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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시금치, 오이.... 가격표를 보고 손이 멈췄다

기후위기가 소비자와 농가에 미치는 영향

등록 2026.08.06 17:54수정 2026.08.0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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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년 한 해, 손자와 함께 작은 텃밭을 일구며 생명의 신비를 배우고 환경을 위한다는 소소한 위안도 얻었다. 김장 배추와 무를 수확해 김치를 담그며 한 해 농사를 뿌듯하게 마무리했지만, 주말농장이 문을 닫으면서 올해는 텃밭을 이어가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러나 간절함이 통했는지 다른 마을에 딱 10평짜리 땅이 남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4월 초 재빠르게 임대했다. 겨우내 굳었던 흙을 뒤집고 퇴비를 섞은 뒤 상추와 열무 씨앗을 뿌렸다. 씨감자와 토마토, 고추 모종까지 심어 밭을 채우자 빈 땅이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작은 물뿌리개를 든 손자가 모종마다 정성스레 물을 주는 동안, 힘들게 얻은 이 작은 땅에서 올해도 우리 식탁이 채워질 것이라는 꿈과 희망이 퐁퐁 솟아났다.

초여름이 되자 텃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식탁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한아름 딴 상추로 쌈을 싸고, 풋풋한 깻잎 향을 맡으며 저녁을 차렸다. 마트의 비닐 포장된 채소와 멀어지는 날들이 늘었고, 주기적으로 뿌린 열무로 김치를 담가 식탁 위에서 계절을 온전히 누렸다. 열 평 남짓한 땅은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감자 캐던 날 장마가 비켜가고 폭염이 계속될 줄은 몰랐다.
▲감자 캐던 날 장마가 비켜가고 폭염이 계속될 줄은 몰랐다. 신혜솔

특히 감자를 캘 때는 땀의 대가를 고스란히 돌려주는 자연의 정직함에 감사했다. 흙을 헤집을 때마다 감자가 얼굴을 드러냈고, 손자는 흙 속의 보물을 찾은 듯 환호성을 질렀다. 그 순간은 아이에게는 신나는 놀이였고, 내게는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평화롭던 풍경은 7월에 접어들며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며칠간의 비가 그친 뒤, 텃밭은 유례없는 폭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폭염 앞에 고개를 숙인 작은 밭


아침저녁으로 휴대전화가 울렸다. 폭염주의보와 열대야 경보, 충분한 수분 섭취와 야외 활동 자제를 당부하는 안내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어졌다. 예전에는 태풍이나 집중호우 때나 받던 문자였지만, 이제는 한여름의 일상이 되었다. 경보가 거듭될수록 우리가 겪는 더위가 예년과 다르다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텃밭은 아침 일찍 물을 흠뻑 주어도 해가 중천에 오르면 금세 바싹 말랐다. 가뭄에 갈라진 땅은 물을 삼키기 바빴고, 작물의 잎은 맥없이 늘어졌다. 흐지부지 지나간 장마 뒤에 남은 것은 뜨거운 열기뿐이었다.


이상기후는 단순히 날씨가 더운 정도가 아니었다. 기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작물은 호흡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생장이 둔해진다. 열대야가 이어지는 밤에도 낮 동안 만든 양분을 소모하느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다.

낮의 폭염과 밤의 고온이 겹치면서 텃밭의 균형은 속절없이 무너져 갔다. 토마토는 붉게 익기도 전에 수분 불균형으로 껍질이 갈라졌고, 고추는 꽃을 피우고도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떨어졌다. 수확을 기대하며 다시 뿌린 씨앗들은 딱딱하게 굳은 흙 속에서 끝내 싹을 틔우지 못했다.

며칠만 돌보지 못해도 텃밭은 금세 생기를 잃었다. 땡볕 아래 물뿌리개를 들고 서 있는 시간은 더 이상 즐거운 노동이 아니었다. 손자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그곳은, 기후위기가 가장 먼저 도착한 생활의 최전선이 되었다.

마트 가격표에 붙은 '기후플레이션'의 경고

 보통 200g씩 담겨 1500원 정도였는데 150g으로 줄고 가격은 올라있는 상추
보통 200g씩 담겨 1500원 정도였는데 150g으로 줄고 가격은 올라있는 상추 신혜솔

8월로 들어선 며칠 전, 마트에서 상추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텃밭에서 바구니 가득 따오던 채소였다. 그러나 가격표를 보는 순간 손이 멈췄다. 지속되는 폭염으로 엽채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었다.

내가 사 먹던 시금치 한 단은 250g 기준 2,100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4980원이었고, 상추는 보통 200g 기준 1500원 선이었던 것이 150g에 2200원 선이었다. 특히 오이가 유독 비싸게 느껴졌다. 비교적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농협마트를 이용하는데도 그러했다.

 시금치 250g 2000원선에서 구입하던 것이 200그램에 5천원을 바라보고 있다.
시금치 250g 2000원선에서 구입하던 것이 200그램에 5천원을 바라보고 있다. 신혜솔
계산대 앞에서 문득 떠오른 것은 말라버린 텃밭의 풍경이었다. 열 평 남짓한 작은 밭조차 이토록 무너지는데, 노지에서 거친 기후를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농가의 타격은 얼마나 클 것인가.

뉴스 속 '기후플레이션'은 더 이상 거창한 경제 용어가 아니었다. 내 텃밭의 타들어간 채소 잎이 마트의 비싼 가격표로 옮겨온 이름이었다. 기후변화가 수확량을 줄이고, 그것이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실은 이미 우리의 식탁을 잠식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한철 채소값의 상승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후위기가 일상화 될수록 농산물 가격은 더 자주 널뛰고, 식탁의 불안도 커진다. 생산자는 수확량 감소와 늘어난 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소비자는 치솟는 식료품비를 마주한다.

농민은 날씨가 궂다고 농사를 포기할 수 없고, 소비자는 가격이 올랐다고 먹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기후위기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특히 식료품비 지출 비중이 큰 서민과 취약계층일수록 그 무게는 더욱 가혹하다. 기후플레이션은 결코 모두에게 공평한 위기가 아니다.

기후위기는 우리 집 식탁으로 먼저 왔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면 북극의 빙하나 지구 반대편의 산불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내가 몸으로 겪은 위기는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상추 한 포기를 살리려고 뜨거운 하늘을 올려다보던 텃밭과, 채소 가격표 앞에서 멈칫하던 장바구니 속에 이미 와 있었다.

손자에게 흙을 만지게 한 이유는 단순했다. 씨앗을 심고 기다리면 싹이 트는 자연의 순환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러나 올여름 텃밭은 다른 법칙을 가르쳐주었다. 인간이 망가뜨린 기후는 결국 우리의 밥상과 지갑으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더우니까 물 많이 먹어야 해! 작물에 물을 주는 손자
더우니까 물 많이 먹어야 해! 작물에 물을 주는 손자 신혜솔

오늘도 저녁이 되면 텃밭으로 향한다. 겨우 버티는 고추와 깻잎, 다시 심은 옥수수를 살피며 물을 준다. 이 작은 물줄기가 지구의 온도를 낮추지는 못한다. 그래도 물 주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손자와 함께 흙을 만지며 웃던 계절을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플레이션은 단지 물가 상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온 계절의 질서와 식탁의 풍요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다. 먹거리는 돈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흙과 물, 바람과 햇빛, 그리고 농부의 땀이 길러낸다.

다음 세대가 평범한 식탁을 누리게 하려면, 먹거리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제철 농산물과 생산자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는 생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달라진 기후 속에서도 농업이 버틸 수 있도록 사회와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위기는 이미 밥상머리까지 와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기후플레이션 #폭염 #텃밭 #자영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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