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캄탄 씨 가 불발탄 제거 작업이 완료된 밭에 서 있다. 뒤로 센터 523부대의 차량과 베이스캠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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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적고 들어간 현장… 눈앞에서 폭탄이 터졌다 https://omn.kr/2j3l1
새벽 5시,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라오스 비엔티안주 까시군에 닭 울음소리가 퍼졌다. 센터 523부대 대원들에게 닭 울음은 기상나팔이었다.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금속탐지기와 보호장비를 챙겼다. 숙소에서 불발탄 제거 현장까지는 차량으로 약 20분. 대원들은 다른 작전지역에 비해 이동 거리가 짧은 편이라고 했다. 현장에 도착한 대원들은 전날 철거했던 천막과 작전판, 게시판을 다시 설치했다. 비와 안전 문제에 대비해 매일 설치와 철거를 반복한다.
오전 7시가 되자 캄싱 핌판타원 까시군 불발탄 제거부대 총책임자가 짧게 점호했다. 그는 대원들의 건강 상태와 장비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안전 수칙과 작업 구역, 임무를 전달했다. 현장에 들어선 뒤에는 휴대전화 사용이 금지됐다. 현장 관계자는 전자기기가 폭발물 처리 과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대원들은 휴대전화를 제출한 뒤 탐지기와 무전기에만 의지했다.
이들의 하루는 땅속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 알 수 없는 밭을 한 걸음씩 확인하는 일로 시작됐다. 대원들은 한 시간 동안 탐지 작업을 한 뒤 10분가량 휴식을 취했다. 의료진은 휴식 시간마다 대원들의 얼굴색과 호흡을 살폈다. 그늘이 거의 없는 산비탈에서 작업이 이어지는 만큼 온열질환 위험도 컸다.
센터 523부대 소속 의료진 낭 푸씨는 현장 대원들의 혈액형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경상자는 약 13㎞ 떨어진 군 병원으로, 중상자는 약 220㎞ 떨어진 103중앙병원으로 이송한다.
"불발탄은 우리도 무섭다"…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

▲센터 523부대원들 이 불발탄 제거 현장에 설치한 천막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별도의 식당이 없어 작업 현장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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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자 베이스캠프 한쪽이 임시 식당으로 바뀌었다. 대원들은 천막 아래 간이 식탁을 펴고 옆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었다. 작업복과 장화를 벗지 않은 채 식사를 마친 뒤 다시 탐지기를 들었다.
대원들은 금속 반응이 나타난 지점을 일일이 확인했다. 같은 절차가 반복됐지만 익숙함은 오히려 경계해야 했다. 캄바시아 대원은 "긴장을 놓는 순간 사고가 난다"며 "내 실수는 나만의 사고로 끝나지 않고 함께 작업하는 동료의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발탄 제거가 두렵지 않으냐는 질문에 "당연히 무섭다"고 답했다. 이어 "무섭기 때문에 교육받은 대로 원칙과 절차를 더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했다. 센터 523부대가 작업하는 산비탈 위에는 주민 오이캄탄(49) 씨의 밭이 있다. 밭에서 내려다보면 대원들이 탐지기를 움직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이캄탄 씨는 7년 전 후아무앙을 떠나 까시군으로 이주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찾은 곳이었다. 이 지역에 불발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땅속에 이처럼 많은 폭발물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가 지금의 밭에서 마음 놓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약 2년 전이다. 그전에도 밭일을 했지만 불발탄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 수 없어 늘 불안했다. 오이캄탄 씨는 "예전에는 밭에 들어가도 늘 다니던 곳만 밟았다"며 "땅이 넓어도 실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발탄보다 무서운 건 가난과 배고픔이다

▲오이캄탄 씨가 가족들과 불발탄 제거를 마친 밭에서 농작물을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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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민들에게 농사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발밑에 묻힌 폭탄도 무서웠지만 농사를 포기한 뒤 닥칠 배고픔과 가난은 더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센터 523부대의 제거 작업이 진행되면서 마을의 풍경도 달라졌다. 안전이 확인된 땅에는 다시 씨앗이 뿌려졌고 가축을 키울 공간도 생겼다. 오이캄탄 씨는 경작 면적과 수확량이 늘면서 생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밭 아래에서 이른 아침부터 작업하는 대원들을 바라보며, 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탐지 작업 도중 BLU-26 집속탄 자탄이 발견됐다. 순간 현장의 공기가 달라졌다. 대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무전기 너머로 짧은 지시가 잇따랐다. 하위사이 워라봉 불발탄 제거팀장은 대원들과 함께 불발탄의 종류와 상태를 확인한 뒤 폭파 준비에 들어갔다. 불발탄에서 안전지대까지 격발용 전선이 길게 이어졌다. TNT 폭약 200g과 전기뇌관 1개가 설치됐다.

▲센터 523부대 대원 이 불발탄 폭파에 앞서 확성기로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를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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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 지점 주변에는 4개의 경계 초소가 설치됐고, 인근 농민들의 대피를 위한 확성기 안내 방송도 이어졌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이 인근에서 농사를 짓거나 밭일을 하고 계시는 주민 여러분은 즉시 안전구역 밖으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뒤 불발탄 폭파 작업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구급차가 대기한 가운데 무전기에서는 각 초소의 안전 상태를 확인하는 보고가 잇따랐다.
"1번 초소 이상 없음. 안전합니다."
"2번 초소 이상 없음. 안전합니다."
"3번 초소 이상 없음. 안전합니다."
"4번 초소 이상 없음. 안전합니다."
모든 초소의 보고가 끝난 뒤 지휘관은 대원들에게 엄폐물 뒤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5, 4, 3, 2, 1."
폭발음이 산자락을 울렸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각 초소는 다시 인명과 시설 피해 여부를 확인했다. 현장 통제가 풀리고서야 하루 작업도 끝났다.
대원들은 장비와 베이스캠프를 정리하고 숙소로 향했다. 이들이 머무는 곳은 까시군 상공·산업무역사무소 건물을 임시로 활용한 숙소였다.
긴장 속에 보낸 하루 끝에 돌아온 임시 막사

▲센터 523부대원들 이 임시 막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양철지붕 아래 나무 평상이 다닥다닥 놓여 있어 개인 공간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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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이 하루 작업을 마치고 돌아온 곳은 숙소라기보다 임시 막사에 가까웠다. 양철지붕 아래 대나무와 나무판으로 벽을 세우고 일부는 푸른 방수포로 막아 놓았다. 좁은 통로 양쪽에는 나무 평상이 놓여 있었고, 대원들은 그 위에 돗자리와 얇은 침구를 깔고 잠을 잔다.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자리는 돗자리 한 장 남짓이었다. 옆 사람과의 간격은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웠다. 숙소는 온전히 쉬는 공간이라기보다 다음 날 작업을 버티기 위해 잠시 몸을 눕히는 곳에 가까웠다. 불발탄 제거 작업에 투입되면 대원들은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넉 달 동안 이곳에서 합숙한다. 그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작업과 숙소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

▲센터 523부대 남녀 대원들 이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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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를 마친 일부 대원들은 원 안에서 쇠공을 던져 표적 공 가까이에 붙이는 경기인 '페탕크'를 했다. 개인 운동을 하거나 작업복을 빨고 장비를 정리하는 대원도 있었다. 저녁 식사는 별도의 취사병 없이 대원들이 순번을 정해 준비했다. 남녀 구분은 없었다. 그날 담당이 아닌 대원들도 자연스럽게 채소를 다듬고 조리를 도왔다. 조금이라도 빨리 식사를 마치고 함께 쉬기 위한 배려였다.
이날 메뉴는 현지에서 '깽피아'라고 부르는 소고기 국물 요리와 돼지고기볶음이었다. 오랜 현장 생활 때문인지 대원들의 칼질과 불 조절은 능숙했다. 좁은 조리 공간에서도 서로 역할을 나눠 손발을 맞췄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휴대전화를 꺼내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거는 대원들이 눈에 띄었다. 낮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휴대전화가 저녁이 되자 가족과 연결되는 통로가 됐다. 대원들은 위험한 작업과 폭염을 견디는 일 못지않게 가족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화면으로 가족의 얼굴을 보고 집안 소식을 듣는 짧은 시간이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줬다.
센터 523부대 소속 탄찬시분 대원은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가족도 알고 있다"며 "걱정하면서도 가장 많이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가족"이라고 말했다.
"불발탄이 더는 나오지 않는 땅을 만들고 싶다"
군인은 라오스에서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불발탄 제거는 전문 교육과 자격이 필요한 분야다. 대원들은 훈련받은 전문가로서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 훠언펫 비라이톤 대원에게 불발탄을 발견할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그는 "불발탄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땅속에 남은 불발탄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새벽 닭 울음소리에 시작된 대원들의 하루는 가족과의 영상통화가 끝난 뒤에야 마무리됐다. 다음 날 새벽이면 이들은 다시 장비를 챙겨 같은 산길을 오른다. 땅속에 남아 있을 또 하나의 불발탄을 찾기 위해서다.
다음 편에서는 센터 523부대의 설립과 운영, 라오스의 불발탄 대응 체계와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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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발탄 무섭지"… 그래도 매일 탐지기 들고 나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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