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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8.02 14:15수정 2026.08.03 16:39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더위에 입맛도 서울까지 달아났다. 뭘 먹어도 시원찮다. 땡볕 더위에 주말도 없이 일하는 남편을 위해 삼시 세끼 밥을 지어야 하는 나는 주부다. 며칠간 된장찌개만 끓여달라는 요청에 냉동실엔 호박, 청양고추, 소고기, 파를 썰어서 상시 대기 중이다.
때마다 냉동실에서 꺼낸 재료와 두부를 서걱서걱 썰어서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여 먹은 지 며칠이 지나니 그것도 물린다. 더운 날씨에 짭조름한 걸 먹으면 좋다며 된장찌개만 고수하는 남편의 말을 딱 한 번만 거스르기로 작정했다.
지난 7월 30일,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마다 만나는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날씨도 더운데 바로 집으로 갈까? 마트에 들러 콩국수 재료를 사 갈까?'
일부러 다시 나오기 힘드니 나온 김에 사 가자 싶었다. 양 갈래 길에서 고민하다가 차 핸들을 마트 쪽으로 꺾었다. 마트에서 콩가루 한 봉지와 오이 두 개만 사서 곧장 집으로 왔다. 콩국수는 집에서 자주 해 먹는데 이게 의외로 간단한 요리다. 삶은 콩만 있다면 말이다.
다음 날도 대구의 한낮 기온은 38도를 웃돌았다. 점심시간에 맞춰 소면을 삶아냈다. 찬물에 바락바락 빨래하듯 전분 샤워를 마친 국수를 얼음물에 첨벙 담갔다. 이렇게 하면 쉽게 불지 않아 다음 날까지도 탱글탱글한 면발을 즐길 수 있다. 삶는 김에 양을 넉넉하게 해서 그날 먹을 양만 덜고, 남은 국수는 참기름 한 방울을 넣고 조물조물 코팅해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러면국수가 엉겨붙지도 않고 금방 삶은 것 같다.
냉동실에서 삶은 노란 콩 두 봉지(한봉지 120g)를 꺼냈다. 물과 얼음 그리고 콩가루를 두 숟가락 넣고 콩을 믹서기에 갈아주었다. 얼음과 콩이 믹서기 안에서 웅웅거리며 고소한 백색 소음을 만들어냈다. 이내 아이보리빛의 진하고 부드러운 콩국물로 태어났다. 노릇하면서도 뽀얀 콩 국물의 자태가 꼭 '나 여기 있소' 하는 것 같았다.

▲콩국수 재료 삶은 콩을 얼려서 시중 콩가루 두 숟가락을 넣어 갈면 시원한 콩국이 됩니다.
황윤옥
우리 집 냉동실에는 항상 삶은 콩이 몇 봉지씩 들어있다. 콩이 나는 계절에 한 되씩 사서 삶은 다음에 비축해 둔다. 입맛 없을 때 콩국으로 갈아 마시거나 콩국수를 만들어 먹을 때 아주 좋은 재료다. 오이는 가늘게 채 썰어 둔다.
넓적한 그릇에 국수를 가지런히 담고 콩국을 부어준 뒤 고명으로 오이를 올려준다. 참깨를 톡톡 뿌려주면 좋은데 남편이 깨를 싫어해서 그건 패스다. 콩국수를 먹으려면 설탕 파와 소금 파가 있는데 우리 부부는 소금 파다. 종지에 소금을 담고 묵은김치와 함께 매운 걸 못 먹는 남편을 위해 오이를 길쭉길쭉하게 썰어 된장과 곁들였다.
현관문을 열고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들어오는 남편이 말했다.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네. 입맛도 없는데 잔치국수나 먹으러 가자고 나오라고 하려고 했어. 거기까지 걸어가는 게 더 힘들 거 같아서 그냥 왔어."
"오~~ 통했네. 오늘 점심은 국수를 준비했지. 그것도 콩국수!"

▲콩국수 집에서 끓인 콩국수 한 상입니다. 먹으면 시원하다 못해 서늘해서 더위도 도망간 입맛도 돌아옵니다.
황윤옥
콩국수 그릇에 얼음을 동동 띄우면 국물이 너무 뻑뻑하지도 않고 먹기에 딱 좋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은 남편은 몸이 시원한 게 아니라 서늘하다며 이불을 덮고 겨우 한 시간 남짓 눈을 붙이러 갔다. 이불을 폭 뒤집어쓰고 쿨쿨 잠든 남편의 등 뒤로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하고 뿌듯한 바람이 밀려왔다. 냉동된 콩에 얼음을 넣고 간 데다가, 그릇에 얼음까지 동동 띄웠으니 안 시원하면 마누라표 콩국수가 아니지.
8월 1일, 오랜만에 남편은 오전 근무가 없는 날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아침 댓바람부터 국수를 찾았다. 이번엔 된장국수를 먹고 싶단다. 혹시 몰라 어제 끓여둔 된장찌개가 상할까 봐 냉장실에 넣어둔 뚝배기를 꺼내 주었다.
나는 얼마 전 담가둔 열무 짜박이에 초고추장을 곁들여 새콤달콤한 비빔면을 만들었다. 같이 살아도 가끔 음식 취향은 다르니 서로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남자가 내 그릇을 탐하는 게 아닌가? 한 젓가락을 먹어보더니 눈빛이 달라진다.
출근하기 전인 오후 두 시, 결국 열무비빔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땡볕에 일하는 사람에게 두 끼를 국수만 먹일 수는 없어 밥도 같이 내놓았다. 남편은 비빔면에 열무김치 국물을 부어 밥까지 말아 먹었다.
"오우, 이 맛, 뭔가 회냉면 맛이 나는데?"
처음엔 배부르다며 손사래를 치던 남편이 숟가락을 놓지 못하고 밥 두 공기를 뚝딱 비워내는 모습에 속으로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국수를 한 번에 넉넉하게 끓이면 콩국수로도, 된장국수로도, 열무비빔면으로도 그리고 회냉면 맛으로도 먹을 수 있다. 더운 날씨일수록 지치지 않으려면 먹는 것이 중요하다.
삼시 세끼 밥상 차리는 게 고된 일 같아도, 이렇게 시원하게 그릇을 비워내는 식구의 얼굴을 보면 그 더위도 잠시 잊는다. 재료만 준비되어 있다면 입맛도 살리고 더위도 이길 수 있는 집 국수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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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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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까지 싹싹 긁어먹더니 이불 덮고 자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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