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디킨슨의 육필 원고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퍼블릭 도메인
요즘 나도 매주 문장 하나를 골라 필사지를 만들어 쓴다. 필사책도 여러 권 샀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문장들을 나를 위해 엄선하는 일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직접 좋아하는 고전 문장을 번역하고, 한글과 영어로 필사를 한다. 옮겨 적다 보면, 백사십 년 전, 애머스트의 방에서 디킨슨이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문장 곁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필사책만 따로 모아 놓은 매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생각해 보면 필사가 화제에 오른 지는 꽤 되었다. 인스타그램에 '필사그램'을 검색하면 게시물이 수없이 나온다. 유행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오래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건 반짝하고 지나갈 유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한, 손으로 쓰는 그 짧은 시간을 찾는 사람도 줄지 않을 것이다. 잠깐이라도 한 가지에만 붙들려 있고 싶은 마음은 유행을 타지 않으니까 말이다.
디킨슨의 서랍 이야기가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발표할 곳도, 봐 줄 사람도 없는 문장을 옮겨 적던 백사십 년 전 사람의 이야기가, 화면 속 문장을 잠시 밀어 두고 펜을 쥐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편집된 시가 원고로 돌아오기까지
디킨슨의 시가 원래 모습대로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후 처음 출간된 시집들은 편집자들이 대시를 쉼표로 바꾸고, 제목을 붙이고, 운율을 다듬은 것이었다. 그 많은 줄표와 갑작스러운 대문자가 원래대로 복원된 것은 1955년, 토머스 존슨이 원고를 그대로 옮긴 전집을 내면서였다. 그녀가 죽고 나서 거의 70년 만이었다.
시는 판본에 따라 마지막 부분이 다르기도 했다. 단순히 어느 한 편집자가 문장을 마음대로 고친 것은 아니다. 디킨슨이 원고에 남겨 둔 여러 대안 가운데 서로 다른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한 편의 시가 편집자의 선택에 따라 얼마나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책자들 중 한 권에 이런 시가 있다.
영원은 지금들로 이루어진다.
Forever – is composed of Nows –
원문의 Nows는 보통 복수형으로 쓰지 않는 now에 디킨슨이 복수형 s를 붙인 말이다. 그래서 '순간들'이라고 매끄럽게 옮기는 대신, 낯선 표현을 그대로 살려 '지금들'이라고 번역했다. 이어지는 문장들에서 디킨슨은 날짜를 없애고, 달과 달, 해와 해 사이의 경계를 지우라고 말한다. 우리가 시간을 나누기 위해 그어 놓은 눈금을 걷어 내면, 지금과 영원은 서로 다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사십 년 뒤, 그 문장은 손으로 베껴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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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세계의 도시들과 도시문화를 전공했다. 유럽의 문학과 예술, 여행을 따라 도시를 걸었다. 여전히 골목과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관찰한다. 지금은 강화도에서 유럽 채소와 나무를 기른다. 틈틈이 글을 쓰고 문학을 번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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