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한 현실, 통계와 역사로 추적한 호남 차별

[서평] <전라디언의 굴레>를 읽고

등록 2026.07.14 13:44수정 2026.07.1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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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소외에 따른 고통과 설움을 겪은 호남에는 지금까지의 이중 차별이 예상 못 한 큰 기회의 원천이 되는 것."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호남 서남권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 유치와 관련하여 한 말이다. 이 대통령은 해방 이후 호남은 영남에 비해 인구가 더 많았지만, 지금은 호남 인구가 5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반면 영남은 1330만 명에 이른다며 호남이 산업화 과정에서 오랫동안 소외돼 설움을 겪었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번 호남 반도체 투자가 지방 균형 성장의 첫걸음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발언이 과연 사실에 부합한지 알아보던 중에 책 <전라디언의 굴레>(2021년 12월 출간)를 찾아 읽었다. 저자 조귀동은 광주 출신의 경제학자로,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와 그것이 정치·사회에 미친 영향을 주로 연구하였다. 그는 2021년 말,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책을 출간했다. 당시 주요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세 사람 모두 추천사를 남겼다. 추천사에서는 모두 이 책이 지역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처음에는 제목이 거슬렸다. '전라디언'은 호남 출신을 비하하는 멸칭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말은 2010년대 이후 극우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 호남인을 마치 '정상적인 공동체 밖의 존재'처럼 취급하는 차별적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이 표현을 책 제목으로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만큼 호남을 둘러싼 차별과 편견의 실상을 과감히 드러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가 아니라 "약무호남시무치킨"이라고 말한다. "호남이 없으면 치킨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호남의 육계 산업을 자랑하려는 말이 아니다. 호남 경제의 현실을 빗댄 씁쓸한 표현이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 육계 생산의 41.1%가 전북과 전남에서 이루어진다. 다소 오래된 통계이지만, 호남이 지금도 국내 최대 육계 생산지라는 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소비는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된다. 저자에 따르면 호남은 치킨 원가의 10% 남짓에 해당하는 사육과 도축 등 저부가가치 생산을 맡고 있다. 저자는 이를 "냄새나고 힘든 일은 호남이, 이익은 다른 지역이 가져가는 구조"로 설명한다. 아울러 단적인 이 사례로 호남 경제가 오늘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구조적 위치를 분석한다.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 생각의힘

정치 영역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 책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호남은 수십만 명의 권리당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거 때마다 안정적으로 표를 공급하는 '표밭' 역할에 머무는 일이 많았다. 저자는 호남 문제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지금껏 축적한 불균형과 모순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또한 광주를 중심으로 여러 사회 경제적 현상을 분석한다. 저자에 따르면 광주의 높은 아파트 비중, 학동 재개발 철거 참사, 토건 비리 등은 우연히 나타난 지역 문제가 아니다. 국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제조업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지역 경제 구조의 산물이다. 영남 지역 기업들이 국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하는 동안 호남에는 제조업 기반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건설업 중심의 경제 구조와 정치·행정의 유착이 반복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광주의 대형 복합 쇼핑몰 논란을 다룬 대목도 흥미롭다. 광주는 대표적인 소비 도시임에도 오랫동안 창고형 할인점과 복합쇼핑몰이 부족했다. 전통시장 보호 논리가 정치권을 움직였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는 대형 쇼핑 시설을 원하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됐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들어 지금 호남의 정치가 실제 주민들의 생활과 욕구를 과연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는지 묻는다.


이 책에서 가장 무겁게 다가오는 부분은 노동 시장의 지역 차별 문제다. 저자는 2014년 일부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드러난 지역 비하 사례와, 호남 출신 채용을 기피 하도록 지시한 기업 경영진의 사례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지역 차별이 단순한 편견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고용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졌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노동 시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나타나는 지역 차별은 사실상 호남 차별이 유일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미국 사회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겪었던 차별과 비교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영남 노동자들은 인접 공업 지대로 이동했지만, 호남 사람들은 서울과 경기, 부산과 울산 등지로 대거 이주했다. 학력과 기술,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족했던 상당수는 도시 하층 노동자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고착되었다는 분석이다.

경제 구조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호남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중견 기업과 중소기업의 부가가치가 낮으며,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얇다고 지적한다. 책이 인용한 2019년 자료에서는 광주의 중위 소득 계층이 다른 광역시보다 상당히 낮았다. 다만 이후 발표된 2025년 통계를 보면 광주와 전남의 가구 소득은 전국 평균보다 여전히 낮지만, 다른 비수도권 지역과의 격차는 일부 줄어든 모습도 확인된다. 이는 저자의 문제 의식을 부정하기보다 지역 경제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저자는 대안으로 지방의회를 위한 지역 정당 허용과 비례대표 의원 30% 확대를 제시한다. 지역에 뿌리를 둔 정치 세력이 성장해야 지역 정치가 중앙 정치의 예속에서 벗어나 토착 비리를 견제하고, 지역 발전 전략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 단위 정당만 등록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정당법의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 현실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과제지만, 지역 정치의 다양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설득력 있고 중요해 보인다. 다만 지역정당을 허용한다고 해서 곧바로 지역 정치가 건강해질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역 정당 역시 기존의 지역주의를 강화하거나 새로운 지역 기득권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호남 문제를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통계와 역사, 산업 구조로 냉정히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의 해석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산업화 과정의 불균형을 의도적 지역 차별이라는 하나의 틀로만 설명하기에는 다소 단선적인 면도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산업화를 추진해야 했고, 입지 조건과 산업 집적 효과, 국가의 선택과 집중 전략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따라서 오늘의 호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차별 뿐 아니라 이러한 경제·지리적 요인도 함께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책은 2021년에 출간된 만큼 이후의 변화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였다. 광주에서는 2020년부터 AI 중심 산업융합 집적단지 사업이 본격 추진됐고, 이후 국가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등 새로운 산업 기반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호남 서남권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까지 추진되면서 호남의 산업 지형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지역 불균형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정치와 노동 시장, 산업 구조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호남 서남권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가 저자가 지적한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대규모 투자만으로 지역의 산업 생태계와 인재 양성, 지역 자본의 성장, 정치 구조까지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칫 화려한 개발 계획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 대통령이 언급한 호남의 '오랜 소외와 차별'이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역사와 산업 구조 속에서 형성된 엄연한 현실임을 돌아보게 한다. 동시에 호남의 미래는 과거의 소외를 반복해 이야기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지역 혁신을 이뤄 그 구조를 스스로 바꾸어 가는 데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전라디언의 굴레>는 호남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지역 균형 발전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지 묻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겨자씨신문에도 실립니다.

전라디언의 굴레 -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호남의 이야기

조귀동 (지은이),
생각의힘, 2021


#전라디언의굴레 #조귀동 #메가프로젝트 #반도체 #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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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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