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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봄
그런데 아이들이 교실에서 만나는 철학은 여전히 이름과 주장을 외우는 공부입니다. 원전을 펴 보라고 하면 문장이 길고 용어가 낯설어 몇 쪽을 넘기지 못합니다. 책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철학>을 쓴 이유입니다. 세네카, 에머슨, 버트런드 러셀,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 교과서에서 만나는 철학자 33명의 문장 100개를 골랐습니다. 한 문장을 읽고, 뜻을 확인하고, 손으로 옮겨 쓴 다음, 비슷한 경험을 적고, 그날 해 볼 행동 하나를 정합니다.
이렇게 적용해 볼 수 있겠습니다. 러셀은 훌륭한 책에도 지루한 부분이 있고 훌륭한 삶에도 재미없는 시기가 있다고 썼습니다. 동아리를 그만두려는 학생은 이 문장 앞에서 결론을 한 주 미뤄 봅니다. 에머슨을 읽은 학생은 다음 모둠 활동에서 맡고 싶은 역할을 한 문장으로 말해 봅니다. 율곡을 읽은 학생은 하기 싫은 일을 20분만 해 보고 두 줄로 기록합니다.
손으로 쓰고, 마주 앉아 말해 보고
필사도 쓰임 때문에 넣었습니다. 눈으로 읽으면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손으로 쓰면 단어와 문장부호를 다시 보게 되고, 그 몇 분 동안 자기 일을 떠올릴 시간이 생깁니다. 기록 칸에서는 막연한 말을 구체적인 말로 바꿉니다. 친구가 나를 무시했다고 쓴 학생에게는 실제로 들은 말과 자기가 짐작한 뜻을 나누어 적게 합니다. 공부를 못 하겠다고 쓴 학생에게는 어려운 과목과 단원, 막힌 부분을 차례로 적게 합니다. 아이가 채운 이 칸을 부모나 교사가 함께 보면 이야기를 시작할 자리가 생깁니다.
필사는 결국 혼자 하는 공부입니다. 공책을 덮으면 그대로 끝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책 부록에 교실과 가정에서 함께할 수 있는 철학 활동 열일곱 가지를 따로 담았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저녁 식탁에서는 부모님이 그대로 펼쳐 쓰시면 됩니다. 마주 앉아 한 가지씩 해 보는 동안 아이는 적어 둔 생각을 말로 꺼냅니다. 적어 본 것과 소리 내어 말해 본 것은 아이에게 남는 정도가 다릅니다.
꼭지마다 도덕의 자율과 책임, 국어의 주장과 근거처럼 관련 교과 단원을 표시했습니다. 교사는 독서 수업과 수행평가 자료로 쓰고, 학생은 진로 탐색과 생활 기록 활동에 씁니다. '인간과 철학'이나 '논리와 사고'를 골라 볼 학생에게는 미리 읽어 두는 교재가 됩니다.
3월에 같은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3월 상담에서 자기 이유를 또렷하게 말하던 몇 안 되는 아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디선가 한 번쯤 적어 본 아이들이었습니다. 철학자들도 이천오백 년 동안 같은 일을 해 왔습니다. 살면서 부딪힌 문제를 오래 생각하고 자기 답을 문장으로 남겼습니다. 저는 그 문장 가운데 100개를 빌려 왔습니다. 3월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아이가 꺼낼 말이 그 100장 어딘가에 적혀 있기를 바랍니다.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철학 - 생각이 자라고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철학자의 문장들
박균호 (지은이),
그래도봄,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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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답 주는 시대에 청소년 철학책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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