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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기 직전 가장 화려... 대공황 직전 화려한 폭죽 같은 음악

[박형숙 소설가의 촉]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등록 2026.07.21 17:14수정 2026.07.2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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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클래식 공연을 보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어둠이 슬금슬금 내려앉을 무렵, LED 등이 일제히 반짝, 켜졌다. 가로등이 쏘아대는 빛줄기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의 보닛 위에 얹어지는 순간, 도로는 아름다운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한남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한강 다리를 수놓은 오색 조명에 눈이 부셨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공연. 그날의 마지막 순서는 거슈윈의 <파리의 아메리칸>이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유럽 문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로망을 표현한 곡. 샹젤리제 거리를 기웃거리는 아메리칸의 발걸음이 연상되는 경쾌한 멜로디. 이따금 들려오는 '빵빵' 소리는 프랑스 택시들이 쓰던 4개의 전구식 경적을 직접 악기에 달아 눌러서 낸다고 했다. 연주를 듣는 이십여 분 동안 만끽했던 자유로움.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금가루를 뿌려놓은 미니어처처럼 반짝거리는 도시의 밤 풍경을 보다가 떠올렸다. 그렇지. 바로 재즈였다.


잊고 있었다. 한때는 재즈에 푹 빠져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는 것을. 90년대 초반. 빌리 홀리데이의 <아이 엠 어 풀 투 원트 유 I am a Fool to Want You >나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벨런타인 My Funny Valentine >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일요일이면 온종일 재즈를 틀어 놓고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가수의 운명을 헤아려 보던 젊은 날, 대학로로 향하는 입구쯤에 있었던 재즈바 '야누스'에 갔던 기억도 난다. 낮이어서 손님은 없고 뭔가 사물이 정지한 듯한 느낌 속에 맥주 한 병을 다 못 마시고 나온 흐릿한 기억.

재즈에는 나른한 긴장의 이완, 푸르스름한 조명이 남기는 고독, 갈라진 목소리에 묻어나는 절망과 체념의 기미, 흐느적거리는 몸놀림이 주는 안타까움, 끈적끈적한 블루스의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거슈윈의 곡에는 확실히 그런 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자유로움과 절제된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문득, 거슈윈의 다른 곡에 대한 기억이 튀어나온다.

환상곡 풍의 자유로운 곡을 일컫는 랩소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처럼 랩소디가 제목에 들어간 곡은 다 좋아했다. 소설 창작을 강의하던 시절, 쉬는 시간에 <보헤미안 랩소디> 동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절규와 그룹 퀸이 보여주는 화음의 아름다움이 창작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오기 한참 전의 일이었다.

 1924년 2월 연주한 <랩소디 인 블루> 포스터
1924년 2월 연주한 <랩소디 인 블루> 포스터 위키미디어 공용

<위대한 개츠비>를 이해하려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튜브로 <랩소디 인 블루>를 틀어본다. 연주자가 몸을 비틀면서 끌어올리는 아름다운 클라리넷 음의 환상적인 상승. 그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 2013년도에 리메이크한 <위대한 개츠비>를 4만 피트 이상의 고공을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본 적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길어진 비행시간을 견디기 위해 비행기 좌석 모니터에 탑재된 영화를 뒤지던 중 세 번째로 보기 시작했던 영화였다.


초대장을 손에 쥔 닉이 초호화로 열리는 파티장에 들어서서 혼잡한 사람들 속에서 개츠비를 찾는데, 한 사내가 상체를 돌려 얼굴을 드러내 보이며 "내가 개츠비요"라고 말한다. 순간 그의 뒤에서 여러 개의 폭죽이 일제히 하늘로 치솟으면서 울려 퍼지는 음악, 바로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였다.

그런 인상적인 장면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께름칙한 느낌을 남겼다. 왜 그런 경우 있지 않은가? 남들은 모두 위대하다고 그러는데,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 그런 기분 말이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영화를 다시 보았다. "내가 개츠비요"라고 말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은 여전히 느글거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애서 건너편 초록 불빛을 바라보던 개츠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애서 건너편 초록 불빛을 바라보던 개츠비 워너 브라더스

작년에 런던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워킹 홀리데이로 영국에 갔다가 대학원까지 진학한 딸을 만나기 위해서였으니 여행이라기보다는 방문에 가까웠다. 뮤지컬의 본고장인 런던에서 뮤지컬 하나쯤은 봐야 한다고 딸이 예매한 표를 내밀었다. <위대한 개츠비>였다. '이것은 미국 작품인데' 싶었지만, 10년 전쯤 런던에서 보았던 뮤지컬 <레미제라블>도 프랑스 작품이었고, 이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위대한 개츠비>는 제작자가 한국인이어서, 표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웨스트엔드에 있는 '콜리세움 극장'은 외관부터 유서가 깊어 보였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로비를 지나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돔으로 이루어진 천장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 붉은 융단으로 덮인 좌석들, 층층이 놓인 비잔틴 양식의 화려한 발코니. <레미제라블>을 공연했던 아늑한 소극장과는 달리 크고 화려한 내부였다.

무대의 막이 오르자, 이번에는 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빠른 템포의 춤과 음악, 번쩍거리는 무대장식과 배우들의 의상, 희롱하듯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남녀 배우들, 무대 중앙에 나온 황금색 자동차. 모든 게 황금처럼 번쩍이고 모든 배우가 그 번쩍임을 향해 요란하게 날아가는 부나비 떼처럼 보였다고 할까? 허탈했다. 비싼 돈을 들여서 호화 쇼를 보고 나온 느낌. 개츠비에게 계속 속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거슈윈의 음악에 한동안 빠져 지내다가 깨달았다. <위대한 개츠비>를 이해하려면 1920년대의 미국 사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1차 대전이 끝나고 1930년대의 대공황이 오기 직전의 황금기. 고층 빌딩,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동차, 구두닦이도 주식을 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전 국민이 열을 올린 주식 투자, 라디오와 유성 영화의 유행, 금주령에도 불구하고 '스피크이지'라고 불리는 비밀 지하 바에서 밤새 흘러나오는 재즈와 함께 마시는 밀주, 플래퍼라고 불리던 신여성, 이름하여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리던 시대 말이다.

클래식이 된 재즈 <랩소디 인 블루>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1920년대. 신흥 부자 개츠비는 전통 부자 데이지가 속한 사회에 편입되고 싶어 했다지만, 이번에 읽으면서 확실히 느끼게 된 것은, 소설 가득히 퍼져 있는 '돈' 냄새였다. 그것은 5년 만에 다시 만난 개츠비의 집안 그가 소유한 셔츠들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데이지의 감각과도 통했다.

일상적인 부정(不貞), 파티 끝에 이어지는 자동차 사고와 살인을 빠른 속도로 그려내는 작가 피츠제럴드의 필치는 놀랍도록 예리하고 정교하다. 톰의 정부 머틀의 죽음, 개츠비의 죽음, 그리고 머틀의 남편 윌슨의 죽음을 차례로 겪은 뒤 닉은 깨닫는다. 데이지와 톰과 그를 둘러싼 소위 전통 부자들이 얼마나 썩어빠진 족속인지를.

그러면 개츠비는 다를까? 개츠비가 부두 끝에 있는 초록색 불빛을 향해 내밀었던 손. 그 초록색 불빛은 '돈에 사로잡힌 데이지라는 우아한 여성' 즉, 돈과 상류층 여자의 혼합체였다. 닉은 개츠비에 대해서 의심하고 회의하다가 그가 죽고 난 뒤 마침내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초록색 불빛.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 그것은 여전히 멀리서 반짝이며 우리를 유혹한다.

모든 무너지는 것들은 무너지기 직전에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인다. 대공황 직전 1920년대의 미국처럼. 죽음 직전 개츠비가 열던 화려한 파티처럼. 불법과 속임수의 난무 속, 부의 축적 과정이 불투명한 개츠비의 인생은 미국의 흑역사와 얼마나 그럴듯하게 닮았는지.

 1937년의 조지 거슈윈
1937년의 조지 거슈윈 위키미디어 공용

그럼에도 거슈윈의 음악은 아름답다. 조지 거슈윈.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의 아들. 형에게 사준 피아노를 잘 쳐서 뒤늦게 시작한 음악 공부, 21살에 스와니라는 곡을 작곡해서 스타가 되었고, 26살에 불과 5주 만에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 38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관현악, 협주곡, 영화음악, 오페라 등 많은 음악을 남긴 천재적인 작곡가.

1924년에 작곡된 <랩소디 인 블루>는 클래식이 된 재즈이다. 왕궁과 고성의 냄새가 묻어나는 다른 클래식과는 달리, <랩소디 인 블루>에는 도시의 숨결이 느껴진다. 우디 엘런이 영화 <맨하탄>에서 거슈윈의 음악이 고동치는 도시가 뉴욕이라고 말했듯이, 거슈윈의 음악은 바로 도시 그 자체다. 애니메이션 <환타지아 2000>에서 표현한 도시적 삶의 리듬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음악.

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에 나오는 <서머 타임 Summer Time >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돋아날 즈음 우리의 아들과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거기에 있다. "네 아버지는 부자고 네 어머니는 미인이지." 이 말이 거짓일지라도 뒤에 오는 말만큼은 진실이다. "아무것도 널 해치지 못할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가 곁에 있을 테니까." 그러니 아가야, 울지 말렴. 설령 부박한 도시의 불빛이 우리 곁을 스칠지라도 우리에게는 <서머 타임>의 따뜻함이 있으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거슈윈랩소디인블루 #위대한개츠비 #1920년대미국 #거슈윈파리의어메리칸 #런던공연뮤지컬위대한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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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창작집 3권,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 논문을 썼다. 중학교에서 국어를,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 작가. 내가 생각하는 문학과 예술은? 아름다움, 새로움, 그리고 성찰. 궁극적으로는 보다 많은 이들이 향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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