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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년 공직 접고 상추 농사... "다들 말렸지만 지금이 더 행복해요"

    [1막보다 화려한 2막] 백승석 '뮤직팜' 대표의 인생 2막

    등록 2026.07.26 19:05수정 2026.07.26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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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에 열중하고 있는 백승석 '뮤직팜' 대표.
    일에 열중하고 있는 백승석 '뮤직팜' 대표. 이민선

    전원생활이라는 낭만을 꿈꾸며 귀농해서 안정적으로 정착한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농촌진흥청 등에 따르면 귀농 인구 10명 중 1명 정도는 역귀농을 선택한다.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간 것이다. 현장에서 전해지는 실제 역귀농 인구는 이보다 더 많은 30%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귀농 난민'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화려한 인생 2막을 꿈꾸며 귀농했다가 영농 실패 등으로 인해 정착에 실패하고, 부채 때문에 도시로 돌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이들을 이르는 말이다.


    4년 차 귀농인 백승석 뮤직팜 대표는 "공부하고 준비만 잘하면 귀농 난민은 없다"고 말했다. 단 "농사를 정말로 좋아해야 하고 일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농장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어요. 저는 농사일을 참 잘 거들어 주는 아들이었어요. 학교 파하고 집에 오다가 부모님이 일하는 모습이 보이면 논두렁에 가방 내려놓고 일을 했어요.

    그 바쁜 결혼식 전날까지도 벼 베기를 했고요. 그래서 아내가 불만이 많았죠. 이 더운 날 비닐하우스에서 땀 뻘뻘 흘리는 게 남들 눈에는 안 돼 보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정말로 일하는 게 좋아요. 일을 하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어요.

    살면서 쌓인 마음의 때가 땀과 함께 씻겨 나가는 그런 느낌요.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일하면 힘듦도 사라지고요. 그래서 농장 이름을 '뮤직팜'이라고 지어 봤어요. 늘 음악이 흐르는 농장이란 뜻이죠."

    백 대표는 충남도청 서기관이란 직급으로 33년 공직 생활을 마치면서 농부가 됐다. 농사로 인생 2막을 연 것이다. 2023년 퇴직과 동시에 농부가 됐으니 이제 관록 있는 4년 차 농부다. 1막과 2막 사이에 텀을 둘 필요는 없었다. 퇴직 전 3년이란 준비 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500여 평 농지를 구입해 200여 평 비닐하우스를 짓고 '유럽 상추'를 기른다. 비닐하우스 밖에서는 산딸기와 블루베리, 두릅이 자라는데, 모두 농약 한 방울 치지 않은 친환경 작물이다. 수확물은 세종시 싱싱장터 매장 등에서 소비자를 만난다. 그는 "친환경이라 꽤 인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가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


     백승석 대표의 농장 뮤직팜이 있는 마을 전경.
    백승석 대표의 농장 뮤직팜이 있는 마을 전경. 이민선

     백승석 뮤직팜 대표가 유럽상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승석 뮤직팜 대표가 유럽상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민선

    "제가 농약에 거부 반응이 좀 있어요."

    그가 친환경 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다. 거부 반응의 정체를 묻자 "살에 닿으면 따끔거리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 정도 이유만으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워 더 캐물으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어쩌면 나처럼 농약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을 것 같아서다.

    삼복더위에 논에서 병충해와 사투를 벌이다가 농약 중독에 쓰러지는 어른을 심심찮게 목격했다. 마을 어른 대부분이 한 번 정도는 쓰러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중에는 내 아버지도 있었다. 쉴 새 없이 토하면서 녹두 삶은 물을 들이켰다. 위액까지 토해 내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병원비가 무서워서다.

    병문안을 온 어른들은 "요즘 농약은 순하다더니…"라며 혀를 찼다. 10살 어린 눈에 비친 그 모습이 쉰이 훌쩍 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친환경 농산물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다. 예나 지금이나 해롭지 않은 농약은 없다. 풀이나 벌레를 죽일 수 있다면 사람에게도 해가 될 수 있다.

    장맛비가 잠시 멈춘 지난 13일, 그의 인생 2막이 펼쳐진 세종시 금남면 비닐하우스를 방문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국도가 나왔고, 국도를 빠져나오자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비좁은 농로가 나왔다.

    '이러다가 길이 뚝 끊기면 어쩌지, 제대로 알려주고 있는 것일까?' 내비게이션을 의심하며 꼬부랑 길을 따라갔다. 굴곡이 심한 곳에서는 자동차 하부가 지면에 닿아 '쾅' 소리가 났다. 먼발치에 비닐하우스가 보이면서 안도감이 찾아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백 대표가 알려준 지름길 덕분에 훨씬 수월했다. 알고 보니 그의 일터인 비닐하우스는 세종시와 대전시를 지나는 국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비닐하우스 안은 온통 녹색이었다. 익히 아는 상추보다 연해 보이는 유럽 상추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나를 반겼다. 백 대표는 "너무 더워서 좀 시들하다"고 말했지만 내 눈에는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다.

    대형 선풍기와 냉풍기까지 있었지만, 비닐하우스 안은 무척 더웠다. 이런 곳에서 매일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공무원 출신이라 연금도 적지 않을 텐데?'란 의문이 불현듯 스쳤다. 무심결에 "더운데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하고 싶은 일 하면 힘들어도 힘든 줄 잘 몰라요. 직장인들은 대부분 퇴근 시간인 6시를 오매불망 기다리잖아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때는 하루가 참 길었는데 지금은 오후 8시 넘어서 일을 마쳐도 하루가 짧다고 느껴져요. 피곤하지도 않고요. 출근? 물론 발걸음이 가볍죠. 월요병 같은 것도 없고요. 취미 같은 일을 하면서 수익이 생기니 더할 나위 없이 좋고요."

    '혹시 일중독'이라는 의심이 들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에게는 3계절 일하고 한 계절은 여행도 하면서 푹 쉰다는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 원칙을 무기로 농사를 극구 반대한 아내도 설득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호주하고 뉴질랜드를 여행했다. 올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행 비용은 그가 애지중지 키운 유럽 상추가 마련해 준다. 또 용돈까지 주니 유럽 상추가 그에게는 열 아들 부럽지 않은 효자인 셈이다.

    농업직 공무원도 "고생만 하게 될 것"이라 말렸지만

     공직 생활을 마치며 가족들과 함께 기념 촬영.
    공직 생활을 마치며 가족들과 함께 기념 촬영. 백승석

    그가 농업으로 인생 2막을 연 것은 단순히 '농사가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회사든 국가 기관이든 조직에 속해 있으면 피동적일 수밖에 없어요. 지시받은 일을 해야 하니까요. 2막은 능동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내가 상상해서 기획하고 운영하며 그 결과까지 책임지는 사업을 하고 싶었던 거죠. 처음에는 식당을 계획했었는데 이게 생각해 보니 밤낮 없이 일해야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식당 계획을 접고 최소한 한 철은 푹 쉴 수 있는 농업을 선택한 거죠."

    막상 시작하려니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농업도 만만치 않았다. 공부할 것도 많고 자본도 상상했던 것보다 많이 필요했다.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주변 사람들의 만류였다. '잘될 거야'라는 말보다는 '농사만은 절대 안 돼'라는 말이 훨씬 더 자주 들렸다. 특히 농업 전문직 공무원이 "고생만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때는 기가 팍 꺾였다.

    "좀 이해가 안 됐어요. 잘만 하면 농업이야말로 큰 자본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라 생각했거든요. 또 식물 키우는 걸 무척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어차피 식물 키우는 게 취미 생활이기도 하니 한번 해보자, 이렇게 마음먹은 거죠."

    농사를 하기 위한 필수 요건은 '땅'이었다. 퇴직 5년 전부터 그는 땅을 사러 다녔고, 퇴직을 1년 앞둔 2022년에 농지 500여 평을 구할 수 있었다. 유럽 상추라는 게 있다는 사실은 온라인, 특히 유튜브를 통해서 알게 됐다.

    하지만 재배 기술을 배우기가 무척 어려웠다. 선배 농부들은 그를 비닐하우스 안으로 발도 들이지 못하게 했다. 다행히 한 청년 농부가 반갑게 맞아줘서 주말마다 그 농장에서 일도 하고 기술도 배웠는데 나중에는 그 역시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들은 왜 그렇게 냉정했던 것일까?

    "솔직히 말하면 기자님이니까 여기 들어올 수 있었지 다른 분들은 여기 못 들어와요. 첫 번째 이유가 방역이에요. 친환경 작물이다 보니 방역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가능하면 외부에서 병충해를 끌어들이지 말아야 하니까요.

    또 노하우(재배 기술)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할 목적도 있고요. 타인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면 같은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눈치를 주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왜 자꾸 가르쳐 주느냐고'. 그 청년도 아마 그래서 제가 오는 것을 꺼렸을 거예요."

    자유로운 지금이 더 좋다

     백승석 뮤직팜 대표 서울 인재개발원에서 퇴직을 앞둔 공직자들에게 귀농·귀촌에 대한 특별 강의를 하고 있다.
    백승석 뮤직팜 대표 서울 인재개발원에서 퇴직을 앞둔 공직자들에게 귀농·귀촌에 대한 특별 강의를 하고 있다. 백승석

     봉사, 기부에도 적극적인 백승석 대표.
    봉사, 기부에도 적극적인 백승석 대표. 백승석

    결국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하나 배울 수밖에 없었다. 유료 강의를 해 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공부했지만 그걸로 농사의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었다. 모종을 심는 깊이만 해도 작물에 따라 다른데 그런 세세한 지식은 손으로 직접 해봐야 체득할 수 있었다.

    수경 재배란 것을 한 적도 있다. 흙이 아닌 물로 작물을 키우는 방법이다. 적잖은 돈을 투입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는 "농부 인생에서 가장 큰 시행착오였다"라고 단정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물이 끊기면 안 돼요. 금세 시들어 버리죠. 근데 전기가 끊겨 급수를 못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 말라 버리는 거예요. 누군가 항상 식물 옆에 붙어서 급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인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결국 그 시설 다 걷어내고 이 시설(상토 흙으로 키우는 방식)로 바꾼 겁니다. 저기 바닥에 보이는 모판처럼 생긴 판하고 파이프, 저게 다 수경 재배에 필요한 장비입니다. 적잖은 비용을 들여 산 것인데..."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실제로 수경 재배에 필요한 장비가 쌓여 있었다. 그러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실패는 없었다. 그가 실패라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이제야 편안함이란 게 찾아왔다.

    필요한 농기구는 손만 뻗으면 찾을 수 있는 곳에 다 있고, 유럽 상추 특성에 대해서도 알 만큼 알게 됐다. 덕분에 처음 시작할 때보다 일을 덜 해도 능률은 훨씬 더 높다. 그는 "처음엔 힘들지만 3년 정도 지나면 그렇게 힘들지 않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한 행복하게 사는 게 인생 2막 최종 목적지라 말했다. 어떤 게 행복한 삶이냐는 난해한 질문에 "욕심을 비움으로써 얻어지는 자기만족"이라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즉답한 뒤 "내가 참 잘 살고 있다, 잘하고 있다 느껴지는 게 행복"이라고 덧붙였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빨리 찾아, 큰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그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백승석 뮤직팜 대표. 그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세종시자원봉사센터에서 일손 돕기, 거리 청소, 농산물 나눔 등 봉사 활동과 기부도 한다. 지난 4월에는 서울 인재개발원에서 퇴직을 앞둔 공직자들에게 귀농·귀촌 특별 강의를 했다. 상추 씨 심기와 상추 모종 심기, 블루베리 나무 삽목 등 체험거리를 준비해 현장에서 교육생들에게 체험하도록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 또한 그에게는 농사만큼이나 신나는 일이다.

    "저는 늘 의미 있는 삶을 꿈꿔왔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래서 성공적인 인생 2막이라 자신할 수 있어요. 안정적이지만 반복적인 틀에서 생활했던 1막보다 자유로운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고요."

    그의 귀농 인생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 계속되길 응원한다.
    #1막보다화려한2막 #백승석뮤직팜대표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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