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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금지령 기간에 읽게 된 만화책 <러프>

30년 전 읽었던 만화인데 다시 읽어도 명작... 미완성은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

등록 2026.07.15 11:55수정 2026.07.1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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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에게 인생 만화를 물어 본다면 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꼽을 것 같습니다. 아다치 미츠루의 <러프>입니다. 일주일간 수영 금지령이 떨어진 지난 주, 갑자기 생긴 여가 시간에 수영 관련 무엇이라도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자 싶어 다시금 손에 든 것이 <러프>였습니다.

 내 인생 만화, 아다치 미츠루의 『러프(Rough)』
내 인생 만화, 아다치 미츠루의 『러프(Rough)』 문현호

아다치 미츠루는 소녀 만화의 섬세함을 소년 만화에 접목한 거장입니다. 초창기 화풍의 <터치>와 후기 화풍의 < H2 > 사이, 두 매력이 뒤섞인 과도기적 걸작이 <러프>입니다. 12권이라는 콤팩트한 분량 덕에 아다치 유니버스 최고의 입문작으로도 꼽히기도 합니다. 물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붕어빵 같은 캐릭터 얼굴, 죽음을 활용하는 클리셰, 지금 보면 불편한 90년대식 성인지 감수성 같은 시대적 한계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서사의 힘은 대단합니다. 뼈대는 로미오와 줄리엣식 가문의 악연입니다. 남자 주인공 야마토 케이스케는 중학 자유형 만년 3위, 여자 주인공 니노미야 아미는 촉망받는 하이 다이빙 선수입니다. 3대째 같은 과자를 만들며 경쟁하던 두 집안은, 케이스케의 할아버지가 아미네 과자를 모방해 대박을 터뜨리며 틀어졌습니다.

아버지의 혹독한 교육 탓에 아미는 어릴 때부터 매년 케이스케에게 '살인자'라 적힌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그런 둘이 고등학교 수영부에서 마주하고, 여기에 잘생기고 집안 좋은 일본 1위 천재 수영 선수 나카니시 히로키가 가세하며 삼각관계가 완성됩니다.

대학 입학 전 저는 이 만화를 보며 "대학에 입학하면 수영도 배우고 연애도 멋지게 해야지" 다짐했습니다. 이행률은 딱 50%. 연애는 대학 시절 지금의 아내와 멋지게 했지만, 수영은 30년 치 이자까지 얹어 내년 지천명 기념 한강횡단을 꿈꾸는 중입니다.

이 만화가 명작인 이유는 설명 대신 컷과 상황으로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여름 별장에서의 사고입니다. 아미가 물놀이 중 보트에 부딪혀 물에 빠지자, 우상인 나카니시와 케이스케 둘 다 뛰어들지만 간발의 차이로 나카니시가 먼저 그녀를 구조해 인공호흡을 합니다.

늘 그를 한 발짝 뒤에서 동경만 하던 케이스케는 이 사건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병상에서 깨어난 아미가 "나는 내가 눈을 떴을 때, 네가 나를 구해줬을 줄 알았어"라고 진심을 건네자, 케이스케는 마침내 방 벽에 붙여두었던 나카니시의 포스터를 뗍니다. 평생 동경했던 완벽한 우상을, 비로소 넘어야 할 진짜 라이벌로 마주하고 각성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쭉 네가 살려준 걸로 알고 있었어."
"나는 쭉 네가 살려준 걸로 알고 있었어." 문현호

결말 역시 여백의 지배자라는 별명의 아다치답게 절제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조언합니다. "승패로 남자가 결정되는 건 재미없다. 마음이 정해져 있다면 경기 전에 전하라." 아미는 최종 레이스를 앞둔 케이스케에게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건넸고, 그 안에는 이런 목소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여기는 니노미야 아미. 들리나요? 당신을 좋아합니다. 여기는 니노미야 아미. 야마토 케이스케, 응답하라." 기가 막힌 타이밍의 연출은, 정작 케이스케가 운명을 건 마지막 레이스가 시작될 때까지 그 테이프를 듣지 못한 채 경기에 임한다는 점입니다. 승패의 결과보다 두 사람의 마음이 이미 맞닿아 있었다는 고백을, 만화는 이례적으로 명확하고 깔끔하게 닫아내며 끝을 맺습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문현호

서른 해 만에 다시 펼치며 신기했던 건, 예전엔 스쳐 지나갔던 대사 하나가 이번엔 가슴에 꽂혔다는 점입니다. 작중 할아버지가 툭 던지는 말, "청춘이란 몇 번을 채이고 넘어져도 다시 뜨거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스무 살 길목에선 그저 흘러가던 대사가, 쉰을 목전에 둔 지금은 코끝을 찡하게 합니다.

제목 '러프'는 '거친 밑그림', 혹은 '미완성'이라는 뜻입니다. 극 초반 담임 선생님은 말합니다. "대충 그린 스케치로는 명화가 나오지 않는다. 거칠어도 좋으니 끊임없이 스케치를 반복하라." 지천명이 다 된 지금도 저는 여전히 삶의 단단한 밑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매일 서툴게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조바심이 났겠지만, 이번엔 그 미완성이야말로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주일간의 강제 멈춤을 끝내고 다시 수영장 문을 열던 날, 저는 밀린 훈련을 때우러 가는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30년 전 만화방 소파에서 막연히 품었던 그 푸른 동경을, 이제야 확인하러 가는 발걸음이었습니다. 계획보다 30년 늦어버린 수영이지만, 제 스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요.

수영을 좋아하든, 아다치 미츠루를 알든 모르든 상관없습니다. 딱 12권이라 부담도 적습니다. 30년이 흘러 다시 꺼내도 가슴을 뛰게 하는 책을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행운입니다. 동네 도서관이나 낡은 중고 서점에서 이 파란색 표지를 마주친다면, 속는 셈 치고 한 권만 펼쳐보십시오. 12권을 순식간에 다 읽게 되실 겁니다.

 오리지널 연재본은 12권이었으나, 이후 두툼한 6권짜리 소장본으로 재탄생. 가지고 싶다... 소장본 ^^
오리지널 연재본은 12권이었으나, 이후 두툼한 6권짜리 소장본으로 재탄생. 가지고 싶다... 소장본 ^^ 문현호

러프 소장판 1

아다치 미츠루 (지은이), 박해진 (옮긴이),
대원씨아이(만화), 2009


#수영 #수영만화 #러프 #아다치미츠루 #지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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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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