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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기본소득, '경제적 자기결정권'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월 15만 원 지급을 넘어

등록 2026.07.22 10:14수정 2026.07.2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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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옥천군(군수 황규철?더불어민주당) 관내 면단위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옥천군(군수 황규철?더불어민주당) 관내 면단위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충북인뉴스

농어촌기본소득이 마침내 현실의 정책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26~2027년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을 기존 10개 군에서 17개 군으로 확대했다. 추가로 선정된 7개 군의 주민에게는 실거주 확인을 거쳐 2026년 8월부터 1인당 월 15만 원이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급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먼저 사업을 시작한 10개 군에서 인구와 신규 가맹점이 증가하는 등 지역 활력의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다만 이러한 초기 변화가 기본소득의 독립적 효과인지, 장기간 지속될지는 앞으로 엄밀하게 검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정책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 주민의 생활비를 조금 보충하는 정책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농어촌 주민이 자신의 지역경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환의 출발점이 될 것인가. 나는 후자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한국 농어촌의 위기는 흔히 인구 감소와 고령화, 낮은 소득과 생활서비스 부족으로 설명된다. 물론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농어촌이 왜 이토록 오랫동안 쇠퇴해 왔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농어촌은 지금도 식량과 원료를 생산한다. 물과 산림, 토지와 생태환경을 보전하며 도시와 산업에 에너지 입지와 국토의 기반을 제공한다. 농어촌이 생산하고 유지하는 것은 농산물만이 아니다. 국민경제와 도시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사회적·생태적 조건이다. 그런데 생산의 성과는 어디로 가는가. 농산물의 가격과 유통 조건은 누가 정하는가. 지역의 토지와 물, 에너지 입지를 어떻게 이용할지 누가 결정하는가. 생산 이후의 가공·물류·판매와 금융, 플랫폼, 연구개발에서 발생한 이익은 어느 지역에 축적되는가. 농어촌의 근본 문제는 생산하지 못한다는 데 있지 않다. 생산하지만 결정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한국의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기업 본사와 금융, 연구개발, 플랫폼, 브랜드와 전략적 의사결정 기능은 수도권에 집중된다. 비수도권과 농어촌에는 생산과 자원 제공, 현장 실행과 위험 부담이 남는다. 생산하는 장소와 결정하는 장소, 비용을 부담하는 장소와 이익을 축적하는 장소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 창출된 소득과 잉여가 본사·금융·유통·플랫폼과 외부 소유망을 통해 빠져나가고, 그것이 지역의 생활기반과 다음 세대의 생산능력에 재투자되지 못한다. 청년과 자금, 지식과 기획 기능까지 외부로 이전된다. 내가 이를 '공간적 수탈'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리 지역개발 예산을 늘리고 기업을 유치해도 농어촌의 종속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지역 주민이 생산의 목적과 자산의 이용, 잉여의 귀속과 투자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 농어촌은 여전히 외부에서 기획된 사업을 수행하는 공간에 머문다. 주민은 경제질서의 주체가 아니라 정책과 시장의 실행자가 된다. 나는 이러한 상태를 농어촌의 '경제적·공간적 타율성'으로 규정하고, 그 대안으로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제시하고자 한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이 타율성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우선 주민의 생계를 일정하게 보장해 불리한 노동과 거래조건을 거부하거나 협상할 여지를 제공한다. 마을회의나 협동조합, 공동돌봄과 지역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소득 손실과 시간 부담도 일부 줄일 수 있다. 기본소득은 농어촌이 제공해온 '공통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 배당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토지·물·산림·생태환경·식량생산 기반과 공공 인프라는 특정 기업이나 소유자가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생기는 개발이익과 자산가치 상승, 에너지와 자원 이용수익은 외부기업이나 소유자가 가져가고, 환경비용과 생활기반 훼손은 지역에 남는 경우가 많다. 농어촌기본소득의 재원을 묻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토지가격 상승은 누구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는가. 도로와 전력망, 공공 연구개발에서 생긴 이익은 누구의 것인가. 농촌이 보전해온 자연과 생태의 가치는 왜 사적 수익으로만 귀속되어야 하는가.

기본소득은 이미 존재하는 공동의 부를 나누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엇이 공동의 것인지 발견하고, 그것의 사유화와 독점적 이용을 정치적 문제로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농어촌기본소득은 지대자본주의가 사적으로 포획한 공통부의 일부를 사회적으로 되돌리는 '반지대적 제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지급된다고 해서 지역경제가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지역 안에 식품·돌봄·교통·의료·주택수리와 에너지 서비스를 공급할 기반이 없다면 지급된 돈은 대형 유통기업과 프랜차이즈, 온라인 플랫폼과 도시의 병원·교육기관으로 빠져나간다. 지역화폐가 첫 번째 소비를 지역에 묶어두더라도 가게가 물건을 외부 도매망에서 조달하고 본사에 가맹수수료를 지급하면 돈은 다음 단계에서 다시 유출된다. 토지와 상가, 주택과 금융, 플랫폼의 독점도 그대로라면 기본소득의 일부가 임대료·이자·수수료와 가격인상을 통해 다시 소유자에게 흡수될 수 있다. 기본소득이 주민의 생활을 돕는 동시에 외부 기업과 자산 소유자의 시장을 확대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기본소득만으로 생산·소유·권력관계가 자동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이른바 '지역순환경제'와 결합되어야 한다. 주민에게 지급된 소득이 지역의 안정적인 구매력이 되고, 그 수요가 지역의 생산·조달·돌봄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주민과 생산자가 반복적인 관계를 맺고, 협동조합과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생산시설과 토지, 유통망과 디지털 기반의 일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잉여를 공동기금으로 조성해 돌봄·주거·교통·생태복원과 새로운 생산기반에 재투자해야 한다.

여기에서 주민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하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지 결정하며, 가격과 노동조건, 서비스의 기준과 잉여의 사용을 토론하는 경제적 주체가 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이다.

경제적 자기결정권은 지역이 모든 것을 내부에서 생산하는 자급자족을 뜻하지 않는다. 외부의 국가·기업·금융·시장과 관계를 맺되, 그 관계의 조건을 주민이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생산할지, 토지와 자산을 어떻게 이용할지, 지역에서 형성된 잉여를 누구에게 배분하고 어디에 투자할지, 외부기업을 어떤 조건으로 받아들일지를 주민이 공동으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자기결정권이 농어촌 전환의 내용이라면, '자율적 꼬뮌'은 그 권능을 생활세계에서 지속적으로 행사하는 정치적 형식이다. 주민이 기본소득의 수혜자와 개발 사업의 동원 대상에 머물지 않고, 공동생산과 공동소유의 조직을 만들며 자신들이 만든 제도의 성과와 실패를 평가하고 다시 수정하는 사회다.

물론 농어촌기본소득 한 가지 정책으로 이 모든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안정적인 지급과 함께 의료·돌봄·교통 등 생활 인프라, 주민조직과 사회연대경제, 공공·공동소유, 지대환수와 공동기금, 지방정부의 실질적 권한이 결합되어야 한다. 국가도 재정만 내려보내고 책임을 지역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과 필수 서비스를 보편적 권리로 보장하되, 구체적인 생산과 조달, 투자와 공동기금의 방향은 주민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어촌을 살린다는 것은 소멸 지역에 돈을 조금 더 투입하는 일이 아니다. 농어촌 주민이 자신들이 생산한 가치와 공동의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재생산할지를 결정할 권능을 되찾는 일이다.

농어촌기본소득의 성패도 지급액과 소비 증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역의 생산과 조달은 얼마나 늘었는가. 주민조직과 협동조합은 형성되었는가. 공동소유와 공동기금은 확대되었는가. 여성·청년·이주민과 비농업 주민도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는가. 주민은 정책의 대상에서 경제질서의 공동 입법자로 성장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자율적 지역사회의 완성이 아니다. 그러나 주민을 단순한 수혜자에서 경제적 주체로 전환하고, 농어촌을 생산하지만 결정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생산하며 결정하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지역 소멸을 멈추는 가장 근본적인 길은 농어촌에 무엇을 더 가져다주는 데 있지 않다. 농어촌 주민에게 자신의 경제와 삶의 방향을 결정할 권리와 힘, 곧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되돌려주는 데 있다.
#농어촌기본소득 #지역소멸 #경제적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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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학생들에게는 정치경제학(사회경제학)을 가르치고 있고 또 이 이론적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역경제, 지역불균형발전,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지역순환경제전국네트워크의 공동대표와 학술단체 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우리나라 수도권 일극 체제의 공간적 위계, 내부 식민지화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으로서 지역의 '경제적 자기결정권'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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