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려버린 슬픔을 지나칠 수 없었다.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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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에 딸린 문장은 얼핏 치킨집 주인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적 화자 자신을 향해 있다. 교묘하게 화자는 치킨집 주인에게 행위의 잘못을 돌리고 그에게 푸념을 늘어놓지만, 행위의 주체가 실은 화자 자신임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푸념보다는 일종의 엄살이다. 귀와 듣는 행위가 화자가 말한 것처럼 수동적일까. 그저 들려서 듣는 것이라면 마치 치킨집 주인의 울음소리와도 닮은 "끼걱끼걱 찌그러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 없다. 귀 기울여 자세히 들으려고 하고 들리는 것 너머를 들으려는 능동적 의지가 없었다면 "얼른 가서/안 내려오려는 셔터를/억지로라도 도와서 내려주고" 오는 연민 따위는 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목의 "슬픈"은 적극적으로 "슬픈"이다. 슬픔은 이웃의 삶의 애환으로부터 오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그걸 들을 수밖에 없는, 외면하기 어려운 화자의 태도에 대한 감정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런 운명을 짊어지고 사는 존재이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삶과 거기서 빚어지는 감정을 다 감당해야 하는 운명, "어쩌자고", 죽음이 아니라 끝끝내 삶을 각오해야 하는, 그런 "슬픈" 운명. (김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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