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다 밝혀졌다는 역사는 박제될 뿐, 미시사 발굴해야
- 5·18은 오월정신을 기리고 그 의미를 계속 이야기해야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미 다 알려진 것 아니냐", "새롭게 밝혀낼 것이 더 있느냐"는 반응도 나온다. 기자로서 5·18에서 무엇을 더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가.
"꼭 5·18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국가와 경제 체제, 이념처럼 전체적인 구조와 거대한 흐름에 초점을 맞추는 '거시사'가 있고, 평범한 개인의 일상과 소집단, 구체적인 사건을 작은 단위로 탐구하는 '미시사'가 있다.
과거사 사건을 취재할 때 내가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게 거시사에만 매몰되지 말자는 것이다. 거시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사건을 어떻게 규정하고 진상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도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5·18에서 주로 주목하는 것은 팀 원버그 같은 한 사람의 미시사다.
거시사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면 '5·18은 이미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는데 다 밝혀진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파문이나 뒤이어 벌어진 배재고 사태를 봐도 그렇다. 우리 사회가 이미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합의하고 규정했는데도 왜 이런 왜곡과 폄훼가 계속 반복되는가. 이런 현상을 들여다보면 역사가 박제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역사가 박제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기록이 계속 나와야 한다. 새로운 기록이라고 해서 반드시 엄청난 특종이나 새로 발견된 거대한 문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광주에서는 정말 수많은 일이 벌어졌고, 개인 한 명 한 명이 저마다 다른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런 미시사를 꾸준히 기록으로 발굴해야 한다. 기록이 기억의 단초가 되고, 기억이 이어지고 쌓여야 비로소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원덕기 취재도 그런 맥락에서 시작했다."
30분 영상 속 2분 30초, 단번에 원덕기 알아봤다
- 힌츠페터가 촬영한 팀 원버그의 미공개 인터뷰 영상을 처음 확인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왜 이 기록을 지금 꼭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나.
"처음부터 '팀 원버그를 취재해야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201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2026년이 10주기다. 그래서 2025년 말부터 '내년에는 힌츠페터 10주기인데 뭔가 해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그가 남긴 자료들을 살펴봤다. 그러다 5·18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던 30분짜리 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영상을 계속 보고 있는데 갑자기 팀 원버그가 2분 30초 정도 등장했다.
아마 그 영상을 보고 바로 팀 원버그라는 걸 알 수 있는 기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2020년부터 팀 원버그를 계속 취재해 왔다.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움직이는 모습이나 목소리를 접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영상에서 얼굴이 나타나니까 단번에 알아봤다.
그때 느낌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웠다. 반가운 마음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2020년부터 취재해 왔으면서도 이 자료를 지금까지 발굴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반성도 많이 했다. 그래도 지금이나마 이 영상을 토대로 취재에 착수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팀 원버그의 생전 모습과 목소리를 전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기록을 발견한 순간부터는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취재를 시작한 2020년부터 이미 5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의 기억은 흐릿해질 수밖에 없다. 기록을 발굴해야 기억의 단초가 생기고, 기억이 쌓여 역사의 밑바탕이 된다. 그래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 많은 분이 팀 원버그와 5·18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
취재의 기초 자료가 영상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간단한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볼까 하다가 펀딩까지 진행하게 됐고 결국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과정이 정말 힘들지만, 끝까지 잘 마무리해서 많은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도록 하고 싶다."
미네소타라는 네 글자, 광주와 닮은 국가폭력을 떠올려
- 팀 원버그의 고향인 미국 미네소타까지 직접 찾아갔다. 최근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이민세관단속국의 국가폭력과 1980년 광주를 연결한 취재는 처음부터 예정돼 있었나.
"2020년부터 팀 원버그를 취재했기 때문에 그가 미네소타 출신이고 미네소타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그 지역 자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번에 영상을 발굴하고 과거에 수집했던 자료를 다시 꺼내 살펴보다가 '미네소타'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익숙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 미국 미네소타에서는 이민세관단속국에 의한 국가폭력 사태가 있었다. 특정 지역을 겨냥해 매우 강한 폭력이 가해졌고,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이웃들이 연대했다. 그 모습이 1980년 광주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마침 팀 원버그가 미네소타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도 미네소타라는 지역에서 성장하며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그 배경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초인이 아니라 일정한 삶의 서사를 통해 성장한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취재해 보니 미네소타는 미국에서도 민권운동의 산실로 불릴 만한 곳이었고, 그런 점에서 광주와 닮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팀 원버그는 미네소타라는 공간에서 큰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요즘 표현으로 하면 일종의 '스펙 쌓기' 차원에서 평화봉사단을 통해 한국에 왔다. 그렇게 우연히 찾은 한국에서 국가폭력을 마주했을 때 무엇이 그를 행동하게 했는가를 보여주려면 미네소타라는 공간이 매우 중요했다.
팀 원버그가 광주에서 보여준 행동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초인의 선택이 아니었다. 미네소타에서 경험한 민권운동의 전통과 공동체의 가치,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과의 연대가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취재 끝났다고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 나타났다
- 기획을 진행하며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록이나 증언도 많이 나왔나.
"영상을 발견하기 전에도 나름대로 팀 원버그에 관한 자료와 증언을 상당히 수집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획을 진행하면서 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나타났다. 그분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줬고, 덕분에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또 다른 서사가 만들어졌다. 국내외를 오가며 취재하고,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고, 자료와 유품을 발굴하면서 팀 원버그라는 한 사람의 삶이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복원됐다.
5·18기념재단과 협업해 기록물의 가치를 알릴 수 있었던 것도 의미가 컸다. 보도 이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새로운 자료와 증언을 제보해 주고 후원에도 참여하면서, 취재진만의 작업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기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확장됐다.
'5·18은 다 정리된 것 아니냐', '5·18은 이제 끝난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취재를 이어갈수록 아직 발굴되지 않은 기록과 기억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 이번 취재는 기사와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넘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으로 이어졌다. 앞으로의 계획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확히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했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긴 취재를 함께해준 기자들에게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장기 취재는 회사가 용인하고 지지해주지 않으면 계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갖은 난리를 피워도 힘을 실어줬던 당시 편집국장에게도 감사하다.
'내 이름은 원덕기' 펀딩에는 817명이 참여해 주셨다. 이제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는 상황에 이르렀다(웃음). 현재 영화 제작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영상 자료가 있으니 간단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정도였는데, 시민들의 관심과 후원이 이어지면서 영화 제작까지 오게 됐다.
미네소타 현지 취재 당시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팀 원버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팀 원버그의 삶을 이처럼 입체적으로 복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펀딩에 참여해 주신 분들의 뜻을 잘 받아 영화 제작을 끝까지 책임 있게 마무리하겠다. 상영회도 추진할 계획이다. 원덕기라는 인물을 통해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5·18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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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얼굴을 알아봤다"... 5년 추적 끝에 다시 만난 원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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