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시티·스마트 빗물 관리·측우기... 세계는 배우는데 우리는 왜

기후위기 시대, 새로운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진 경험이었다

등록 2026.07.24 17:23수정 2026.07.24 17:23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제25회 국제수리환경공학회 아시아·태평양(IAHR-APD) 학술대회 2026'에서 발표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영국 엑스터대학교(Centre for Water Systems)의 피트 교수가 연구실을 찾아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자 그는 뜻밖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교수님, 저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스타시티부터 다녀왔습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세계 여러 도시의 홍수 관리 사례를 연구하는 그에게 스타시티는 꼭 한번 직접 보고 싶었던 장소였던 것이다.

영국 교수가 배우러 온 한국의 빗물 관리 피트 영국 엑스터대학교 교수(오른쪽)가 스타시티 빗물 관리 사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영국 교수가 배우러 온 한국의 빗물 관리 피트 영국 엑스터대학교 교수(오른쪽)가 스타시티 빗물 관리 사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무영

2013년 도쿄에서 들은 발표가 연구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2013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물학회에서 내가 발표한 스타시티 빗물 관리 사례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발표의 핵심은 단순한 빗물 저장조가 아니었다. 지하 3층 주차장 아래를 한 층 더 굴착해 약 3000톤 규모의 빗물 저장조를 만들고, 이를 다시 1000톤씩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홍수 방지용, 물 절약용, 그리고 비상용으로 각각 활용하는 개념이었다.

설치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그 일대는 큰 침수 피해를 겪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물순환을 바꾸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 내용은 이전에 소개된 바 있다(관련 기사: 상습 침수 지역의 빗물을 모았을 뿐인데, 이런 결과가 https://omn.kr/2eaqc).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노트북이었다. 첫 화면에는 엑스터대학교 로고와 함께 내 연구실 옥상 정원 사진, 스타시티 사진, 그리고 와플과 팬케이크 위에 꿀을 부어 불투수면과 투수면의 차이를 설명하는 그림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내 논문뿐 아니라 SNS에 올린 글과 그림을 꾸준히 보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도 소개한다고 했다. 논문보다도 현장의 사례와 쉬운 비유가 연구와 교육에 더 큰 영감을 준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영국 교수의 강의 첫 화면에 담긴 한국의 빗물 관리 영국 엑스터대학교 Pete 교수의 발표 첫 화면. 서울대학교 한무영 명예교수의 연구실 옥상 빗물시설, 스타시티 빗물 관리 사례, 불투수면과 투수면을 설명하는 '와플과 팬케이크' 비유가 함께 담겨 있다. Pete 교수는 2013년 도쿄 국제학회에서 스타시티 발표를 들은 이후 한국의 빗물 관리 사례를 연구와 교육에 꾸준히 활용하고 있다.
▲영국 교수의 강의 첫 화면에 담긴 한국의 빗물 관리 영국 엑스터대학교 Pete 교수의 발표 첫 화면. 서울대학교 한무영 명예교수의 연구실 옥상 빗물시설, 스타시티 빗물 관리 사례, 불투수면과 투수면을 설명하는 '와플과 팬케이크' 비유가 함께 담겨 있다. Pete 교수는 2013년 도쿄 국제학회에서 스타시티 발표를 들은 이후 한국의 빗물 관리 사례를 연구와 교육에 꾸준히 활용하고 있다. 한무영

서울이 먼저 제안했던 스마트 빗물 관리


대화는 자연스럽게 스마트 빗물 관리로 이어졌다. 그는 현재 영국에서 IT를 이용해 강우를 예측하고 저류조의 수위를 관리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이러한 개념을 서울시가 이미 2005년경 제안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우예보와 저장조의 수위를 연계하여 앞으로 큰비가 예상되면 미리 일부 물을 방류하고, 반대로 가뭄이 예상되면 최대한 저장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당시에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 실용화되지 못했지만, 이후 호주의 Tony Wong 교수가 이 개념을 발전시켜 실제 도시 물관리 기술로 적용하였다.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그 아이디어에 감사한다고 말하며 지금도 관련 발표에서 내 이름을 인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가장 궁금해한 질문은 기술이 아니었다. "이렇게 성공한 사례가 있는데 왜 한국에서는 더 확산되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2002년 월드컵 경기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1년 당시 수도법에는 물수요관리 정책의 하나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는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 결과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과 많은 공공건축물에 빗물이용시설이 설치되었다. 그는 그런 제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워했지만, 더욱 놀란 것은 지금은 그 정신이 물재이용법 속에 묻혀 점차 잊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대화를 이어가면서 우리 둘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발전한다. 그러나 제도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사라진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담당 공무원이 관심을 두지 않으면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좋은 법도 운영하는 사람이 바뀌면 형식만 남게 된다. 결국 기술의 발전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인식과 정책의 지속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측우기를 보고 감동한 영국 교수

마지막으로 연구실에 있는 측우기를 보여주었다. 세종대왕이 1441년 세계 최초의 국가 강우관측제도를 만들고, 전국적으로 비를 측정하여 농정과 행정에 활용했던 이야기를 설명했다. 그는 한동안 측우기를 바라보다가 "이것은 단순한 측정기구가 아니라 물을 바라보는 철학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는 오히려 나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지만, 해외 연구자들은 오히려 대한민국의 물관리 철학을 새로운 기후위기 시대의 해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600년 전 측우기가 이어준 한·영 물관리의 대화 영국 엑스터대학교(Centre for Water Systems)의 Pete 교수(오른쪽)가 서울대학교 한무영 명예교수와 함께 측우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ete 교수는 세종대왕이 1441년 세계 최초의 국가 강우관측 제도를 도입한 역사와 물관리 철학을 듣고 깊은 관심을 보이며, 기후위기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600년 전 측우기가 이어준 한·영 물관리의 대화 영국 엑스터대학교(Centre for Water Systems)의 Pete 교수(오른쪽)가 서울대학교 한무영 명예교수와 함께 측우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ete 교수는 세종대왕이 1441년 세계 최초의 국가 강우관측 제도를 도입한 역사와 물관리 철학을 듣고 깊은 관심을 보이며, 기후위기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한무영

이번 만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국 교수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이 만들어 놓은 성공 사례를 확인하러 왔다는 사실이었다. 스타시티, 스마트 빗물 관리, 수도법의 빗물이용 의무화, 그리고 측우기까지. 세계는 이러한 사례를 배우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점차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만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훌륭한 경험과 제도를 다시 발견하고 이어가는 일이다. 그날 연구실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외국 교수가 한국에서 배운 것보다 내가 우리나라의 가치를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되었음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25 년 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빗물 관리 정책을 추진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수도법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빗물이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한 많은 공공건축물에 빗물이용시설이 설치되었다. 스타시티의 3000톤 빗물저장조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는 바뀌고 담당자는 교체되었으며, 정책의 철학은 점차 희미해졌다. 기술은 남아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사회적 관심은 예전만 못하다. 반면 해외에서는 여전히 우리나라의 사례를 연구하고, 교육자료로 활용하며, 미래 도시의 모범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만남은 새로운 기술을 배운 자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외국 연구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었던 소중한 자산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새로운 시설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미 검증된 성공사례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기술은 사람을 통해 살아남고, 제도는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측우기와 측우제도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물관리 철학은 스타시티의 빗물저장조와 스마트 빗물관리 기술로 이어졌다. 이제는 그 유산을 과거의 성과로만 남겨둘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다시 발전시켜 세계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번 영국 교수와의 만남은 우리 스스로 잊고 있던 대한민국 물관리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한 소중한 계기였다.
#영국교수 #대한민국빗물관리 #측우기 #빗물관리 #물관리철학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8년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구직급여 신청하고 깨달은 것 8년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구직급여 신청하고 깨달은 것
  2. 2 김승원 지키려다 정권 무너져... 아닌 건 아니다 김승원 지키려다 정권 무너져... 아닌 건 아니다
  3. 3 김어준이 맞았나, 민티07 뜨자 유튜브 적극 시청자 늘어 김어준이 맞았나, 민티07 뜨자 유튜브 적극 시청자 늘어
  4. 4 한국 기술로 소나무 살린 중국... 실패의 길로 가는 산림청 한국 기술로 소나무 살린 중국... 실패의 길로 가는 산림청
  5. 5 악취 풍기던 성남 탄천, 이젠 이런 동물까지 산다고? 악취 풍기던 성남 탄천, 이젠 이런 동물까지 산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