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 담임전도사와 당진제일감리교회 / 60대 초반의 나이에 신학대학원에 입학해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담임전도사로서 교회를 이끌고 있는 삶은 은퇴 후의 ‘막막함’을 ‘사명’으로 바꾼 사례다.
김영숙
- 은퇴 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신 것이 주변에서는 파격적인 결정으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가족과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퇴직하기 1년 전부터 신학대학원에 다닌다고 했을 때부터 다들 교직에서 고생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는 좀 쉬라고 했어요. 남편도 반대했어요. 당신 못 한다고, 어렵다고, 뭘 그걸 하려고 하냐면서 말리더라고요. 애들도 엄마 하지 말라고, 엄마가 뭣 때문에 그걸 해? 퇴직하면 아빠하고 같이 놀러 다녀! 힘드니까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냥 하고 싶더라고요. 대단하다고 격려해주는 지인도 있었어요.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서 장학금도 받았고 또 석사 학위 두 개, 박사 학위 하나 받은 걸 명함에 새겼어요. 여자 목사로서 나는 전문가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를 무시하지 말라는 포석이지요."
-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신학 공부부터 전도사로서의 사역까지, 체력·경제·관계 등 현실적인 장벽도 있었을 텐데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가장 힘들었던 건 주위에서 약간의 질투도 하고, 당시 당진시에는 여자 담임목사가 없었기에 왜 당신이 목회를 하려고 하냐면서 교인 몇 명이 떠났어요. 어쩔 수 없는 그분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선생하다 그만뒀으면 됐지, 뭘 또 목사를 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선생은 우습게 봤다가 목사님은 우러러봐야 하니까 껄끄러운가 봐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부대껴야 하는 사람 관계가 제일 힘들었어요.
교회 여건을 감안해서 남편 뒤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처음에는 내가 특별한 능력도 없는데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어요. 목사 사모의 역할과 목회자의 역할은 다르잖아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신학 공부와 학교생활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신학 공부 내용이 제가 대학 다닐 때 배웠던 미술사와 많이 연결되니까 머리에 쏙쏙 들어왔어요. 제가 아직은 건강하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하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부분은 웬만하면 아끼고 불필요한 곳에 안 쓰고 악착같이 모으는 거예요. 경제적으로는 제가 철저히 준비해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어려웠어요. 개인 간의 다툼이나 갈등도 있지만 교회 사이에도 갈등이 많았어요. 제가 당진에서는 유일하게 혼자 여성 목회자가 된 거잖아요. 이걸 또 질투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제는 많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지만,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제가 하나님을 따르고 믿는 사람이니 믿음을 가지고 버티고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서 극복했죠."

▲교회 장학금 수여식 / 김영숙 전도사는 장애인, 교회 근처 치매 할머니,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도 많이 돌보는데, 이런 돌봄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까지 수료했다.
김영숙
- 은퇴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전도사님처럼 완전히 다른 길에 도전하려 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나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은퇴 후 막막함을 느낄 때는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책을 읽거나 관련 영상을 찾아보는 등 작은 노력이라도 이어가야 합니다. 뭘 하든지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행운도 따라줄 거라 믿어요. 은퇴하고 나와 보면 의외로 할 일이 많더라고요. 요양보호사도 있고, 장애인 돌보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도 있고, 주변 도로에 보면 신호수도 있어요. 너무 좋은 일만 찾으려 하면 없지만, 정말 내가 낮은 자리에 가서 일하겠다고 생각하고, 부족하지만 내 손길이 필요한 곳, 채워야 할 빈틈이 있는 곳을 찾아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 보세요.
저는 목회 활동을 하지만, 요양보호사랑 장애인활동지원사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고, 제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도 하고 있어요. 제가 받는 연금과 별도로 버는 수입 중 일부를 큰 건 아니지만 교회 헌신하는 데 쓰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 미술교사 시절과 전도사로서의 지금,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가치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큰 변화는 없어요. 은퇴했다고 해서 사람의 의식이나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확 바뀔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가치관의 변화라기보다는 은퇴 전후로 '생활 속 패션'의 변화는 있었어요. 학교에 있을 때는 미술 교사라는 직업적 특성상 옷을 굉장히 화려하게 입었고, 화장도 진하게 했고, 구두는 늘 하이힐만 신고 다녔어요. 속으로는 항상 아끼고 안 쓰며 살았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안 보였죠. 미술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어서 그 기대치를 채워줘야 했거든요.
'미술 선생님이 왜 저렇게 촌스러워?'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늘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옷을 입고 다녔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미술 선생님이 감각도 없다며 무시당할 수 있거든요. 지금은 그런 부담감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그냥 굽 낮은 단화에 평범하고 단정한 옷차림이면 충분해요. 지금의 제 모습이 훨씬 편안하고 좋습니다."

▲교사 시절 출품한 한국화 작품 「청송」 / 여백을 중시하는 고정된 전통 한국화 기법에서 벗어나 명암, 양감, 질감 등 서양화의 표현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화폭을 꽉 채우는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김영숙
- 월 평균 수입과 현재 부부 두 분 월평균 생활비는 얼마인가요?
"목회자에게 주는 사례비(급여)는 많지 않아요. 교회가 형편이 어려워서 많이 주지 못해요. 올해 결정된 금액이 110만 원이에요. 그만큼만 달라고 했어요. 저에게 사학연금이 나오고 있고, 또 교사 시절 아끼고 아껴서 저축한 게 있기에 생활하는 데는 걱정이 없어요.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제공하는 사택이 있고, 차량유지비도 제공해 주니까 목회 활동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어요. 그리고 월평균 생활비는 두 사람이 거의 안 쓰니까 200만 원 정도 될 거예요. 경조사비와 불우이웃 돕기, 또 교회에 자잘하게 필요한 데 쓰는 비용까지 합하면 300~400만 원 정도 들어갈 거예요. 부족한 부분은 저의 연금에서 충당하고 있어요."
- 앞으로의 꿈이나 계획, 즉 인생 3막까지도 염두에 두고 계신 비전이 있으시다면?
"목사 은퇴 시점이 70세니까 저에게 남은 시간은 약 3년 정도 되네요. 남은 기간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인생 3막이라고 해서 저의 삶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회자의 길은 도중에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죽는 순간까지 목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변증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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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나는 다른 일을 한다> 저자. 은퇴(퇴직) 후 새 인생을 개척하여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들의 실제적이고 생생한 경험 이야기를 인터뷰하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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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미술교사, 110만 원 월급에도 인생2막이 행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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