그 동안 현실사회개혁이나 문명비판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으나, 이제부터는 오늘날의 환경생태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우리의 마음을 바꾸고 근대문명 자체의 판을 새롭게 짤 수 있는 아젠다를 채택해야 한다. 이것이 2001년 10월에 국내에서 문학과 환경학회가 창간된 소이이다.
사실상 문학은 이미 언제나 환경생태적이다. 문학의 문(文)은 무엇보다 중국의 상형문자의 기원으로 볼 때 인간의 가슴에 새겨진 자연의 무늬(紋)란 뜻을 가질 수 있다. 문학은 천지인(天地人)의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따라서 문학은 자연을 모방하는, 자연의 무늬를 그리는 공부이며 학문이다.
또한 문(文)은 가슴에 문신(紋身)을 새기는(각인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즉 피 흘리고 고통을 당하는 상처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인간의 문화(文化)는 야생과 순수한 자연을 인간에게 맞게 비틀고 다시 만들어내는 일종의 폭력(상처)이 아니겠는가?
문자라는 것은 한문의 경우 대부분 상형문자처럼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다시 변형시킨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문(文=紋)자가 들어가는 '문화', '인문학', '문학' 모두가 자연의 무늬를 거울에 담아내는 모방의 즐거움 뿐 아니라 자연에 상처를 내어 고통을 주는 양가적인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작가, 시인이던 연구자이든 일반 독자이던 환경생태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할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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