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계수의 원리 같은 양의 꿀을 부어도 결과는 다르다. 와플은 홈마다 꿀을 잠시 머금었다가 천천히 흘려보내지만, 평평한 팬케이크는 대부분의 꿀을 곧바로 흘려보낸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숲과 습지, 빗물정원은 와플처럼 빗물을 붙잡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팬케이크처럼 빗물을 한꺼번에 흘려보낸다. 이것이 바로 유출계수의 원리다.
한무영
같은 양의 꿀을 와플과 팬케이크 위에 부어 보자. 와플은 홈마다 꿀을 잠시 담아 두었다가 조금씩 아래로 흘려보낸다. 반면 팬케이크는 대부분의 꿀을 곧바로 아래로 흘려보낸다. 차이는 꿀의 양이 아니라 표면의 구조에 있다.
도시도 똑같다. 숲과 습지, 논, 빗물정원, 저류시설이 많은 도시는 와플처럼 빗물을 잠시 품고 천천히 흘려보낸다. 그러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는 팬케이크처럼 빗물을 한꺼번에 하천으로 몰아 보낸다. 이처럼 같은 비가 내려도 흘러가는 양이 달라지는 원리를 수문학에서는 유출계수(Runoff Coefficient)라고 부른다. 어려운 학술용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누구나 매일 경험하는 아주 단순한 현상이다.
물순환의 성적표
유출계수는 내린 비 가운데 얼마만큼이 그대로 흘러내리는지 나타내는 비율이다. 쉽게 말하면 '총내린 비의 양에 대한 유출량의 비율'이다. 유리판 위에 물을 부으면 거의 모든 물이 그대로 흘러내린다. 이 경우 유출계수는 1에 가깝다. 반대로 스펀지에 물을 부으면 대부분의 물이 흡수되어 아래로 거의 흘러가지 않는다. 이 경우 유출계수는 0에 가깝다.
자연 상태의 건강한 산림은 일반적으로 유출계수가 0.3~0.4 정도이다. 내린 비의 약 30~40%만 하천으로 흘러가고 나머지는 토양과 낙엽층에 저장되거나 지하수로 스며든다. 그러나 같은 땅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으면 유출계수는 0.8~0.9까지 높아질 수 있다. 결국 같은 비가 내려도 하천으로 흘러가는 물은 두 배에서 세 배까지 많아진다.
비가 많아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더 많은 물을 한꺼번에 흘려보내는 도시를 만든 것이다.
홍수는 하늘에서 시작되지만...
폭우가 내리면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나 홍수의 규모는 하늘보다 땅에서 결정된다. 상류의 숲이 어떻게 관리되었는지, 임도가 얼마나 개설되었는지, 도시가 얼마나 콘크리트로 덮였는지, 빗물을 저장하거나 침투시키는 시설이 있는지에 따라 하류로 흘러가는 물의 양은 크게 달라진다.
기후변화는 분명 더 강한 비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홍수를 키우는 것은 기후변화만이 아니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유출계수를 계속 높여 왔다. 산림을 깎고, 논과 밭을 포장하고, 도시를 불투수면으로 바꾸면서 물이 머물 공간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같은 비가 와도 더 큰 홍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상류에서 개발해 유출계수가 높아졌다. 그 결과 같은 비에도 하류 주민들이 더 큰 침수 피해를 입었다. 그렇다면 그 피해를 복구하는 비용은 왜 국민 모두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까. 물론 모든 홍수를 특정 개발사업 하나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강우량과 지형, 하천의 상태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로 인해 유출계수가 높아졌다면 그 사회적 비용 또한 함께 논의하는 것이 공정하지 않을까.
환경 분야에는 이미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이 널리 자리 잡고 있다. 환경을 오염시킨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물순환을 악화시켜 하류의 홍수 위험을 높이는 행위에 대해서도 비슷한 원칙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오래전부터 우수유출부담금 제도를 운영한다. 건물 지붕이나 주차장처럼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공공 하수도로 흘러가는 불투수면적을 기준으로 부담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목적은 세금을 더 걷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빗물을 현장에서 처리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건물 소유자가 빗물저장조를 설치하거나 침투시설을 만들고, 녹색지붕을 조성하여 공공 하수도로 흘러가는 빗물을 줄이면 부담금도 줄어든다. 즉, 유출계수를 높인 사람은 비용을 부담하고, 유출계수를 낮춘 사람은 혜택을 받는 구조이다.
이 제도는 개발을 막자는 것이 아니다. 개발로 증가한 유출량만큼 스스로 책임지고 관리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물순환을 회복하는 정책이다.
이제는 유출계수 보도를
우리 언론은 "오늘 200mm의 비가 내렸다"는 뉴스는 전한다. 그러나 그 비 가운데 얼마가 흘러갔고,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는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앞으로는 강우량뿐 아니라 유출계수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도시계획도, 산림정책도, 산업단지 개발도, 도로 건설도 유출계수를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
유출계수는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어려운 수문학 용어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물순환을 얼마나 건강하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적표이며, 홍수와 가뭄, 지하수 감소와 도시 열섬을 함께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숫자 가운데 하나다.
비는 하늘이 내린다. 그러나 홍수의 크기는 우리가 만든다. 그리고 그 책임과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이제 우리 사회가 함께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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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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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똑같이 오는데... 왜 어떤 곳은 잠기고 어떤 곳은 멀쩡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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