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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찾아봐"... 벌 아닌 '앎'이 혐오를 멈추게 한다

[혐오는 '농담'의 얼굴로 온다 ④] 폭력의 '첫 계단'에 선 아이들을 돌려세우려면

등록 2026.08.01 15:41수정 2026.08.2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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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고 스타벅스 응원' 사태로 드러난 10대의 혐오·조롱 문화를 현직 역사교사의 시선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혐오가 늘 '농담'의 얼굴로 시작되었다는 것, 아이들이 조롱한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 불안이 희생양을 만들어 온 구조, 말이 끝내 칼이 된 종착역, 그리고 그 흐름을 끊어 낸 회복의 길까지 다섯 편에 걸쳐 진단에서 해법으로 나아갑니다.[기자말]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린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유가족들이 기억영상 시청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월호참사 11주기 기억식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린 16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유가족들이 기억영상 시청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전 기사: "선생님 파란색이죠?"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세 가지 https://omn.kr/2j2py)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이후, 나는 해마다 학생들과 함께 기억과 추모 캠페인을 이어 왔다. 노란 리본을 나눠 달고, 그날을 기록한 글과 영상을 함께 보았으며, 때로는 광화문 농성장을 직접 찾아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곁에서 들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이 한낱 구호로 그치지 않도록, 아이들과 함께 기억하는 일을 나는 교실의 한 해 살이로 삼아 왔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을 결코 잊지 못한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유가족들이 단식 농성을 벌이던 바로 그 광장 앞에서, 일부 세력이 보란 듯이 음식을 먹어 대며 이른바 '폭식' 행위를 벌인 것이다. 온라인에서 조롱으로 소비되던 혐오가, 마침내 유가족의 눈앞에서 현실의 잔인함으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유가족의 눈물을 곁에서 지켜본 적 있는 나로서는, 그 장면이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 뼈아픈 것은 그 다음이었다. 그 패륜적 장면은 '소수의 일탈'로 조용히 묻히지 않았다. 사회의 자정 작용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뒤로 일부 10대·20대에게 하나의 '놀이'처럼 번져 나갔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나는 늘 같은 반문 앞에 서게 된다. "그래도 결국은 가벼운 장난 아니냐"는 물음이다. 정말 그럴까. 나는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늘도 학생들과 함께 역사가 이미 보여 준 혐오와 조롱의 '종착역'을 들여다본다.

말이 사람을 '벌레'로 만들 때: 1994년, 르완다

 르완다 키갈리 제노사이드 추모관의 한 벽면에 집단학살 희생자들의 이름 중 일부가 표시되어 있다. '바퀴벌레'라는 한 마디에서 시작된 비극은, 오늘 전 세계가 함께 기억하는 경고가 되었다.
르완다 키갈리 제노사이드 추모관의 한 벽면에 집단학살 희생자들의 이름 중 일부가 표시되어 있다. '바퀴벌레'라는 한 마디에서 시작된 비극은, 오늘 전 세계가 함께 기억하는 경고가 되었다. 미 공군 아카이브(퍼블릭도메인)

1994년,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 단 100일 동안 최소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학살당했다. 다수 종족이 소수 종족을 겨냥한 이 비극의 한복판에는, 놀랍게도 총이나 칼이 아니라 '라디오'가 있었다.

RTLM이라는 방송은 날마다 소수 종족을 '바퀴벌레'라고 불렀다. 사람을 벌레라 부르는 것, 역사학과 제노사이드 연구는 이를 '비인간화(dehumanization)'라 부른다. 상대를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박멸해야 할 해충으로 규정하는 순간, 폭력을 가로막던 마음의 문턱은 무너진다. '사람을 죽인다'는 죄책감이 '벌레를 없앤다'는 착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방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살해 대상까지 지목했고, 그 목소리를 들은 평범한 이웃들이 손에 무기를 들었다.


이 대목을 수업에서 다룰 때, 아이들이 가장 충격받는 지점은 학살의 '규모'가 아니다.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원래는 옆집에 살던 평범한 이웃이었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악마가 아니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벌레'라는 한 마디를 매일 듣다 서서히 무감각해진 보통 사람들이었다. 언젠가 한 학생이 수업이 끝난 뒤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그럼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예요?" 나는 그 질문이야말로 이 수업의 진짜 목표라고 여긴다. 아이를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계할 줄 아는 눈을 갖게 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수업 끝에 늘 한 가지 활동을 붙인다. 각자 최근에 '웃기다'며 돌려본 밈이나 유행어를 하나 골라, 그 말이 처음 어디서 나왔고 누구를 겨냥하는지 그 '족보'를 직접 추적해 오게 하는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이라 이름 붙였지만, 속뜻은 단순하다. '네가 웃은 그 말의 뿌리를 네 눈으로 확인해 보라'는 주문이다. 며칠 뒤, 한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쓰던 말이… 이런 뜻이었네요." 나는 그 한마디를 들으려고 이 수업을 한다.


생활지도의 현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몇 해 전, 한 아이가 수업 중 특정 집단을 '벌레'에 빗대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적이 있다. 교직 첫해의 나였다면 그 자리에서 엄하게 꾸짖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13년의 생활지도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호통은 표현을 잠시 숨기게 할 뿐 생각까지 바꾸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아이를 따로 불러, 화를 내는 대신 방금 이야기한 르완다의 라디오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말이 없어지던 아이의 표정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벌이 아니라 '앎'이 아이를 멈춰 세운 순간이었다.

역사는 두 번, '말'을 심판했다

역사교사로서 나는 이 지점에서 지난 1편의 한 장면을 다시 꺼내 놓는다. 유대인을 벌레처럼 그린 신문을 만든 율리우스 슈트라이허가, 자기 손으로는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음에도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반세기가 흐른 뒤, 국제사회는 르완다에서도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바퀴벌레'를 외치던 그 방송의 책임자들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이른바 '미디어 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총을 든 적 없는 그들이, 오직 '말'로써 학살을 준비한 죄로 단죄된 것이다.

인류는 반세기의 간격을 두고 두 번,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말과 그림, 그 자체가 이미 폭력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누군가의 감정적인 주장이 아니라, 인류가 값비싼 피의 대가로 확인하고 법으로 새겨 둔 원칙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혐오의 언어는 폭력의 '전 단계'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미 폭력의 '첫 단계'라고.

오해는 말자. 나는 우리 교실의 조롱이 곧 학살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둘은 규모에서도, 맥락에서도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과 '구조'다. 그 거대한 비극들조차, 첫 계단은 언제나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가벼운 한마디, 웃어넘긴 한 장의 그림이었다. 지금 아이들이 무심코 딛고 선 그 첫 계단이, 역사 속에서 어디로 이어졌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이 무거운 이야기를 굳이 교실로 가져오는 이유다.

돌이켜 보면, 앞선 편들에서 이야기한 교실의 장면들, 전직 대통령을 동물에 합성한 발표 자료, 특정 지역을 겨눈 응원 구호, '밈'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조롱들은 모두 그 '첫 계단'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곧 학살로 이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만드는 그 '방향'을 나눠 갖고 있다는 뜻이다. 역사교육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눈앞의 가벼운 장난 뒤에 드리운 그 방향을, 아이 스스로 알아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르완다도, 뉘른베르크도 다 지나간 옛일이라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나를 정말 서늘하게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세계가 같은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발표된 한 글로벌 테러리즘 보고서는 '청소년 급진화'를 서구 사회가 직면한 핵심 안보 위협의 하나로 꼽았다.

2025년 유럽과 북미의 테러 관련 수사에서 아동·청소년이 차지한 비율이 42%에 이르렀고, 이는 불과 4년 전의 세 배라고 한다. 과거 수년이 걸리던 급진화가, 이제는 단 몇 주 만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목하는 통로는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다. 짧은 영상과 알고리즘 추천, 그리고 외로움과 경쟁에 지친 아이들의 마음이다. 온라인에서 '밈'과 '놀이'로 시작된 혐오가, 소속감을 갈망하던 한 아이를 이른바 '외로운 늑대'로 키워 현실의 폭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독일의 정보 당국조차 극우 성향 인구의 증가를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핵심 위협으로 경고한다. 90년 전 독일의 그 웃음이, 오늘 다시 손안의 화면 속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나는 '방구석의 가벼운 놀이'라는 말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그 방구석이야말로, 역사가 그토록 오래 경고해 온 바로 그 계단의 첫 칸이기 때문이다.

'장난'이라는 이름의 사각지대

 짧은 영상과 알고리즘은, 외로운 한 아이를 몇 주 만에 급진화의 계단으로 밀어 올리기도 한다(AI 생성이미지).
짧은 영상과 알고리즘은, 외로운 한 아이를 몇 주 만에 급진화의 계단으로 밀어 올리기도 한다(AI 생성이미지). 오마이뉴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 위험을 다룰 장치가 아직 허술하다. 혐오 표현은 물리적 폭력 못지않게 중대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한 학교폭력과 달리 그 대상이 특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형사처벌로 규율하기가 어렵다. 바로 이 '사각지대' 때문에 혐오는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규제의 빈틈 속에서 '놀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며, 사람들의 공감 능력을 조금씩 무디게 만들고, 끝내는 공동체를 안에서부터 허무는 흉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배재고 사태는 그 '사각지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야구협회가 내린 6개월 출전정지 징계는 재심에서 한 달로 줄었고, 그 사이 처분의 근거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뒤늦게 한국야구위원회가 반사회적 물의를 빚은 학생 선수의 프로 진출을 제한하는 규약 개정을 검토한다지만, 이는 거꾸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혐오와 차별을 다룰 확립된 기준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이 잘못이고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합의한 규범이 아직 없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소중한 기둥이지만, 그 어떤 자유도 '타인의 존엄을 파괴할 자유'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누군가를 벌레라 부르며 웃을 자유는, 애초에 자유의 목록에 없다. 온라인의 알고리즘 편향에 갇혀 듣고 싶은 말만 믿고 타인의 생각을 지워 버릴 때, 건강한 민주적 소통은 완전히 불가능해진다.

가벼움을 가볍게 넘기지 않기 위하여

그러니 우리는 이 '가벼움'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은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가 딛고 선 그 첫 계단이 어디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미리 알려 주고, 그 계단 위에서 손을 잡아 돌려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른과 교육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겁주기는 아이를 움츠러들게 할 뿐이지만, 제대로 아는 것은 아이를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13년간 그 사실을 교실에서 거듭 확인해 왔다.

그렇다면 이 흐름을,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끊어 낼 것인가. 처벌과 낙인이 아니라 회복과 교육으로, 교실 하나가 아니라 학교와 가정과 미디어와 사회 전체가 함께 나서야 한다. 마지막 편에서는 바로 그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조롱 대신 대화를 가르치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절실한 '공부'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이종관은 역사란 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 믿으며,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역사 교사다. 그래서 아이들과 늘 함께 던지는 질문이 있다. '나의 평화, 너의 평화, 그리고 우리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을 교실과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답은 언제나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은 책으로 <1일 1주제 9분 만에 끝내는 한국사>, <이불킥 한국사>, <개념연결 초등 세계사 사전>(공저) 등이 있다.
#혐오 #조롱 #배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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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역사를 가르치고, 집에서는 8살 딸 지수와 6살 아들 지호에게 인생을 배우는 아빠. 첫째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고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과 세상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달리기를 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만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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