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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 건 참 힘들어, 그치?" 그럴 때 가슴에 푹 꽂힌 문장

    [오늘도 스누피] 걱정은 하루에 딱 하루치만

    등록 2026.08.02 11:53수정 2026.08.0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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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스누피'는 매번 지고 걷어차이면서도 다음 날 다시 일어나는 <피너츠>의 인물들을 통해 '실패해도 괜찮은 매일'을 건네는 에세이입니다.[기자말]
    찰리 브라운 옆에 앉았던 라이너스가 무심코 툭 던진다.

    "사는 건 참 힘들어. 그치?"


    찰리 브라운이 "맞다"고 한다.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연은 날리는 족족 '연을 먹는 나무에'게 잡아먹히고(원작에서 연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묘사되어 '연을 먹는 나무(The Kite-Eating Tree)'라고 불림), 루시의 장난으로 헛발질 한 공은 허공을 돌다 떨어지고(찰리 브라운이 달려와 공을 차려는 순간, 루시가 공을 빼버려 찰리 브라운이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장면) 밸런타인데이에는 한 통의 카드도 받지 못한 찰리 브라운인데(반면 스누피 앞으로는 여러 장의 카드가 도착한다).

    두 소년의 단골 대화 장소인 벽돌 담장 앞에서 찰리 브라운은 자못 심각하게 말한다.

    "그런데 나, 새로운 철학을 세웠어. 걱정은 하루에 딱 하루치만 하기로."
    I only dread one day at a time.

    처음 이 만화를 읽었을 때는 그냥 '찰리 브라운답다'며 웃어넘겼다. 자신이 키우는 개마저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서,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저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자꾸만 자신을 넘어뜨리니 걱정하는 방식만큼은 스스로 정하겠다는 단호한 반항. 그런데 불안으로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던 어느 날 다시 읽으니 '걱정은 하루에 딱 하루치만 하기로 했다'는 마지막 문장이 가슴 깊숙이 푹 꽂혔다.

     본문에 나온 만화가 실린 책. 언젠가 이 책을 풀세트로 다 모을 날을 꿈꿔본다.
    ▲ 본문에 나온 만화가 실린 책. 언젠가 이 책을 풀세트로 다 모을 날을 꿈꿔본다. 노시은

    단순함이 주는 위로

    불안이란 참 요물이다. 제멋대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끝낼 수 없던 일 옆에 다음 달 카드값을 가져다 놓고, 아직 오지도 않은 노후를 그 옆에 앉힌다. 십 몇 년쯤 전에 잘못 내뱉은 말과 외계인의 지구침공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을 한꺼번에 펼쳐놓은 뒤, 이 모든 것을 지금 해결하라고 닦달한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이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한 사람이 잠깐 방심한 사이에 평생을 한꺼번에 책임질 수는 없으니까.


    나도 잠자리에 누워 눈을 질끈 감아도 가슴 위로 겹겹이 쌓이는 수많은 불안의 지층에 눌려 숨이 막혀 버둥거리느라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많다. 일이 하나 끊기면 이번 달만이 아니라 앞으로 영영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을 것처럼 막막해진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실패를 먼저 겪고, 아직 오지 않은 가난에 미리 겁먹는다. 몸은 방 안에 누워 있는데 마음은 인생의 가장 먼 곳까지 달려가 지쳐 돌아온다.

    찰리 브라운의 철학은 불안을 없애는 방법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내일이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근거 없는 약속도 하지 않는다. 삶이 어렵다는 말에는 순순히 "맞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좋았다. 힘든데도 괜찮은 척하거나, 고통 속에서 반드시 의미를 찾아내려 하지 않아서.


    우리는 때로 너무 빨리 괜찮아지라는 요구를 받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거나, 이 시련도 결국 성장의 밑거름이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지나고 보면 어떤 고통은 정말 사람을 자라게 한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교훈이 되는 것은 아니며, 아직 아픈 사람에게 고통의 쓸모부터 찾아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는 게 어렵다면 우선 어렵다고 말해도 된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막막하면 막막하다고 인정해도 된다. 어둠을 견디는 첫 번째 방법은 거기에 빛이 있다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둡다는 사실을 똑바로 보는 일이므로.

    다만 찰리 브라운은 그 자리에서 삶 전체를 비관하지도 않는다. 불안을 없애는 대신 덩어리를 줄인다. 산더미 같은 평생의 걱정을 자그마한 하루치로, 광활한 우주까지 뻗은 미래를 오늘 밤까지로 잘라낸다. 오늘은 오늘 것만.

    이는 내일을 외면하는 태도와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내일의 걱정은 내일의 나에게 넘겨주는 일에 가깝다. 내일의 나도 나름대로 생각하고 견디고 방법을 찾아낼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것이다. 모든 짐을 오늘의 내가 독차지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도 자신을 신뢰하는 한 가지 방식일지 모른다.

    산책으로 틈내기

     평생 해야 할 걱정은 하루하루 쪼개서 하도록 하자!
    ▲ 평생 해야 할 걱정은 하루하루 쪼개서 하도록 하자! 노시은

    두 친구는 처음에는 나란히 앉아 있지만 곧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인생이 어렵다는 사실도, 찰리 브라운이 처한 형편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몸은 다음 장소로 건너간다. 그러면서 도착한 곳에서 새로운 철학을 떠올리는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와 현인들이 산책을 통해 영감을 얻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나도 자주 산책을 나가거나 몸을 움직인다. 걷는다고 카드값이 사라지거나 기다리던 답장이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몸을 일으켜 물 한 잔을 마시고, 창문을 열고, 집 앞을 한 바퀴 걷고 돌아오면 조금 전까지 삶 전체를 뒤덮었던 불안의 먹구름에 작은 틈이 생긴다.

    <피너츠>의 아이들은 자주 낮은 벽돌 담장에 기대어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눈다. 인생과 사랑, 죽음, 철학, 종교, 외로움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동네의 흔한 담장에서 오간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며 정말 필요로 하는 것들도 그 정도 높이에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삶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만 닿을 수 있는 높은 곳이 아니라, 오늘을 겨우 살아낸 사람이 잠시 몸을 기댈 수 있는 곳에.

    삶을 오직 사랑할 수 없는 날도 있다. 지금 겪는 고통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끝내 알아내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평생을 잘 살아내겠다는 다짐보다 일단 하루를 끝까지 살아보겠다는 결심이면 충분하다. 하루도 너무 길다면 저녁까지만, 저녁도 버겁다면 다음 한 시간만. 그것도 힘들면 우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연을 먹는 나무는 어김없이 찰리의 연을 먹을 것이다. 루시는 또 공을 빼버릴 것이고, 기다리던 카드는 끝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야구 경기는 또 완패하고 말지도. 찰리 브라운은 불행의 가능성을 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누구보다 많이 져본 아이이기 때문에, 삶을 견디는 단위를 작게 나누는 법을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언제나 하루씩만 온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오지도 않은 날들을 미리 불러 모아 한꺼번에 살아내려 한다. 그러니 오늘의 걱정 위에 내일의 걱정까지 몰려올 때, 찰리 브라운처럼 스르륵 선을 그어도 괜찮다. 걱정과 불안은 오늘치까지만 받을게. 내일 건 내일 오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가능하다면, 즉시 짬을 내어 산책을 나갈 것.
    덧붙이는 글 출처: 1966년 8월 8일 자 < Peanuts> , Charles M. Schulz.
    #노시은작가 #스누피덕후 #스누피홀릭 #그럼에도불구하고스누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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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배낭 속의 영국 남자』, 『언제라도 티타임』, 『화요일의 티타임』의 저자. 세상 구경하고 차 마시며 글, 사진, 영상, 그림으로 삶을 기록합니다. 아직은 벌이가 시원찮은 유튜버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는 진심입니다. 좋은 기획과 재미있는 작업 제안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비즈니스(출간·강의·글작업) 문의: peanutshol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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