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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띠 메고 7.3km 행군, 고속 노화의 여름이었다

30개월 아들의 한 마디에 나선 광명 동굴... 그래도 또 길을 나서는 게 부모의 삶

등록 2026.07.13 14:50수정 2026.07.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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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토요일만 되면 평소처럼 일어나 아침을 먹고 행선지도 정하지 않은 채 나갈 짐부터 싼다. 어떨 땐 호수, 어떨 땐 바다, 그리고 어떤 날은 산. 주말마다 어디에 가야 할지 아이디어 고갈에 금요일 저녁만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하지만 어디든 나가야 한다. 에너자이저 30개월 아들(뉴뉴)을 가장 쉽게 행복하고 온순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발산하는 에너지를 햇볕에 부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출은 엄마인 내게도 유아식 세 번, 수유 네 번, 이유식 세 번이라는 어마무시한 코스를 스리슬쩍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정신없는 하루를 한층 더 정신없이 보내버리자는 기세랄까.


그날은 다행히 뉴뉴가 가고 싶은 곳이 확실해 목적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동굴에 가고 싶어요."

뉴뉴는 동화책에 나온 박쥐가 궁금했는지 박쥐가 있는 동굴을 말했다. 무더위에 실컷 걸을 수 있는 시원한 장소이기도 했고, 우리 부부에게도 오랜만에 신선한 나들이가 될 것 같았다. 서울 근교 동굴을 검색하니 광명동굴이 나왔다.

집으로 후퇴해야 했을까

여름 아이 아빠가 찍은 사진
▲여름 아이 아빠가 찍은 사진 semo

도착하면 주차장 옆에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식당도 있고, 동굴 내에는 길과 계단이 모두 잘 되어 있다고 했다. 30개월과 8개월 아이 둘을 데리고 가볼 만해 보였다. 동굴에는 유아차 반입이 안 된다고 해 아기띠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때까지도 내 도가니가 남아나지 않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동굴에 가기 전 근처 베이커리에 들렀다. 쌀가루로 만든 따뜻한 호두과자를 파는 곳이었는데 들르면 동굴 입장료도 50%나 할인이 된다고 했다. 동굴 주차장 옆에는 검색한 대로 푸드코트가 있었고, 배고픈 첫째 뉴뉴와 나는 거기에서 먼저 밥을 먹었다.

둘째 또민이(인생 8개월)는 차에서 아빠와 낮잠을 자게 한 뒤 곧장 바톤터치를 해 내가 다시 둘째 수유를 하고, 그동안 남편에게 점심을 먹고 오게 할 요량이었다. 매끈한 전략에 스스로 감탄했지만 푸드코트는 주말 점심 1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주방을 마감해 버렸다. 한 덩치 하는 남편은 호두과자 몇 알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때 집으로 후퇴해야 했을까.


주차장에서 동굴까지는 꽤 멀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동굴까지 올라가면서 원하던 대로 햇볕을 잔뜩 쬐었다고 좋아했다. 유아차에 타 있는 또민이도 얼굴이 벌게졌고, 뉴뉴는 동생을 밀어주겠다며 유아차를 종종 걸음으로 따랐다. 무더위에 온가족이 늘어졌지만, 마침내 도착한 동굴 옆 카페에서 시원하게 열을 식혔다. 동굴 코스는 시작도 안 했다.

남편은 뉴뉴의 손을 잡고, 나는 품 안에 또민이를 안고 아기띠를 멨다. 캄캄한 동굴에는 1급수 물도 있고, 뉴뉴 동화책에 나오는 갈겨니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미디어 쇼도 상영 중이었다. 그런대로 만족스럽게 보며 들어갔는데 눈앞에 길고 긴 계단이 나왔다.

5분만 올라가면 된다고, 계단도 163개밖에 안 된다는 의심스러운 사실이 적혀 있었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의 계단을 남편은 13.5kg의 뉴뉴를, 나는 9.3kg의 또민이를 안고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우리는 햇볕만큼 늙었다

 아기띠를 하고 동굴 행군.
아기띠를 하고 동굴 행군. anspchee on Unsplash

시원한 동굴 안이었지만 또민이를 안은 내 배는 금방 뜨끈해졌다. 또민이도 여린 볼에 땀띠가 날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간 동굴에서 나의 유년기를 회상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동굴 내에는 와인 파는 곳도 있었는데, 다른 것보다 그 반대쪽으로 가면 지름길이라 빨리 동굴에서 나갈 수 있다는 안내만 보였다.

아기띠가 작아 아기를 멜 수 없는 슬픈 표정의 남편을 대신해 통통해진 또민이를 안고 결국 7.3km를 걸었다. 남편은 정말 슬펐을까. 아무튼 동굴에서 나와 짧은 행군을 마친 나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계단과 지름길뿐이었다.

집에 돌아와 자정이 다 된 시간에 행군을 마쳐 튼튼해진 하체를 이끌고 오랜 취미인 탱고를 추러 나갔다. 탱고 부부인 우리는 육아를 시작하면서 늦은 밤 외출을 자주 못 하고 있지만, 어쩐지 육아가 힘든 날이면 더 탱고를 추러 가고 싶다. 그날 밤에도 남편에게 잠든 아이들을 맡기고 댄스화를 챙겼다. 등산을 하고 난 뒤에는 춤이 더 잘 춰지는 법이니까 놓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동굴은 등산이 아니었다. 몸은 왼쪽과 오른쪽을 모르는지 제멋대로 움직였고, 뒤꿈치는 땅에 내려놓을 수 없었다. 발목이 너덜거린다며 한숨을 쉬고 모든 딴다를 망치고 집에 돌아왔다.

새벽 3시, 그제야 하루를 마친 나는 까무룩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눈 뜨자마자 언제나처럼 여벌 옷을 잔뜩 챙겨 행선지도 없이 차에 탔다. 귀여운 세상에도 시지프스가 있다면 그것은 부모일까. 아이들이 자라나는 계절, 우리는 햇볕만큼 늙었다. 고속 노화의 여름이었다.
#광명동굴 #나들이 #아기와나들이 #가족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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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아기 엄마. 아기 보는 걸 좋아하고, 아기 보는 걸 힘들어합니다. 희망과 용기를 체력으로 쌓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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