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크라시>(에바 일루즈·애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이세진 옮김, 2021)
청미
이 과정에서 고통 또한 변화한다. 실업의 고통은 역량 부족의 문제로, 장시간 노동의 고통은 스트레스 관리의 문제로, 차별과 배제의 고통은 회복 탄력성의 문제로 바뀐다. 사회가 만들어 낸 상처는 개인의 심리적 결함으로 번역되고, 구조가 만들어 낸 고통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된다.
과거 노동자의 고통은 집단적 경험이었다. 열악한 노동 조건, 낮은 임금, 불안정한 삶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됐다. 그러나 오늘날 고통은 점점 개인화 된다. 번아웃은 개인의 회복력 부족, 우울은 개인의 적응 실패, 불안은 개인의 자기 관리 문제로 설명된다.
그 결과 행복은 도덕적 기준이 된다. 행복한 사람은 건강하고, 생산적이며,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사람이다. 반대로 분노하는 사람, 우울한 사람, 냉소적인 사람, 불안한 사람은 어딘가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행복은 의무가 되고, 긍정성은 사회적 규범이 된다.
오래전 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부정적 감정 다루기'라는 표현을 보았다. 부정적 감정이란 표현이 낯설어 물어보니, 분노, 질투, 절망, 슬픔 같은 감정이란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긍정적 감정인가? 어딘가 불편하다. 분노는 정말 부정적인 것일까? 절망은 무조건 극복해야 할 것일까? 억울함과 슬픔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일까?
<해피크라시>는 그 불편함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감정은 개인 내부에서 발생하는 순수한 심리 현상이 아니다. 감정은 사회 속에서 형성되고, 의미를 부여 받는다. 어떤 감정은 장려 되고 어떤 감정은 억압 된다. 어떤 감정은 성숙함의 증거, 어떤 감정은 결함의 증거가 된다.
행복이 인간의 다양한 감정 가운데 하나일 때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행복해야 한다'가 규범이 되는 순간, 행복은 권력이 된다. 권력은 개인들이 스스로 행복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자발적 통제에 나서도록 장려한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시대의) 행복은 오히려, 조직과 기관에 유용한 도구, 복종하는 노동자·군인·시민을 양성하기에 좋은 도구"라고 말한다.
'더 행복해지자'라고 말하는 대신
몇 해 전 한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언제가 행복하세요?" 한 노동자가 "직장에 행복해지려고 다니나요?"라고 되물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당시를 회상하니 나의 질문은 틀렸고, 그 노동자의 답변은 현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질문은 달랐어야 한다. "언제 존중받는다고 느끼세요?", "언제 이 일이 의미 있다고 느끼세요?", "언제 동료들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드세요?" 행복이라는 추상적이고 규범적인 단어 대신, 노동자의 실제 경험으로 내려가는 질문들 말이다.
노동자 정신 건강 운동의 목표는 노동자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고통을 개인의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 자기 삶과 노동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겪는 문제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해 가는 과정에 더 가까울 수 있다.
해피크라시 - 행복학과 행복 산업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가
에바 일루즈,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은이), 이세진 (옮긴이),
청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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