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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오우야'에 담긴 80년 인생, 사람과 전통을 잇다

    [100인 100색] 오래된 물건에 담긴 삶의 흔적... 김응수 어르신의 전통 이야기

    등록 2026.07.26 11:09수정 2026.07.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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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왕산 도마리 산자락을 따라 오르면 가장 먼저 '또 오우야'라는 작은 표지석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강릉 사투리로 '또 오세요'라는 뜻이다.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찾는 인연이 되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은 이곳(왕산민속생활용품전시관)의 주인 김응수(80) 어르신의 삶과도 닮아 있다. 그는 평생 모아온 전통 유물을 소중히 지키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족처럼 맞이한다. 오래된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세월과 추억, 그리고 우리 전통의 가치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그의 삶이다.


    김응수 어르신의 삶은 유물을 지키는 일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오래된 물건 속에 스며 있는 시간과 정을 통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전통의 가치와 사람의 온기를 조용히 전하고 있다.

     강릉 왕산 도마리 산자락 입구에 세워진 작은 표지석 '또 오우야'.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는 따뜻한 인연의 마음이 담긴 공간의 첫인상이다.
    강릉 왕산 도마리 산자락 입구에 세워진 작은 표지석 '또 오우야'. 다시 찾아오기를 바라는 따뜻한 인연의 마음이 담긴 공간의 첫인상이다. 진재중
     강릉시 왕산면 도마리
    강릉시 왕산면 도마리 진재중

    먼저 내미는 것은 전통이 아닌 정(情)

    표지석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민속박물관을 연상시키는 풍경이 펼쳐진다. 제주도에서 가져온 돌하르방을 비롯해 장독대와 전통 가구, 목공예품, 도자기, 생활용품 등 수십 년 세월을 품은 유물들이 정갈하게 자리하고 있다. 오래된 물건 하나하나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추억, 그리고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주인공은 전통 유물이 아니다.

    김응수 어르신은 귀한 수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복숭아를 건넸다.


    "밭에서 방금 따왔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잘 익은 복숭아에서 달콤한 향이 퍼지고, 어르신의 얼굴에는 아이처럼 순박한 미소가 번진다. 평생 전국을 다니며 귀한 유물을 모아왔지만,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곳은 오래된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사람의 정과 따뜻한 인심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전통의 가치는 유물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고 기꺼이 나누는 그의 마음속에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귀한 수집품을 소개하기 전 직접 키운 복숭아부터 건네는 김응수 어르신. 물건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순간이다.
    귀한 수집품을 소개하기 전 직접 키운 복숭아부터 건네는 김응수 어르신. 물건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순간이다. 진재중

    여든에도 멈추지 않는 하루

    "잠자는 게 아까워요. 얼마나 더 산다고!"

    김응수 어르신의 하루는 새벽 4시부터 시작된다. 해가 뜨기 전 밭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다. 2천 평이 넘는 밭에는 복숭아와 여러 작물이 자라고 있지만, 농장이라기보다 정성껏 가꾼 정원에 가깝다. 잡초 하나 쉽게 눈에 띄지 않고, 나무마다 주인의 손길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여든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의 몸놀림은 경쾌하다. 허리는 꼿꼿하고 손에는 힘이 넘친다. 하루 종일 밭을 돌보고, 전통 유물을 손질하며, 손님을 맞이해도 지친 기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건강의 비결을 묻자 그는 환한 미소와 함께 담담하게 말했다.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건강해져요.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늙을 틈이 없어요."

    그에게 일은 생계를 위한 노동이 아니라 삶의 기쁨이다. 부지런함은 오랜 습관이 되었고, 좋아하는 일을 향한 열정은 지금도 그를 젊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잠자는 게 아깝다"는 말처럼 누구보다 먼저 하루를 열며, 매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가고 있다.

     해가 뜨기 전부터 2천여 평의 밭을 가꾸는 김응수 씨. 복숭아와 다양한 작물이 자라는 농장은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처럼 깔끔한 모습을 보여준다.
    해가 뜨기 전부터 2천여 평의 밭을 가꾸는 김응수 씨. 복숭아와 다양한 작물이 자라는 농장은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처럼 깔끔한 모습을 보여준다. 진재중

    길 위에서 배운 삶, 전통을 품은 인생

    김응수 어르신에게 전통 유물 수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평생 쉼 없이 일하며 쌓아온 삶의 결실이자, 우리 전통을 지켜온 사명이다.

    젊은 시절 그는 가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중동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뜨거운 사막에서 흘린 땀은 생계를 위한 고된 노동이었지만, 희망을 향한 도전이기도 했다.

    귀국 후에는 고속버스 운전기사로 전국을 누볐다. 수많은 사람을 태우고 달리며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그는 그 시절을 가장 왕성했던 때로 기억한다.

    "고속버스 운전기사 월급이 많았습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보람도 컸지요."

    그렇게 성실하게 모은 돈은 다시 전국의 골동품 시장으로 이어졌다. 좋은 물건이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새벽부터 차를 몰고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남들에게는 낡은 고물에 불과했지만, 그의 눈에는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보였다.

    오래된 장롱에는 한 가정의 시작이, 놋그릇에는 가족이 함께 둘러앉았던 밥상이, 농기구와 생활용품에는 이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땀과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김응수 어르신은 물건을 모은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삶과 역사를 지켜왔다. 그래서 그의 수집은 과거를 간직하는 일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소중한 기록이 되고 있다.

     좋은 유물을 찾아 새벽부터 전국을 누볔던 김응수 씨. 평생 이어온 그의 발품이 수많은 전통 유물을 지켜냈다.
    좋은 유물을 찾아 새벽부터 전국을 누볔던 김응수 씨. 평생 이어온 그의 발품이 수많은 전통 유물을 지켜냈다. 진재중
     오래된 장롱과 놋그릇, 농기구와 생활용품에는 한 가정의 추억과 가족의 밥상,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래된 장롱과 놋그릇, 농기구와 생활용품에는 한 가정의 추억과 가족의 밥상,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진재중

    꿈은 멈췄지만 전통은 남았다

    김응수 어르신이 평생 전통 유물을 모은 이유는 단순히 수집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오랜 꿈은 이곳에 전통 찻집과 음식점을 열어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손님들은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아이들은 전통 가구와 공예품, 생활용품을 직접 보고 만지며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

    그 꿈을 위해 그는 전국을 누비며 오래된 장독과 목가구, 농기구, 생활용품 등 사라져가는 전통의 흔적을 하나둘 모아왔다. 버려질 뻔한 물건들은 그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으며 미래의 꿈을 채워갔다.

    하지만 삶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평생 함께할 것이라 믿었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꿈도 멈춰 섰다. 아내와 함께 손님을 맞이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소망은 더 이상 이룰 수 없게 됐다.

     김응수 씨가 꿈꾸었던 공간. 전통 찻집과 음식점을 열어 누구나 쉬어 가며 우리 전통과 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했다.
    김응수 씨가 꿈꾸었던 공간. 전통 찻집과 음식점을 열어 누구나 쉬어 가며 우리 전통과 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했다. 진재중

    시간과 삶을 모으다

    아내를 떠나보낸 뒤에도 김응수 어르신은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전국을 돌며 오래된 물건을 찾아 나서는 일은 어쩌면 깊은 상실을 견디기 위한 방편이었을 수도 있다. 낡은 물건 하나를 손에 들 때마다 그는 그 안에 깃든 시간과 사람들의 삶을 마주했고, 그렇게 자신의 삶도 다시 이어갈 힘을 얻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작은 민속박물관이 되었다. 오랜 세월 모아온 전통 유물 가운데에는 전문가들도 높은 가치를 인정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한 방송사의 감정 프로그램에 출품했을 때는 감정위원들조차 예상보다 높은 평가를 내릴 만큼 귀한 유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유물의 가격에는 관심이 없다. 잠시 수집품을 바라보던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값을 매길 수가 없어요. 이건 내 삶의 동반자니까."

    짧은 한마디에는 평생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그에게 전통 유물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함께 걸어온 벗이었다. 그래서 김응수 어르신이 모아온 것은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사람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세월의 기억이었다.

     김응수 어르신이 평생 모아온 전통 유물. 오래된 물건에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세월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
    김응수 어르신이 평생 모아온 전통 유물. 오래된 물건에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 그리고 세월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 진재중

    잃어버린 것은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김응수 어르신의 수집 인생에도 큰 시련이 있었다. 어느 날 도난 사건으로 평생 전국을 누비며 모아온 소중한 전통 유물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가 도둑맞은 것은 골동품 몇 점이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발품을 팔며 쌓아온 시간과 추억, 그리고 유물마다 담겨 있던 사람들의 삶과 역사가 함께 사라진 듯한 아픔을 경험했다.

    가족들은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며 수집을 그만두기를 권했다. 평생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을 겪었기에 그 걱정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다시 길을 나섰다. 사라져가는 전통의 흔적을 지키는 일을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산골과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오래된 농기구와 생활용품, 전통 가구와 공예품을 다시 하나씩 모아 나갔다.

    "이곳에 있는 물건은 셀 수도 없고, 셀 이유도 없습니다. 제가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는 계속 모을 겁니다."

    지금은 CCTV를 설치해 예전보다 안심할 수 있게 됐지만,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물을 잃는 일이 아니다. 물건과 함께 사라지는 사람들의 삶과 시대의 기억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을 한 점이라도 더 지켜내기 위해 묵묵히 길을 나서고 있다.

     도난 사건으로 평생 모아온 소중한 전통 유물을 잃은 김응수 어르신. 한순간에 사라진 유물은 그의 삶과 추억이기도 했다.
    도난 사건으로 평생 모아온 소중한 전통 유물을 잃은 김응수 어르신. 한순간에 사라진 유물은 그의 삶과 추억이기도 했다. 진재중

    여든에도 멈추지 않는 청춘

    김응수 어르신에게 나이는 삶의 속도를 늦추는 이유가 아니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이면 산으로 향한다. 전국의 이름난 산 대부분을 올랐을 만큼 산을 사랑하는 그는 자연 속에서 삶의 여유와 지혜를 배운다.

    "산에 오르면 욕심을 내려놓게 됩니다. 자연을 보면 내가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돼요."

    산은 그에게 운동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삶을 돌아보는 쉼터다. 그는 자연과 마주할 때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새로운 도전도 멈추지 않고 있는 그는 늦은 나이에 드럼을 배우기 시작해 음악을 즐기고, 포크레인을 직접 운전하며 넓은 밭을 손질하는 일도 스스로 해낸다. 무거운 나무와 돌을 옮기는 일조차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평생 몸으로 익힌 기술과 성실함은 여든이 넘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무엇이든 직접 배우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삶의 태도는 그의 가장 큰 자산이다. 그래서 김응수 어르신의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열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포크레인까지 직접 운전하며 2천여 평의 밭을 가꾸는 김응수 어르신. 무거운 나무와 돌을 옮기는 일도 스스로 해내며 삶의 터전을 묵묵히 지켜가고 있다.
    포크레인까지 직접 운전하며 2천여 평의 밭을 가꾸는 김응수 어르신. 무거운 나무와 돌을 옮기는 일도 스스로 해내며 삶의 터전을 묵묵히 지켜가고 있다. 진재중
     늦은 나이에 시작한 드럼 연주로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있는 김응수 어르신. 나이는 숫자일 뿐, 배움과 도전으로 삶의 활력을 이어가고 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드럼 연주로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있는 김응수 어르신. 나이는 숫자일 뿐, 배움과 도전으로 삶의 활력을 이어가고 있다. 진재중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오래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아내와 함께 전통 찻집을 열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모아온 수많은 유물은 오늘도 그 꿈을 대신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왕산 산골의 작은 공간은 이제 한 개인의 수집실이 아니라, 우리 부모 세대의 삶과 역사를 간직한 살아 있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대문 앞에 새겨진 '또 오우야.' 그 짧은 인사에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찾아와 오래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돈보다 사람을, 소유보다 나눔을, 값보다 가치를 선택하며 살아온 김응수 어르신. 그가 평생 모은 것은 골동품이 아니라, 우리 삶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왕산 산자락의 작은 박물관은 오늘도 조용히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사라져서는 안 되는 것은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삶과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의 전통은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평생 전통 유물을 모으며 사람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해온 김응수 어르신. 그가 지켜온 것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우리 삶의 흔적과 시간의 기억이다.
    평생 전통 유물을 모으며 사람과 나눔의 가치를 실천해온 김응수 어르신. 그가 지켜온 것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우리 삶의 흔적과 시간의 기억이다. 진재중


    #강릉 #왕산 #전통 #수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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