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해야 했을까?> 스틸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주로 감독의 명절 방문에서 이뤄진 촬영 시퀀스들을 연대기로 나열한다. 안타까움과 고통이 교차되고 그 감정이 무겁게 전이된다. 부모는 늙고, 누나의 상태는 악화한다. 감독의 카메라는 대체로 가족들을 지켜만 본다. 음악도, 내레이션도 없다. 누나에게 일상과 감정에 대해 질문해 보지만 돌아오는 건 조현병 환자 특유의 초점 없는 눈빛과 알아듣기 힘든 넋두리다. 영화 속 시간의 더께가 더해져 참혹함이 배가한다.
헛웃음 나는 반전마저 없었다면 더 힘들고 먹먹했을 터. 2008년 우여곡절 끝에, 그러니까 25년 만에 누나는 병원을 찾게 되고 처방받은 약 덕택에 3개월 만에 호전된다. 이후 정상적인 눈빛을 되찾고, 일상을 회복하며, 집 밖으로 나다닐 수 있게 된다. 별달리 큰 사고도 없었다. 그리고는 평범하고도 소중한 일상을 영위하다 얄궂고 서운한 운명을 마주하게 된다.
25년 그리고 3개월. 동생은 아버지에게도, 또 자신에게 묻을 수밖에 없다. 누나의 청춘을 앗아간 그 시간의 의미를, 걸어 잠근 자물쇠가 상징하는 25년의 덧없음을. 그 물음이야말로 <어떻게 해야 했을까?>가 세상에 나온 이유이자 끝나지 않은 감독의 자문일 것이요, 감독이 조심스레 관객들과 함께 나누고픈 화두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물음은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을 수밖에 없다.
영화의 후반부, 본인이 어쩌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인 누나와 끝끝내 체면치레에 몰두해 자기 기만적인 거짓말을 늘어놓는 아버지. 또 이들을 감당해 내야 하는 동생이자 아들의 모습은 조현병 환자 가족을 넘어 현대 사회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가족과 돌봄, 윤리와 현실 등등 정상성이라 규정되는 많은 것을 비껴간 세월을 공유한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이하고도 초월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질문도 타당하다. 아버지와 독대하는 핵심 결말을 제외하고, 카메라 뒤 감독의 자리는 온당한가. 퓰리처상을 수상했지만 윤리적 비난에 직면해야 했던 '독수리와 아이' 사진이 남긴 문제 제기를 떠올려 보라.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창작 윤리 이전에 가족 구성원으로서 문제 해결을 등한시한 것 아니냐는 의문은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이 짊어져야 할 천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그 비난마저도 감수하겠다는 결기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숨죽인 듯 조심스럽고 건조하게 그러한 윤리적 비난을 자성하고 감내한다. 관객들이 "병원에 빨리 데려가라고"를 속으로 외치게 되지만 감독은 20년이 넘는 영상 기록을 꺼내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백 마디 가벼운 사과보다 진중한 실천 하나가 더 마음을 울릴 때가.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25년 전 그때 누나를 병원으로 데려가야 했다고, 그러지 못한 감독의 미안함과 죄책감의 발로인 것 치고 <어떻게 해야 했을까?>가 던지는 질문은 특수한 상황 속 보편적인 공감을 자아낼 공산이 커 보인다. 일본을 넘어 가족이란 현대 사회의 최소 규범과 그 규범이 주는 갖가지 고통이란 근원적인 질문을 피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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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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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이 뭐길래... 의사 부부는 현관문에 자물쇠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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