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고차 빌려 전국 미대 졸업전 누빈 부부... 그들이 만든 '신사옥'

문화 인프라 척박한 은평구서 예술가 재기 돕는 아트스페이스... 소외된 예술가들의 무대가 되다

등록 2026.07.23 18:04수정 2026.07.2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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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시민신문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佛光洞)은 부처님의 자비로운 빛이 스며든 동네라는 깊은 뜻을 품고 있지만, 이곳을 찾아오는 대중에게는 등산배낭을 멘 인파와 왁자지껄한 먹자골목의 이미지가 먼저 스치는 곳이다. 여름하고도 한낮, 요란한 물회와 장어집 간판들이 늘어선 골목 한가운데를 걷다 보면 반듯하면서도 이질적인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아래 신사옥)'이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들은 '새로 지은 회사 건물인가?' 고개를 갸웃하곤 한다. 은평구에 둥지를 튼 지 9년, 화랑을 연 지 올해로 4년 반이 되었다는 공동대표 이지영·옥정호 부부 작가는 이를 두고 "구사옥은 없는 신사옥"이라며 유쾌하게 웃는다.


원래 은평구 신사동의 지하 공간을 염두에 두고 '신사(동) 자원' 혹은 '신사옥'으로 지으려던 이름을 불광동으로 옮겨오며 그대로 살렸다. 냉면 맛집처럼 직관적이면서도, '새로운 이야기(新事)가 생겨나는 공간(屋)'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일종의 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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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조금 문턱이 높은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을 다루다 보니, 골목 상인이나 어르신들은 "무료 관람"이라는 안내에도 선뜻 들어서기를 어려워한다. 초창기엔 식당을 돌며, 편의점 직원에게도 구경오라 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이웃 중에 아래층 가게 사장님이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찾아와 격려해 준 것이 전부일 만큼, 지역 주민과의 밀착은 여전히 숙제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들고 골목을 두리번거리는 이들은 백발백중 신사옥을 찾아오는 미술 애호가들이다. 문화적 인프라가 척박한 은평구에서, 신사옥은 마치 모래 속에 묻혀 있던 주홍색 머리핀처럼 반짝이는 문화 공급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정부기관이나 단체의 적극적인 문화 예술 지원이 아쉬운 상황 속에서도, 신사옥이 지난 4년간 다져온 기획의 깊이는 여느 대형 미술관 못지않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로 5회차를 맞이한 '전국대전(올해의 졸업 작품 프로젝트)'이다.

"서울 중심의 미술계에서 지방 대학 졸업생들이 서는 무대는 턱없이 좁습니다. 그 절실함을 알기에 2022년 겨울부터 전국 미대 졸업전시를 직접 보러 다녔어요. 서양화, 동양화, 조소를 다 챙기려면 한 학교당 서너 번, 두 달 동안 총 80여 차례를 가야 합니다. 둘이서 봉고차 한 대 렌트해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작품을 직접 픽업해 전시를 올렸죠."(옥정호 공동대표)


될성푸른 예비작가라면 즉각 사회관계망에 올려 주목받을 기회를 마련해 주려는 이들의 행보는 실시간으로 퍼져나갔고, 어떤 갤러리든 원석 같은 예비·지역 작가들을 발굴해 가기 바라는 가교 역할을 해 왔다.

신사옥의 시선은 이처럼 처음 시작하는 작가에 그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작가로도 이어졌다. 육아, 경제적 어려움, 간병 등으로 작업을 멈춰야 했던 이들을 위한 '경력단절 작가 공모전'이 대표적이다. 사실 경력단절이란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아로니아 농사를 지으며 잡초와 씨름하다가 그 잡초를 잘 키워내 전시를 한 작가(독일 전시로 연계), 주 5일 가구회사에 다니지만 주말에는 자신의 작업을 하는 작가 등 사라질 뻔한 예술가의 불씨를 신사옥이 다시금 지펴 올렸다.

여기에 나이 제한을 없앤 신진작가 공모, 은평 지역 작가들을 불러 모은 '은평대소동', 세월호 10주기 추모전, 탄핵 1년을 맞은 '안녕하세요' 전까지, 소외된 예술가들의 마중물 역할은 물론 시대의 공기와 지역의 담론을 쉼 없이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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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신사옥에서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에서 회화를 가르치고 있는 문영민 작가의 초대전 '환영에서 환영으로 (From Illusion to Reception)'이 오는 8월 15일까지 열리고 있다.

작가는 10년 넘게 제사와 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물화 형식으로 그려왔다. 서양 미술사에서 정물화가 낮은 단계의 예술로 치부된 이유가 '여성의 공간과 고된 노동'을 재현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한 작가는, 정작 제사 준비에는 참여하지 않는 남성이자 멀리서 한국을 바라보는 '이민자'라는 이중의 외부자 시선으로 제사상을 관찰한다.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제사상 뒤에 숨겨진 어머니와 여성들의 헌신을 기리는 시도다. 전시장에 놓인 빈 제사상과 접힌 병풍은 망각과 텅 빈 마음, 혹은 소중한 이를 기리기 전후의 고요한 시간을 연상시키며 묵직한 울림을 준다.

종로, 인사동, 마포의 세련된 화랑가와 비교하면 불광동 먹자골목은 여전히 변두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지영·옥정호 대표는 "변두리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명확한 역할이 있다"고 단언한다.

스타 인플루언서 작가 중심의 화려한 미술계 이면에서, 조금은 투박하고 우직하게 자신들만의 '수행'을 통해 자생적인 담론을 형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1년에 1000명씩 알음알음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늘어가는 것처럼, 이들의 진심은 거북이걸음으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올 하반기 내내 신사옥의 문은 계속 열려 있다. 올 연말까지 신사옥 살롱전을 비롯해 활동재개 공모 당선전, 박선희 개인전, 김형관 초대전 등 쉴 틈 없이 이어질 예정이다. 불광동 먹자골목의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새로운 문화의 활력소로 단단히 자리매김할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의 내일이 더욱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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