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화분에 옮겨 심고 이틀 후, 제자리를 잡고 푸른 생명력을 회복한 깻잎 모습
김종섭
화분에 다시 심어도 소생할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지만, 곧바로 빈 화분에 심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기 시작했다.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냉혹한 섭리가 떠올랐다. 다행히 우리의 정성이 통했는지 세 포기 중 가장 튼실한 하나가 흙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생기를 품기 시작했다. 나머지 작은 두 포기는 아직도 생존의 갈림길에 서서 힘겨운 숨을 쉬고 있다.
언제부턴가 산책길에 마주치는 작은 잎새 하나도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산책길을 막는 나뭇가지를 무심히 꺾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자연의 생명체도 우리와 동등한 '생명의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들기 시작했다.
화분에 심은 깻잎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직접 처음부터 씨앗을 뿌려 싹을 틔운 깻잎은 아니지만, 죽어가는 가엾은 생명에 기꺼이 먼저 손길을 내밀게 되었다. 물론 깻잎은 그 잎을 수확해 식탁에 올리기 위해 키운다는 냉정한 인간의 목적이 담겨 있다. 온전히 정성을 다해 키운 채소이지만, 한편으로는 밥상에 오름으로써 비로소 깻잎으로서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내가 가져온 깻잎은 지독한 물 부족과 주인의 부재 속에서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깊은 상처를 보듬어 주기 위해, 매일같이 물을 주면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을 아내는 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꽃과 나무들이 기나긴 겨울의 진통을 감내하고, 봄부터 싹을 틔워 꽃을 피우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우리 인간 삶의 여정과 무척 닮아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이 결국 같은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쳐 가는 일관성 있는 모습은 늘 진행형이다.
예전에 마당이 넓은 주택에 살 때는 앞뒤 정원이 참 넓었다. 화단도 크게 만들어 채소며 꽃도 키워보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시들어 죽고 말았다. 지금 와서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때는 재배 방법의 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정성을 다하지 못한 '관심의 부재' 때문이라는 생각이 커진다.
60대가 되면서 베란다 화단에 꽃을 가꾸는 일은 이전 주택에서 화단을 대하던 내 모습과는 전혀 달라졌다. 꽃과 나무에도 온전한 정성을 다해야만 비로소 예쁜 꽃을 피우고 푸른 잎을 세상에 내어주며, 먹음직한 채소가 되어 푸른 식탁에 올라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흔하고 평범한 상식을, 나는 60대가 넘어서야 비로소 따뜻하고 정직한 손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침이면 거실의 큰 식탁 대신 주방 간이 식탁에 앉아 베란다 꽃들을 바라보며 식사를 한다. 꽃들이 언제 꽃망울을 맺고 또 언제 지는지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어제는 수줍던 봉오리가 또 하나의 꽃을 활짝 피워냈다. 꽃에게는 일생 최고의 축복받은 순간이다. 그 경이로운 축복의 순간을 물을 주는 주인인 나와 아내는 놓치지 않고 알아본다. 우리 둘 모두가 지극한 관심으로 식물에게 사랑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출가한 자식들도 내 품을 떠나기 전까지는 이 꽃들처럼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부어 키웠다. 하지만 이제 장성한 자식들은 부모의 눈과 마주칠 시간 자체마저도 그리 많지 않다. 예전에는 우리가 맹목적으로 사랑을 내어주었다면, 이제는 부모 눈에 자식이 담기기 위해 자식들이 먼저 부모의 눈을 마주쳐 주어야 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화단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서 인간과 식물의 떠남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꽃은 자기가 질 때까지 주인의 시선과 관심을 붙잡아 이끌고, 시드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리를 변함없이 지킨다. 품을 떠나 각자의 삶으로 간 자식들과의 관계와는 다른, 말 없는 깊은 위로를 건넨다. 죽어가던 깻잎이 빈 화분에서 다시 잃어버린 활기를 찾아갈 때, 소생하는 생명들에게서 또 하나를 배운다. 자식 농사의 바쁜 의무가 끝났을지 몰라도, 생명을 보듬는 60대의 내 마음속 텃밭은 여전히 새로운 관심과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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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이민자의 삶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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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캐낸 빈 화분, 60대 부부가 새로 심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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