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근현대역사관
여경수
고향 친구들과는 숙소인 부산관광호텔에서 만났다. 우리는 자갈치 시장으로 향했다. 자갈치 시장에는 오래된 기억이 하나 얹혀 있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으로 여행을 떠났던 2008년, 경주 감포로 향하다 느닷없이 행선지를 해운대로 바꾸고 자갈치 시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지금까지 매년 이어지는 여름 여행의 첫 번째 방문지가 부산이 된 셈이다. 그때는 모두가 미혼이었고, 앞날을 향해 바삐 달려가느라 마음의 여유 같은 것은 없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저마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지만, 그날 자갈치 시장에서 먹었던 음식의 잔상만은 여전히 또렷하다. 그때 서울에서 생활하던 한 친구가 접시에 있는 마지막 음식은 먹지 말고 남기는 것이 음식 예절이라고 했으나, 다른 친구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랑곳없이 접시에 있던 마지막 회를 집어 먹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자갈치 시장 옆에 있는 신동아시장에서 1인당 자릿값을 주고 회를 주문했다. 횟집 사장이 마지막으로 주던 회는 갯장어회였다. 일본어인 '하모'로 더욱 잘 알려진 회이다. 제철이라 식감이 더욱 좋았다.

▲ 국제시장
여경수
우리는 숙소에 짐 정리를 하고 곧바로 시장 구경을 나섰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책 시장, 바로 보수동 책방 골목이다. 이곳에는 보수동책방문화관이 있다. 이 골목의 뿌리는 8.15 광복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인이 두고 간 책들을 난전에서 팔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면서, 피난민들은 생계를 위해 책을 내다 팔았다. 피난 온 교수와 학생들이 그것을 사들이며 자연스레 책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헌책방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한때는 약 70여 곳이 빼곡히 골목을 채웠다. 출판 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하던 그 시절, 이 좁은 골목이 지식이 오가는 광장이었다. 지금도 전국에 몇 안 되는 책방골목으로 자리를 지키며, 매년 도서 무료 교환·고서 전시·음악회 같은 행사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어가고 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인 1980년대 후반에 중고서점을 이용한 적이 있다. 구미역을 마주 보고 도로 끝 자리에 있던 중고서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당시 유행하던 전과를 오백 원에서 천 원 정도의 값을 치렀다. 모든 과목을 하나의 책에 담은 참고서였던 전과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동아전과였다.

▲ 부산 전통시장의 약도를 새긴 보도블록
여경수
부산 중구에는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부평깡통시장, 국제시장, 자갈치시장이 나란히 있었다. 이 시장들이 한 곳에 밀집 하게 된 데는 저마다 사연이 있었다. 부평깡통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캔 제품을 팔면서 '깡통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제시장 역시 전쟁 중 군수품·밀수품·구호물자가 뒤엉켜 거래되던 자리에서 성장한 곳으로, 흔히 '도떼기시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부산이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하기까지, 그 긴 시간이 이 골목들 안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즐비한 식당과 좌판, 영화제 거리와 수산물 골목이 펼쳐졌다. 그 모든 풍경 위로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시장들의 역사가 조용히 겹쳐 보였다. 화려한 도시의 외양보다 그 밑에 쌓인 삶의 무게가 오히려 더 깊은 정겨움으로 다가온,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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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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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자릿값 주고 먹은 제철회, 식감이 남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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