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전 분리배출함의 상태
인천환경운동연합
경기가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장면이 보였다. 관중석에 남은 컵과 음식 포장재,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 종이 상자들이 통로와 쓰레기통 주변으로 몰린다. 야구장에서는 먹고 마시고 응원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운 즐거움 뒤에 너무 많은 쓰레기가 남는다는 점이다.
랜더스필드의 분리배출함 자체는 비교적 잘 갖춰져 있었다. 통로에 설치된 신형 분리배출함에는 일반쓰레기, 캔, 플라스틱, 투명페트병, 음식물쓰레기 등이 구분돼 있었고, 다회용기 반납함도 함께 배치돼 있었다. 통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분리배출함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다른 구장과 비교해 긍정적이었다.
문제는 종이와 비닐이었다. 야구장에서는 치킨과 닭강정, 피자 등의 종이상자와 포장지가 많이 발생하고, 비가 오는 날에는 일회용 비닐 우의도 대량으로 나온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종이류와 비닐류를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한눈에 알기 어려웠다. 종이류 수거함은 일부 구역에서 임시 상자 형태로 발견됐지만 구장 전체에서 일관되게 운영되지 않았고, 비닐류도 별도의 배출함이나 안내가 부족했다. 전국 구장 평가에서도 랜더스필드의 주요 개선 과제로 종이와 비닐 분리배출 문제가 지적됐다.
통로에는 분리배출함이 잘 설치돼 있는데 정작 음식을 먹는 매장 앞이나 취식 공간에는 일반쓰레기통만 놓인 곳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관중에게 정확한 분리배출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관중이 음식을 다 먹은 바로 그 장소에서 분리할 수 없다면,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도 일반쓰레기와 섞일 가능성이 커진다.
경기 종료 직후에는 관중 수만 명이 짧은 시간 안에 한꺼번에 이동한다. 쓰레기통 앞에 줄이 생기고, 수거함은 빠르게 가득 찬다. 컵은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음식물이 묻은 용기는 재활용할 수 있는지, 비닐과 종이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차분히 살피기 어려운 환경이다.
쓰레기통 앞에서 팬들이 완벽한 분리배출을 해내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응원가가 나오고 사람들이 이동하며 아이들은 뛰고 줄은 길다. 이런 공간일수록 배출 체계가 더 단순하고 선명해야 한다. 글을 자세히 읽지 않아도 그림과 색상만 보고 버릴 곳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분리배출함은 관중의 실제 동선에 배치돼야 한다.
경기 종료 후에만 전광판으로 분리배출을 안내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이닝 교대나 클리닝타임에 자리 주변을 한 번씩 정리하도록 안내하고, 다 먹은 포장재와 다회용기를 미리 구분하도록 해야 한다.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와 마스코트가 "우리 자리부터 깨끗하게", "다회용기는 반납함에"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원순환이 별도의 캠페인이 아니라 야구장 문화의 일부가 돼야 한다.
잘 버리는 것보다 덜 버리게 해야 한다

▲ 경기 후 분리배출함의 상태
인천환경운동연합
분리배출만 개선한다고 야구장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중석과 통로가 깨끗하게 청소됐다고 해서 그날 사용된 컵과 음식용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쓰레기는 선별장이나 소각장, 매립지로 옮겨졌을 뿐이다. 쓰레기를 잘 치우는 것과 발생량 자체를 줄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컵과 그릇뿐 아니라 소스통과 수저류, 빨대, 뚜껑, 비닐봉투 등 식음료 제공 과정 전체를 살펴야 한다. 빨대나 뚜껑, 물티슈처럼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품목은 요청할 때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도 있다.
매점에서 판매되는 음식과 음료가 일회용 용기에 담겨 나온다면 관중은 처음부터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개인 텀블러나 용기를 가져오더라도 키오스크와 모바일 주문 중심의 매장에서는 이를 사용하기 어렵다. 팬들에게 "잘 버려달라"고 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구단과 구장 운영 주체가 팬들이 덜 버릴 수 있는 판매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랜더스필드의 다회용기 운영은 상당 부분 인천시의 지원에 기대고 있다. 행정의 지원은 변화를 시작하기 위한 중요한 마중물이다. 그러나 야구장은 구단이 운영하며 식음료 판매가 이뤄지는 사업장이다. 시범사업이 끝날 때마다 다회용기 운영이 중단되거나 축소된다면 안정적인 전환이라고 볼 수 없다.
청라 새 구장, 쓰레기까지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SSG랜더스는 2028시즌부터 청라의 새 돔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새 구장은 야구뿐 아니라 쇼핑과 문화, 여가시설이 결합한 대규모 복합공간으로 조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랜더스필드에서 드러난 문제를 새 구장으로 그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청라 새 구장이 진짜 새로운 야구장이 되려면 폐기물 문제를 경기 후 처리해야 할 부차적인 관리 업무로 봐서는 안 된다. 다회용기 사용 구역과 회수 동선, 세척·보관 공간, 분리배출함의 위치와 규격, 입점업체의 일회용품 감축 기준을 처음부터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새 야구장을 이야기하면서 좌석과 쇼핑, 먹거리, 편의시설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일회용품 감축과 자원순환 체계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운영을 시작한 뒤 기존 시설을 뜯어고치는 것보다 설계 단계에서 준비하는 편이 비용과 효율 면에서도 낫다.
천만 관중 시대, KBO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 ‘랜더스 쓰리런즈’에 참여한 시민이 분리배출함을 조사하고 있다.
인천환경운동연합
야구장 쓰레기는 한 구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어느 구장에 가도 비슷한 방식으로 음식이 팔리고, 비슷한 일회용 컵과 용기, 포장재가 쏟아져 나온다. 전국 351개 매장 중 349개 매장에서 일회용품이 사용됐다는 조사 결과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KBO리그가 천만 관중 시대를 자랑한다면, 그 관중이 남기고 가는 쓰레기까지 함께 책임져야 한다. 구단별 자율적인 시범사업만으로는 전국 구장의 운영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 KBO가 공통적인 자원순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각 구단이 폐기물 감축 목표와 연도별 이행계획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각 구장에서 한 경기당 폐기물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어떤 품목이 많이 버려지는지, 실제 재활용률은 어느 정도인지 시민들이 확인하기 어렵다. KBO와 구단은 구장별 폐기물 발생량과 재활용률, 처리 방식, 일회용품 사용량, 다회용기 도입률과 회수율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어느 구단이 실제로 쓰레기를 줄이고 있는지, 어떤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 평가할 수 있다.
랜더스필드를 좋아한다고 해서 문제에 눈감아줄 수는 없다. 오히려 좋아하기 때문에 더 제대로 바뀌기를 바란다. 우리 홈구장이고 내가 자주 가는 곳이기 때문에 쓰레기 문제도 남의 일처럼 말할 수 없다. 프로야구가 지금보다 더 많은 관중을 부르고 더 큰 산업이 되려 한다면, 그에 맞게 환경적 책임의 기준도 높아져야 한다.
응원은 뜨겁게 하되 쓰레기는 덜 남기는 야구장, 팬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구단과 리그가 먼저 구조를 바꾸는 야구장. 청라 새 구장으로 가기 전 SSG랜더스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모습은 바로 그런 야구장이다.
랜더스필드에서 신나게 응원한 뒤 쓰레기통 앞에서 멈춰 서는 일이 줄어들었으면 한다. 팬들이 덜 미안하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이제는 구단이 답할 차례다.

▲ 경기 종료 후 전광판으로 분리배출에 대해 짧게 안내하고 있다.
인천환경운동연합
야구를 사랑하지만 지구도 사랑하는 야구팬 모임
'크보플(KBOFANS4PLANET)'의 한마디
"SSG랜더스필드에 다회용기가 도입된 지 3년째지만, 여전히 관중들은 무엇을 반납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헷갈린다. 개인 물병에 물을 채울 음수대도 찾기 어려워 결국 생수를 또 사게 된다. 이러한 혼란은 팬의 부주의가 아니라 다회용기와 일회용품이 혼용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폐기물 발생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회용기를 전면 도입해 일회용품을 선택지에서 지워야 한다. 그래야 팬과 매장 모두 더는 헷갈리지 않고 당연하게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날이 올 것이다."
- SSG랜더스 팬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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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야구 응원하고 나왔는데, 쓰레기통 앞에서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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