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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부터 '에어컨 2부제'를 시행중인 주부입니다

    살인적인 더위에 예민해지는 가족들 마음 신경 썼더니... 거실에 가족이 모이는 효과를 불렀다

    등록 2026.08.04 11:53수정 2026.08.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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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에는 문을 닫고, 저녁에는 문을 연다.'

    2026년 7월, 우리 집에 새로 시행된 '에어컨 2부제'의 운영 원칙이다. 다소 거창한 이름이지만 방법은 단순하다.


    낮에는 창문과 방문을 모두 닫고 거실 에어컨을 켠다. 가동 시간은 한 시간. 거실이 실패한 농담처럼 썰렁해지면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로 남은 냉기를 재활용한다. 오후 2시쯤 충전해 둔 냉기는 '낮 시간 한정 1인 가구'인 나에게 충분하다.

     거실 에어컨 하나를 미리 켜놓았을 뿐인데 가족들의 귀가 인사가 달라졌다.
    거실 에어컨 하나를 미리 켜놓았을 뿐인데 가족들의 귀가 인사가 달라졌다. everettp on Unsplash

    저녁에는 운영 방식이 반대다. 오후 6시쯤, 한낮의 열기가 조금 누그러지면 집 안 공기부터 바꾼다. 환기를 마친 뒤에는 방문을 모두 활짝 열고 거실 에어컨을 켠다. 하루 종일 밖에서 더위와 씨름한 가족들을 위한 환영 인사다.

    "와~ 시원 시원쓰."
    "역시 집이 최고야."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온 아들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리를 지른다. 주차장에서 집까지 오는 짧은 거리도 숨이 막힌다는 남편은 말 대신 엄지를 치켜세운다. 거실 에어컨 하나를 미리 켜놓았을 뿐인데 가족들의 귀가 인사가 달라졌다. 에어컨 바람 속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호사는 덤이다.

    "버티자"라는 마음을 바꾸었더니


    닫힌 방문이 열렸다 거실 에어컨을 돌리니 아이들 방문이 열렸다. 조금 열린 방문은 수험생 딸 방. 요만큼이라도 어디냐 싶은 마음이다.
    ▲닫힌 방문이 열렸다 거실 에어컨을 돌리니 아이들 방문이 열렸다. 조금 열린 방문은 수험생 딸 방. 요만큼이라도 어디냐 싶은 마음이다. 정현주

    지난해까지 우리 집의 에어컨 운영 방식은 정반대였다. 이름도 1부제, 운영 원칙도 하나였다. 무조건 버티기.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5월 중순부터 에어컨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평소 자린고비는 아닌데 여름만 되면 인색해지는 나. 천장에 매달린 굴비 대신 에어컨을 올려다보며 가족들에게 조금만 더 버텨 보자고 했다. 결국 매년 그랬듯 '전기요금이고 뭐고 일단 살고 보자'는 임계점에 이르러서야 에어컨을 켰다. 그렇게 어렵게 켠 에어컨은 몸을 시원하게 했지만, 마음까지 편하게 하지는 못했다.


    가족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증거 인멸부터 했다. 낮에 잠깐씩 켰던 에어컨의 흔적을 지우고, 후텁지근한 집 안을 자랑처럼 내놓았다. '나 오늘도 이만큼 아끼며 버텼다'는 일종의 이미지 관리였다. 그래야 가족들에게도 당당히 에어컨을 끄라고 닦달할 명분이 생기니까.

    막상 에어컨을 켜고 나면 본격적인 단속이 시작됐다. 첫 단속 대상은 방문이었다. 냉기가 새어 나간다며 방마다 문을 닫게 했다. 이젠 다 컸다고 각자의 방으로 사라지는 두 아이를 서운해하면서도, 정작 여름이면 그 문을 먼저 닫게 한 건 나였다.

    "누구 에어컨 켰어? 빨리 꺼."
    "방금 켰단 말이야."

    안방에 누워 있어도 복도 끝 아들 방에서 리모컨을 누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소머즈도 아닌데 그 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에어컨 리모컨 소리 하나에 우리 집 대화는 금세 날이 섰다. 그렇게 거실 에어컨 하나는 아껴두고, 닫힌 세 개의 방에서는 에어컨이 따로 돌아갔다.

    "너무 더워."
    "쓰러질 것 같아."
    "이건 살인적이야."

    올여름의 변화는 사소한 순간에서 시작됐다. 가족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한숨처럼 쏟아내는 첫마디가 어느 순간 듣기 싫어졌다. 기온이 오를수록 말의 수위도 높아져 "짜증이 난다", "죽을 것 같다"까지 갔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의 그 말을 바꿔줄 수 없을까.

    내가 얼마나 잘 버텼는지를 보여주기보다, 집이 먼저 가족들을 반기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조금만 더 버티자'던 내 고집부터 접고, 에어컨에 지갑을 열어야 했다. 그래서 귀가 시간에 맞춰 거실 에어컨을 켜두기 시작했다.

    운영 방식도 완전히 뒤집었다. 거실 에어컨 하나만 켜고 방문은 모두 열었다. 각 방 문 앞에 보초처럼 서 있는 선풍기는 거실의 냉기를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집 안 풍경도 달라졌다.

    귀가하면 인사만 건넨 채 각자의 방으로 사라지던 가족들이 거실에 머물기 시작했다. 소파에 앉아 땀을 식히고, 저녁 준비가 한창인 주방을 서성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풀어놓았다. 이제는 오히려 거실 에어컨에 붙들린 가족들을 방으로 돌려보내느라 성화를 부린다. 옷부터 갈아입고 오라고. 얼른 씻고 나오라고. 숟가락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이어지던 방문 닫는 소리도 줄었다.

    전기요금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일요일 낮풍경 별거 없었는데 행복했던 지난 일요일 낮 모습. 가족 캠페인 영상같이 화목했던 시간이었다. 이게 다 에어컨 덕분이다.
    ▲지난 일요일 낮풍경 별거 없었는데 행복했던 지난 일요일 낮 모습. 가족 캠페인 영상같이 화목했던 시간이었다. 이게 다 에어컨 덕분이다. AI생성이미지

    휴일에는 에어컨 2부제도 휴업이다. 지난 일요일, 아점으로 라면이 당첨되었다. 오랜만에 얼큰하고 시원한 게 당긴다는 남편 말에 청양고추와 콩나물을 넣고, 떡국 떡과 만두 몇 알, 계란까지 풀었다. 파 송송은 기본이다. 시원한 바람 아래서 뜨거운 라면을 먹고, 후식으로 올해 처음 산 수박까지 쪼갰다.

    갑자기 우리 집 장르가 훈훈한 주말 드라마로 바뀌었다. 식사가 끝났는데도 아들은 방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막 OTT에 공개된 영화 한 편을 보자고 했다. 남편이 좋다며 블라인드를 내렸다. 셋은 소파와 바닥에 각자 세상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고 영화 <군체>를 봤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화 이야기가 시작됐다. 얼마 전 극장에서 본 <호프>와 어떻게 달랐는지까지 비교했다. 같은 대목에서는 하이파이브를 했고, 해석이 갈릴 때는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토론에는 맥주지. 내친김에 쥐포를 굽고 캔맥주를 땄다. 식탁도 상도 아닌 거실 마루바닥에 그대로 펼쳐놓았다.

    이렇게 둘러앉아 있으니 지나간 주말 풍경들이 에어컨 바람을 타고 하나씩 밀려왔다. 남편이 내 무릎을 베고 귀를 맡기던 어느 일요일이 있었고, 어린 남매와 네 식구가 이불을 펴놓고 거실에서 잠들던 토요일 밤도 있었다. 다 자란 아들과 셋이 다시 한 공간에서 뒹굴고 있자니, 멀리 가버린 줄 알았던 그 시절이 잠시 우리 곁에 머무는 듯했다.

    에어컨 2부제 시행 뒤 첫 전기요금 고지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에어컨에 지갑을 연 대가가 얼마일지 궁금해 AI에게 물어봤다. AI는 정확한 계산은 고지서를 봐야 하지만, 지난해처럼 각 방의 에어컨을 짧게 껐다 켜기보다 거실 에어컨 한 대와 선풍기를 함께 쓰는 지금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고 답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다. 설령 고지서가 예상과 다른 답을 내놓는다 해도 크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밤 10시가 되면 거실 에어컨을 끈다. 예전 같으면 잠시 뒤 각 방에서 리모컨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올해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잔잔하다. 서너 시간 켜놓은 에어컨의 냉기는 의외로 아침까지 수명이 길다. 안방부터 아이들 방까지, 방문도 예전보다 오래 열려 있다. 올여름 열린 방문 사이로 오간 것은 에어컨 냉기만이 아니었다.

    계속 되는 폭염 시즌,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다녀올 생각이다. 각자 취향껏 골라 시원한 거실에서 뒹굴거리며 먹는 쭈쭈바도 절대 놓칠 수 없으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에어컨 #전기요금 #지혜로운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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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년간 공중파 방송작가로 활동했습니다. 10년간 광고홍보 프로덕션을 운영했습니다. 현재는 브런치 크리에이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25 국민이 함께하는 저작권 글 공모전-국무총리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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