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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귀환어부' 고 김정태, 57년 만에 '무죄' 받다

    광주지법 목포지원 제1형사부 재심 선고... 납북귀한어부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반성

    등록 2026.07.23 16:35수정 2026.07.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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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정태님은 1967년 9월, 서해 임자도 앞바다에서 서해 연평도 앞바다까지 나아가 고기잡이에 나섰다가 북한 경비정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던 한 평범한 어부였다. 6개월간의 구류를 거쳐 1968년 봄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따뜻한 고향의 품이 아니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이라는 거대한 사법 기구의 톱니바퀴, 그리고 대공분실에서의 지독한 고문과 조작이었다.

    1990년 억울함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난 김정태 . 그리고 57년이 흐른 2026년 7월 23일 오후 3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제1형사부는 그에게 마침내 '무죄'를 선고했다. 오늘 재판을 통해 서해의 또다른 납북귀환어부 피해자인 고 김정태님의 사연을 따라가보려 한다.

    1967년 서해, 그리고 거칠었던 운명의 시작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면. 섬 전체가 파도 소리와 모래사장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고 김정태님은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평범한 어부였다. 1967년 9월 2일, 그는 어선 '신창호'에 몸을 싣고 예년과 다름없이 조업에 나섰다. 그러나 그날 서해상의 안개 속에서 다가온 것은 북한 경비정이었다.

    갑작스러운 납북. 함께 조업에 나섰던 신창호 선원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북한 지역으로 끌려갔다. 약 6개월 동안 북한에 구류돼 조사를 받고 교육을 이수한 후, 1968년 3월 23일 그들은 서해가 아닌 동해 묵호항을 통해 귀환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조국의 땅을 밟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이들의 귀환은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해야 했다. 혹시 모를 북한의 지령을 받았는지 묻는 수사관들의 폭언과 폭행을 견디며 며칠간의 귀환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그러나 그 심사를 통과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냉전 체제가 극에 달했던 대한민국에서 납북귀환어부들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간첩'이자 '감시 대상'으로 취급받았던 것이다. 그들의 삶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사찰과 감시의 눈길이 늘 따라다녔다.

    영장없는 체포, 불법 구금, 그리고 대공분실의 고문


    귀환 후 1년여가 지난 1969년 6월 초순경, 김정태님의 주거지에 전남경찰국 정보과 대공분실 소속 경찰관들이 닥쳤다. 체포 영장 따위는 제시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작성한 체포보고서에는 1969년 6월 19일 밤 9시 임자도에서 체포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러나 실제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는 이미 그 이전인 6월 18일과 19일에 작성돼 있었다. 임자도에서 광주에 위치한 전남경찰국까지의 당시 교통 사정과 이동 거리를 감안할 때, 19일 밤에 체포해 당일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했다. 수사기관은 체포 일시마저 가짜로 만들어내며 불법 인신속행을 은폐했던 것이다.


    김정태님은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된 6월 26일까지 최소 14일 동안 영장도 없이 밀실에 갇혀 불법 구금당했다. 항소이유서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기록에 따르면, 대공분실에서의 14일은 지옥과 같은 시간이었다. 당시 김정태님이 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1970년 작성)의 내용 일부를 보면 그 폭력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은 피고인을 약 20일 동안이나 연금해 갖은 고문을 하면서 억지 자백을 하게 했습니다. 지인들을 앞에 불러놓고 심히 구타하면서 허위 진술을 강요했고, 공포에 질린 그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억지 시인을 했습니다. 검찰에 송치될 때에도 '경찰에서처럼 시인하지 않으면 다시 불려와 큰일 난다'고 협박해 법률 상식이 없는 피고인은 그저 네네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김정태님은 수사기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북괴를 찬양했다', '지인들에게 북한의 우수성을 유포했다'는 식의 허위 자백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라는 거대한 죄명이 평범한 어부의 목을 죄어왔다.

    사법부의 방조와 50여년의 침묵

    1969년 12월 5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69고2717)은 김정태님에게 징역 7년 및 자격정지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임을 호소하고,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치며 억울함을 피력했으나 법원은 그때마다 피해자의 진실을 외면했다. 광주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눈을 감았고, 1970년 6월 30일 징역 7년의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청춘의 소중한 7년을 감옥에서 보낸 고인은 출소 후에도 사찰과 감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간첩'이라는 주홍글씨는 본인뿐만 아니라 임자도에 남겨진 가족들의 삶마저 짓밟았다. 자녀들은 사회적 냉대와 불이익 속에서 고통받아야 했고, 가문 전체가 숨을 죽인 채 살아야 했다. 김정태님은 억울함을 가슴에 품은 채 1990년 4월 21일,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진실은 과거사 정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타고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이 사건을 조사했고, 마침내 2024년 11월 19일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수사기록 분석과 관련자 진술을 통해 수사기관의 영장 없는 불법 체포·구금, 독직폭행 및 가혹행위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및 제422조가 정한 명백한 재심 사유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어 2026년 4월 10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정현기)는 57년 전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기 위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2025재고합2).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원곡(최정규, 박민서 변호사)의 법적 조력과 유가족의 단단한 의지가 어우러져 비로소 재심의 법정이 열리게 된 것이다.

    반전에 반전의 재심 법정

     무죄 선고 직후의 고 김정태님 유가족. 김준영(가운데)님이 박민서 변호사(가장 오른쪽)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무죄 선고 직후의 고 김정태님 유가족. 김준영(가운데)님이 박민서 변호사(가장 오른쪽)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박주원

    재심 재판의 진행은 신속하면서도 극적이었다. 지난 2026년 6월 25일 오전 11시 10분, 목포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재판부는 일괄적으로 증거조사를 마친 뒤 신속하게 변론을 종결했다. 유가족과 변호인은 마침내 억울함을 씻어낼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된 선고를 앞두고 변수가 발생했다. 검찰이 과거 수사 및 공판기록을 추가 증거로 내세우며 변론재개를 신청한 것이다. 억울한 세월을 버텨온 유가족의 가슴은 다시 한번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2026년 7월 23일 오전 11시 30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법정에서 추가 변론기일이 열렸다. 법정에는 제주와 임자도 등에서 온 아들 김준영님과 고 김정태님의 형제자매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고인의 넋을 달래고 가문의 한을 풀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였다.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 측은 추가 입수한 서류들을 증거로 신청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단호했다. 과거 불법 수사와 위법한 절차에 기반해 수집됐거나 증거능력이 결여된 서류들에 대해 재판부는 전부 '증거 미채택'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제출한 무리한 추가 증거 신청이 차단된 순간이었다.

    증거가 정리되고 절차가 마무리되자, 검사는 최후 변론에서 김정태님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앞서 진행된 관련 납북귀환어부 재심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불법 공권력 행사에 의한 피해임을 인정한 것이다.

    검사의 무죄 구형 직후, 재판부는 사실관계 및 법리적 논점 등을 살펴볼 때 선고를 길게 미룰 이유가 없다"며 당일 오후 3시에 즉일 선고를 하겠다고 했다.

    오후 3시, 예정보다 늦게 시작된 선고재판에서 재판장이 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주문, 피고인은 무죄."

    단 한 문장의 선고였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57년의 세월과 한 어부의 부서진 삶, 그리고 유가족들이 견뎌온 모진 세월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법정에 모인 임자도 형제자매들과 아들 김준영님은 한없이 흐느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던 거대한 폭력이, 반세기나 지나서야 법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과거사 청산의 과제와 남겨진 숙제

    오늘 목포지원에서 내려진 무죄 선고는 단지 한 개인의 명예 회복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1960~1970년대 냉전의 최전선에서 국가 폭력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납북귀환어부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반성이자 역사적 단죄다.

    그러나 무죄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김정태님은 이미 36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가 겪었던 육체적·정신적 고통, 출소 후 빼앗긴 삶의 시간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완벽히 보상할 수 없다. 유가족들이 받아온 사회적 낙인과 경제적 곤란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국가는 무죄 선고에 이어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 형사보상 및 국가배상을 통한 실질적인 피해 회복 절차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여전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재심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과거사 희생자들의 기록을 스스로 발굴하고 바로잡는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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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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