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죄 선고 직후의 고 김정태님 유가족. 김준영(가운데)님이 박민서 변호사(가장 오른쪽)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박주원
재심 재판의 진행은 신속하면서도 극적이었다. 지난 2026년 6월 25일 오전 11시 10분, 목포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 재판부는 일괄적으로 증거조사를 마친 뒤 신속하게 변론을 종결했다. 유가족과 변호인은 마침내 억울함을 씻어낼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정된 선고를 앞두고 변수가 발생했다. 검찰이 과거 수사 및 공판기록을 추가 증거로 내세우며 변론재개를 신청한 것이다. 억울한 세월을 버텨온 유가족의 가슴은 다시 한번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2026년 7월 23일 오전 11시 30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법정에서 추가 변론기일이 열렸다. 법정에는 제주와 임자도 등에서 온 아들 김준영님과 고 김정태님의 형제자매들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고인의 넋을 달래고 가문의 한을 풀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자리였다.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 측은 추가 입수한 서류들을 증거로 신청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단은 단호했다. 과거 불법 수사와 위법한 절차에 기반해 수집됐거나 증거능력이 결여된 서류들에 대해 재판부는 전부 '증거 미채택'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제출한 무리한 추가 증거 신청이 차단된 순간이었다.
증거가 정리되고 절차가 마무리되자, 검사는 최후 변론에서 김정태님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앞서 진행된 관련 납북귀환어부 재심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불법 공권력 행사에 의한 피해임을 인정한 것이다.
검사의 무죄 구형 직후, 재판부는 사실관계 및 법리적 논점 등을 살펴볼 때 선고를 길게 미룰 이유가 없다"며 당일 오후 3시에 즉일 선고를 하겠다고 했다.
오후 3시, 예정보다 늦게 시작된 선고재판에서 재판장이 주문을 읽어 내려갔다.
"주문, 피고인은 무죄."
단 한 문장의 선고였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57년의 세월과 한 어부의 부서진 삶, 그리고 유가족들이 견뎌온 모진 세월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법정에 모인 임자도 형제자매들과 아들 김준영님은 한없이 흐느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던 거대한 폭력이, 반세기나 지나서야 법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과거사 청산의 과제와 남겨진 숙제
오늘 목포지원에서 내려진 무죄 선고는 단지 한 개인의 명예 회복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1960~1970년대 냉전의 최전선에서 국가 폭력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납북귀환어부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반성이자 역사적 단죄다.
그러나 무죄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김정태님은 이미 36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그가 겪었던 육체적·정신적 고통, 출소 후 빼앗긴 삶의 시간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완벽히 보상할 수 없다. 유가족들이 받아온 사회적 낙인과 경제적 곤란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국가는 무죄 선고에 이어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 형사보상 및 국가배상을 통한 실질적인 피해 회복 절차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여전히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재심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과거사 희생자들의 기록을 스스로 발굴하고 바로잡는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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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귀환어부' 고 김정태, 57년 만에 '무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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