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서사원
업무상 도연이 만나는 사람들은 회생 불능 가족이다. 상처 받은 아이, 가정 폭력 피해 여성 등 그들은 삭막한 삶에 처해 있다. 그들 마음은 압축기에 눌린 깡통처럼 납작하다. 조사관은 그들이 더는 절망하지 않게 알맞은 언어로 말해야 하고, 복잡한 속내를 들으며 이면의 진정성을 이해해야 한다.
이면의 진정성을 알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보통 그 사람의 행동을 보게 되지 그 행동의 계기까지 헤아리진 않는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을 보면 먼저 다혈질로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 이면에 두려움을 감춘 것일지도 모른다는 짐작까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삶은 초라하지 않다. 도연이 가사조사관으로 당사자들의 이면을 보려 애쓰는 것도 그런 이유다. 더는 그들의 삶이 꺾이지 않도록 지켜주기 위한 위로의 방식. 시간을 들여 양쪽의 사연을 듣다 보면 더 깊이 이해되고, 처음 내렸던 판단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타인이 모르는 사정이 있을 텐데 관찰만으로 성급하게 단정 짓는 건 더 큰 상처를 줄 뿐이다. 그것을 알기에 도연은 당사자의 사정을 차분하게 들었던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는 힘
도연은 매일 다른 가족의 갈등, 이별, 후회를 듣고 새로운 출발을 도우면서 정작 자신의 아픔은 돌보지 못한다. 데면데면한 부모와의 관계, 삶을 놔버린 언니의 선택, 전 직장에서 받은 상처 등 자기 삶은 해결하지 못하고 과거에 묶어둔 채로.
"매일 자신과 상관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듣는 게 도연의 일이었지만, 생의 어느 구간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감정이 이입되곤 했다. 삶은 다양하지만 또 대체로 비슷하니까. (198쪽)"
처음엔 객관적으로 들리던 사건 당사자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온 시점부터 도연은 그들에게 자신을 비춰보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면서, 외면했던 자신의 아픔과 가족의 상처를 다시 보게 된 도연.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차츰 자신의 상처도 이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사람의 상처도 나와 다르지 않구나, 이 사람도 후회하고 있구나를 느끼면서 도연은 오랫동안 방치했던 과거에 '마침내, 안녕'이라 고하며 화해할 용기를 낸다. 덕분에 세상을 향한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자신을 몰아붙였던 태도 또한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자기 짐도 무거운 도연에게 가사조사관이란 직업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싶었으나 책장을 덮으며 작가 '유월'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도연은 사건 당사자를 조사하는 가사조사관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조사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사조사관은 도연의 성장을 가장 잘 드러낼 만한 직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듣는 사람은 상대의 아픔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안의 상처부터 해결돼야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기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선 다른 이의 삶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칠 테니까. 상대의 이야기로부터 자신의 상처가 건드려질 테니까.
그런데 작가는 도연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상처 가진 사람도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기 몫의 상처는 있기 마련이고 그 상처가 다른 이를 이해하는 힘이 될 수 있다며. 이해는 상대의 삶을 끝까지 받아주겠다는 태도다. 그 태도는 자신을 향한 이해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지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들어준다는 것이 상대와 '나' 모두를 변화시키는 길이라는 걸 소설은 도연을 통해 전한다. '들어주는 자리가 만만치 않다'고 푸념했던 건, 그것이 오로지 상대를 위한 감당이라고 착각했던 내 오만이었음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마침내, 안녕
유월 (지은이),
서사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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