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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답 주는 시대에 청소년 철학책이 필요한 이유

[책이 나왔습니다]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철학>

등록 2026.07.29 11:41수정 2026.07.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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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교과를 맡다 보니 3월이면 학생들을 상대로 진로 상담을 많이 합니다. 왜 그 과에 가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둘 중 하나입니다. '엄마가 그러라고 했어요' '취업이 잘 된대요.'... 자기가 왜 그것을 고르는지 말할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습니다. 교실에서 30년을 보냈지만 해마다 되풀이됩니다. 아이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골라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어서입니다.

진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친구에게 지금 답장을 해야 할지, 하기 싫어진 활동을 그만두어야 할지, 모두가 찬성한 일에 혼자 반대해도 되는지 아이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까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습니다. 시험에 정답으로 나오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 철학에 주목하는 이유

이런 아이에게 철학책을 권하면 대개 같은 말이 나옵니다. 그거 배워서 어디에 쓰느냐고요. 요즘은 여기에 답하기가 한결 쉬워졌습니다.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자료를 보면 2024년 미국의 철학 전공자 실업률은 5.1퍼센트, 컴퓨터공학 전공자는 7퍼센트였습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 AI 기업들이 상주 철학자를 두고 철학 전공자를 앞다투어 뽑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내에서도 광주과학기술원이 올해 하버드대 출신 철학 교수 두 명을 새로 임용해 철학 교수를 세 명으로 늘렸다고 합니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말입니다.

경희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는 부산에서 한 강연에서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알파고 이후 코딩 열풍이 불어 컴퓨터공학과 인기가 치솟았지만 지금은 그 프로그래밍을 AI가 대체하고 있다는 예를 들면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와 철학,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챗GPT를 부리려면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고등학교 교양 교과에 '인간과 철학'과 '논리와 사고'를 진로 선택 과목으로 넣었습니다. 고교학점제에서 학생이 직접 골라 듣는 과목입니다.

교실에서 만나는 철학은 여전히 암기다


표지 표지
▲표지 표지 그래도봄

그런데 아이들이 교실에서 만나는 철학은 여전히 이름과 주장을 외우는 공부입니다. 원전을 펴 보라고 하면 문장이 길고 용어가 낯설어 몇 쪽을 넘기지 못합니다. 책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철학>을 쓴 이유입니다. 세네카, 에머슨, 버트런드 러셀,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 교과서에서 만나는 철학자 33명의 문장 100개를 골랐습니다. 한 문장을 읽고, 뜻을 확인하고, 손으로 옮겨 쓴 다음, 비슷한 경험을 적고, 그날 해 볼 행동 하나를 정합니다.

이렇게 적용해 볼 수 있겠습니다. 러셀은 훌륭한 책에도 지루한 부분이 있고 훌륭한 삶에도 재미없는 시기가 있다고 썼습니다. 동아리를 그만두려는 학생은 이 문장 앞에서 결론을 한 주 미뤄 봅니다. 에머슨을 읽은 학생은 다음 모둠 활동에서 맡고 싶은 역할을 한 문장으로 말해 봅니다. 율곡을 읽은 학생은 하기 싫은 일을 20분만 해 보고 두 줄로 기록합니다.


손으로 쓰고, 마주 앉아 말해 보고

필사도 쓰임 때문에 넣었습니다. 눈으로 읽으면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손으로 쓰면 단어와 문장부호를 다시 보게 되고, 그 몇 분 동안 자기 일을 떠올릴 시간이 생깁니다. 기록 칸에서는 막연한 말을 구체적인 말로 바꿉니다. 친구가 나를 무시했다고 쓴 학생에게는 실제로 들은 말과 자기가 짐작한 뜻을 나누어 적게 합니다. 공부를 못 하겠다고 쓴 학생에게는 어려운 과목과 단원, 막힌 부분을 차례로 적게 합니다. 아이가 채운 이 칸을 부모나 교사가 함께 보면 이야기를 시작할 자리가 생깁니다.

필사는 결국 혼자 하는 공부입니다. 공책을 덮으면 그대로 끝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책 부록에 교실과 가정에서 함께할 수 있는 철학 활동 열일곱 가지를 따로 담았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저녁 식탁에서는 부모님이 그대로 펼쳐 쓰시면 됩니다. 마주 앉아 한 가지씩 해 보는 동안 아이는 적어 둔 생각을 말로 꺼냅니다. 적어 본 것과 소리 내어 말해 본 것은 아이에게 남는 정도가 다릅니다.

꼭지마다 도덕의 자율과 책임, 국어의 주장과 근거처럼 관련 교과 단원을 표시했습니다. 교사는 독서 수업과 수행평가 자료로 쓰고, 학생은 진로 탐색과 생활 기록 활동에 씁니다. '인간과 철학'이나 '논리와 사고'를 골라 볼 학생에게는 미리 읽어 두는 교재가 됩니다.

3월에 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3월 상담에서 자기 이유를 또렷하게 말하던 몇 안 되는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디선가 한 번쯤 적어 본 아이들이었습니다. 철학자들도 이천오백 년 동안 같은 일을 해 왔습니다. 살면서 부딪힌 문제를 오래 생각하고 자기 답을 문장으로 남겼습니다. 저는 그 문장 가운데 100개를 빌려 왔습니다. 3월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아이가 꺼낼 말이 그 100장 어딘가에 적혀 있기를 바랍니다.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철학 - 생각이 자라고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철학자의 문장들

박균호 (지은이),
그래도봄, 2026


#필사 #철학 #고전 #박균호 #그래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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