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7.12 17:29수정 2026.07.1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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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유월이었다. 미역국을 끓이려고 자른 미역을 양푼에 덜어내고 물에 불렸다. 요리조리 살펴보아도 한 움큼밖에 안 되었다. 국을 끓이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마트에 나가기가 성가셔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냉장고 서랍 칸을 뒤적거렸다. 언제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미역 줄기 한 봉지가 맨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거라도 같이 넣어서 끓여볼까?'
유통기한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미역 줄기는 염장이 되어 있어서, 유통기한이 최대 2년이 넘는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 다음 먹기 좋게 잘라서 남아 있는 미역과 함께 참기름에 달달 볶아 국을 끓였다. 그런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미역만 넣었을 때보다 입안 가득 씹히는 맛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국물 맛이 깊었다. 생각지도 못한 조합에서 근사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유레카!'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제부터 미역국을 끓일 때는 꼭 미역 줄기를 넣으리라 마음먹었다. 식자재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미역 줄기 옆에 있는 다시마 친구도 하나 장바구니에 담아 왔다. 다시마도 역시 염장이라 소금기를 제거하고 먹어야 했다. 초록빛 비단 천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가위로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잘라 쌈을 싸 먹으니 입안에서 파도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해초오이냉국 모둠해초와 오이, 양파,비트,청양고추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물을 붓고 얼음을 동동 띄워 시원한 해초오이냉국을 만들었어요.
황윤옥
그때부터 시장을 볼 때마다 미역 줄기나 다시마를 하나씩 사 두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느 날 다시마를 사려고 선반으로 눈을 돌렸을 때 처음 보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모둠해초였다. 이 녀석은 어떤 요리법으로 해 먹어야 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쏙 넣어서 왔다.
지난 1일 냉장고에 넣어둔 모둠해초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해초류가 톳, 세모가사리, 꼬시래기 등 8가지나 들어 있었다. 요리법을 보니 비빔밥이나 오이 냉국으로 해 먹으면 좋다고 쓰여 있었다. 그날의 요리는 해초비빔밥으로 당첨되었다. 소금을 씻어낸 뒤 찬물에 20분 정도 담근 후 건졌다. 큰 사발에 밥을 퍼 담고 해초와 양파를 넣은 뒤 초장을 올렸다. 쓱쓱 비벼 먹으니 자주 가던 경주 감포의 횟집에서 맛보던 싱싱한 바다의 맛이 느껴졌다. 1550원의 행복이었다.

▲모둠해초비빔밥 모둠해초에 양파와 오이를 넣고 초장에 비빈 해초비빔밥입니다.
황윤옥
대구는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라고들 부른다. 분지여서 다른 지역보다 여름엔 특히 더 덥다. 마른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찜통더위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더운 날 국이나 찌개를 끓이려고 불 앞에 서 있으면 머리에서부터 땀이 흘러나와 목까지 줄줄 흐른다. 에어컨은 켜지 않고 선풍기만으로 견디고 있어, 가스 불을 켜면 집 안이 금방 후끈 달아오른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해초오이냉국이었다.
소금기를 씻어낸 모둠해초는 5분 정도만 찬물에 담가 놓았다. 어차피 간을 해야 하는 요리라 조금 짜도 좋을 것 같았다. 집에 있는 양파와 오이 그리고 비트를 가늘게 채 썰었다. 오이는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의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고 갈증을 달래주는 데 최고라 항상 냉장고에 쟁여두는 재료다. 혈압이 높은 남편을 위해 늘 준비해 두는 비트 역시 남편의 건강한 하루를 거들어 준다. 이 두 재료야말로 땀 흘려 일하고 온 남편의 피로를 싹 가시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여기에 톡 쏘는 청양고추까지 씨를 빼고 송송 썰어 넣었으니 금상첨화다. 매콤한 청양고추가 들어가야 칼칼한 맛이 살아난다. 그릇을 비우고 났을 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몸속까지 개운해지진다. 게다가 비타민 C도 풍부해 우리 집 여름 요리에서 약방의 감초는 바로 청양고추인 셈이다. 재료를 모두 양푼에 담고 설탕 3큰술, 식초 5큰술, 참치액 3큰술을 넣고 손으로 조물조물 무쳤다. 마지막에 물을 부은 뒤 얼음을 동동 띄웠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도는 비주얼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온 남편에게 의기양양하게 해초오이냉국을 국그릇에 가득 퍼 주었다. 땀 흘려 일하고 온 남편의 반응은 얼음물처럼 아주 시원했다.
"우와, 진짜로 맛있네. 색깔도 이쁘고."
비트가 들어간 냉국은 빨간 물감을 연하게 타 놓은 것처럼 맛도 색도 청량했다. 한 그릇을 더 떠먹는 모습을 보니 남편의 입맛에도 맞은 것 같아 오늘 점심 반찬은 대성공이었다. 250g 한 팩에 2500원이면 부부가 두 끼는 든든하게 먹을 수 있으니 가성비도 최고다.
이열치열이라고 삼복에는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몸을 보신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더위에 몸이 지치고 입맛이 떨어졌을 땐 식초만 한 것이 없다. 새콤한 식초가 몸속에 꽉 찬 피로를 싹 씻어내고,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해초와 식초가 어우러진 냉국은 그야말로 여름철 최고의 피로회복제다.
여름철엔 국을 한 냄비 끓이면 더울 뿐만 아니라,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것도 힘들다. 이럴 때 해초오이냉국으로 맛도 건강도 다 잡으니 이보다 더한 살림의 기쁨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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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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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불 켜기 무서운 여름, 이 냉국 하나면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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