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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 평상시 몇 시에 일어나십니까?
"4시 반이요. 씻고 밥 먹고 5시 정도에 나가요."
가볍게 시작한 질문에 돌아온 답은 무거웠다. 문득 2012년 고 노회찬 의원이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새벽 첫 차에 몸을 싣는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번 인터뷰 주인공 김덕수(가명, 50대)씨는 수년 전 산업재해로 오랜 직장을 잃고, 지금은 한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불편한 몸으로 그때 그 버스의 사람들처럼 새벽 차를 놓치지 않으려 몸을 깨우는 노동자였다.
- 출근 시간이 8시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왜 그렇게 일찍 나가나요?
"회사가 교통편이 좋지 않은 수도권 후미진 곳에 있어 어쩔 수 없더라고요."
김씨의 근무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서류상 8시간 노동이다. 하지만 연장근무가 없어도 하루 14시간이 통근과 노동에 묶이는 삶이었다.
- 월급은요?
"실수령액이 2백만 원 중반 정도입니다."
- 연장·야근 수당은 제대로 나옵니까?
"나오긴 하는데, 우리가 안 챙기면 가끔 빠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따로 체크해야 해요."
대기업 성과급이 수억 원 단위로 오가는 뉴스가 나오는 그 시간, 어느 중소 제조업체 노동자는 스스로 시간을 재서 누락된 연장근무 수당을 찾아야 했다.
선진 국가의 후진적 중소기업
김씨가 일하는 중소 제조업체 직원은 이십여 명, 대체로 오십대 이상이고 외국인 노동자도 몇 명 있다. 젊은 직원은 거의 없다.
- 근무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좋지는 않죠. (관리자들) 말에 욕이 절반이에요. 처음엔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가' 했는데, 저 같은 단순노동 직원 대부분이 그렇게 당하더라고요. 흡사 우리가 종인 것처럼 다뤄요. 나라는 선진국인데 중소 제조업체는 아직 옛날식이에요. 기술 있어서 회사가 아쉬운 사람한테는 안 그렇고요."
"이전 회사도 그랬지만 여기도 가족회사예요. 사장의 직계 가족은 물론 사돈에 팔촌까지, 같은 직원인데 자기네 가족은 일을 안 해요. 시키기만 하죠."
김씨가 경험한 중소 제조업체 현장 분위기는 거의 비슷했다. 대부분 '가족 기업'이었고, 노동자들은 늘 경영자 일가 바깥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 그런 회사는 요즘 직원 구하기 힘들 텐데, 다들 버티는 이유는요?
"나이 많고 기술 없는 사람은 갈 곳이 없잖아요. 그러니 욕먹고도 버티는 거죠. 저처럼 몸에 장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초보에는 기회가 없다
김씨는 퇴근 후 주말마다 수년째 기술을 배우고 있다.
- 회사에서 숙련 기회를 주나요?
"안 줘요. 초짜가 잘못하면 회사 손해라고요. 최근엔 저도 하기가 싫어졌어요. 초보라고 너무 무시당했거든요. 그래서 퇴근 후 학원에서 기술 숙련을 높이고 있어요. 자격증 따면 바로 이직할 거예요."
그는 인정받으려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었다. 떠나기 위해 배우고 있었다. 회사가 사람을 키우지 않으니, 노동자는 자신의 여가 시간을 스스로를 키우는 데 쓰고, 준비가 끝나는 순간 회사를 떠난다. 결국 노동자의 잦은 이직은 청년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산재, 그리고 다시 공장으로
그의 이력은 순탄치 않았다. 특수자재 유통업계에서 20년을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했다. 이후 택시기사부터 택배까지 온갖 일을 다했다. 특히 택배는 차량까지 샀지만, 불편한 몸으로는 하루 100건을 넘기기 어려웠고, 그 정도 건수로는 수수료와 유지비 등을 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때 24시간 2, 3교대 공장에서도 일했다는 그는, 당시 기억에 몸서리를 쳤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주야 교대는 다시 못할 것 같아요. 밤새 파김치가 돼서 집에 가면 잠이 쏟아질 줄 알았는데, 낮이라 그런지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렇게 잠 설치고 피곤이 안 풀린 채 다시 출근하는 게 지옥 같았어요."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 저는 이해합니다
- 따님도 최근 취업했다고요.
"딸이 취업한 곳은 꽤 규모 있는 중견기업인데, 거기도 가족 기업으로 사장 친인척들이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긴다며 최근에는 그만 두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의 오랜 문제 하나를 뜻하지 않게 짚었다. 청년들의 중소기업 기피는 단순히 '급여와 복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가도 오래 버티기 어려운 회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임금뿐 아니라 존중도, 기회도, 배움도, 공평함도 낮은 곳이 중소기업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청년들한테 좀 미안해요.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덕분에 제가 먹고사는 것 같아서요."
주식으로 돈 버는 시대, 6억 성과급? 남의 얘기일 뿐
최근 주식으로 앉아서 돈을 벌었다는 사례와 대기업 직원들이 성과급으로 수억 원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는 지금, 그의 반응은 담담했다.
- 그런 뉴스 들으면 박탈감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제 세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처한 환경에서 열심히 사는 거죠."
- 삶이 척박하다고 느낀 적은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평범한 삶이죠 뭐."
- '평범하다'니, 좀 놀랍네요. 그럼 열심히 살면 삶이 나아진다는 믿음도 여전한가요?
"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체념인지 단단한 소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어투는 분명 체념은 아니었다.
- 대출과 저축은요?
"집 살 때 받은 대출 원금이 몇 천만 원 남았는데, 맞벌이로 감당할 수준이에요. 저축은 예전엔 했는데, 요즘 높은 물가 때문인지 지금은 거의 못 해요."
- 살면서 억울했던 적은요?
"다쳤을 때요.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러나, 그런 생각이 든 적은 있어요."
- 요즘 나라 경제는 좋다고들 하는데, 본인의 삶도 나아지고 있나요?
"나아지는 건 없지만 더 나빠지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그냥 머물러 있는..."
- 요즘은 자기 자신만 위해 살겠다는 사람도 많은데, 김 씨는 어떻습니까.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해요. 가끔 섭섭하지만, 그래도 가족 덕분에 버팁니다."
치솟는 주가지수, 성과급 6억 원. 누군가는 그 숫자 앞에서 포모(FOMO)를 느끼고, 누군가는 '노동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새벽 4시 반에 눈을 뜨는 그에게, 현 시대의 풍요는 놀랍게도(?) 불안을 남기지 않았다. 정작 그가 버거워 하는 것은, 언제나처럼 존중받지 못한 노동의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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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5시간 출퇴근, 월급 2백여만 원... 그가 "미안하다"고 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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