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애서 건너편 초록 불빛을 바라보던 개츠비
워너 브라더스
작년에 런던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워킹 홀리데이로 영국에 갔다가 대학원까지 진학한 딸을 만나기 위해서였으니 여행이라기보다는 방문에 가까웠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런던에서 뮤지컬 하나쯤은 봐야 한다고 딸이 예매한 표를 내밀었다. <위대한 개츠비>였다. '이것은 미국 작품인데' 싶었지만, 10년 전쯤 런던에서 보았던 뮤지컬 <레미제라블>도 프랑스 작품이었고, 이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위대한 개츠비>는 제작자가 한국인이어서, 표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웨스트엔드에 있는 '콜리세움 극장'은 외관부터 유서가 깊어 보였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로비를 지나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돔으로 이루어진 천장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 붉은 융단으로 덮인 좌석들, 층층이 놓인 비잔틴 양식의 화려한 발코니. <레미제라블>을 공연했던 아늑한 소극장과는 달리 크고 화려한 내부였다.
무대의 막이 오르자, 이번에는 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빠른 템포의 춤과 음악, 번쩍거리는 무대장식과 배우들의 의상, 희롱하듯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남녀 배우들, 무대 중앙에 나온 황금색 자동차. 모든 게 황금처럼 번쩍이고 모든 배우가 그 번쩍임을 향해 요란하게 날아가는 부나비 떼처럼 보였다고 할까? 허탈했다. 비싼 돈을 들여서 호화 쇼를 보고 나온 느낌. 개츠비에게 계속 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거슈윈의 음악에 한동안 빠져 지내다가 깨달았다. <위대한 개츠비>를 이해하려면 1920년대의 미국 사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1차 대전이 끝나고 1930년대의 대공황이 오기 직전의 황금기. 고층 빌딩,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 구두닦이도 주식을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전 국민이 열을 올린 주식 투자, 라디오와 유성 영화의 유행,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스피크이지'라고 불리는 비밀 지하 바에서 밤새 흘러나오는 재즈와 함께 마시는 밀주, 플래퍼라고 불리던 신여성, 이름하여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리던 시대 말이다.
클래식이 된 재즈 <랩소디 인 블루>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1920년대. 신흥 부자 개츠비는 전통 부자 데이지가 속한 사회에 편입되고 싶어 했다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확실히 느끼게 된 것은, 소설 가득히 퍼져 있는 '돈' 냄새였다. 그것은 5년 만에 다시 만난 개츠비의 집안 그가 소유한 셔츠들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데이지의 감각과도 통했다.
일상적인 부정(不貞), 파티 끝에 이어지는 자동차 사고와 살인을 빠른 속도로 그려내는 작가 피츠제럴드의 필치는 놀랍도록 예리하고 정교하다. 톰의 정부 머틀의 죽음, 개츠비의 죽음, 그리고 머틀의 남편 윌슨의 죽음을 차례로 겪은 뒤 닉은 깨닫는다. 데이지와 톰과 그를 둘러싼 소위 전통 부자들이 얼마나 썩어빠진 족속인지를.
그러면 개츠비는 다를까?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초록색 불빛을 향해 내밀었던 손. 그 초록색 불빛은 '돈에 사로잡힌 데이지라는 우아한 여성' 즉, 돈과 상류층 여자의 혼합체였다. 닉은 개츠비에 대해서 의심하고 회의하다가 그가 죽고 난 뒤 마침내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초록색 불빛.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 그것은 여전히 멀리서 반짝이며 우리를 유혹한다.
모든 무너지는 것들은 무너지기 직전에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인다. 대공황 직전 1920년대의 미국처럼. 죽음 직전 개츠비가 열던 화려한 파티처럼. 불법과 속임수의 난무 속, 부의 축적 과정이 불투명한 개츠비의 인생은 미국의 흑역사와 얼마나 그럴듯하게 닮았는지.

▲ 1937년의 조지 거슈윈
위키미디어 공용
그럼에도 거슈윈의 음악은 아름답다. 조지 거슈윈.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의 아들. 형에게 사준 피아노를 잘 쳐서 뒤늦게 시작한 음악 공부, 21살에 스와니라는 곡을 작곡해서 스타가 되었고, 26살에 불과 5주 만에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 38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관현악, 협주곡, 영화음악, 오페라 등 많은 음악을 남긴 천재적인 작곡가.
1924년에 작곡된 <랩소디 인 블루>는 클래식이 된 재즈이다. 왕궁과 고성의 냄새가 묻어나는 다른 클래식과는 달리, <랩소디 인 블루>에는 도시의 숨결이 느껴진다. 우디 엘런이 영화 <맨하탄>에서 거슈윈의 음악이 고동치는 도시가 뉴욕이라고 말했듯이, 거슈윈의 음악은 바로 도시 그 자체다. 애니메이션 <환타지아 2000>에서 표현한 도시적 삶의 리듬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음악.
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서머 타임 Summer Time >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돋아날 즈음 우리의 아들과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거기에 있다. "네 아버지는 부자고 네 어머니는 미인이지." 이 말이 거짓일지라도 뒤에 오는 말만큼은 진실이다. "아무것도 널 해치지 못할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곁에 있을 테니까." 그러니 아가야, 울지 말렴. 설령 부박한 도시의 불빛이 우리 곁을 스칠지라도 우리에게는 <서머 타임>의 따뜻함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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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창작집 3권,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 논문을 썼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 작가. 내가 생각하는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 새로움, 그리고 성찰. 궁극적으로는 보다 많은 이들이 향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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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기 직전 가장 화려... 대공황 직전 화려한 폭죽 같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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