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터 김복룡 학살 장소. 당시에는 일대가 논이었다.
김광영
이◯◯의 아버지가 UN군이 수복하기 직전 후퇴하는 인민군과 지방 좌익에게 학살되었다. 휴가를 나온 이◯◯은 그 소식에 분개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저 사람이 엄정면 인민 위원장을 했던 김복룡이여"라는 소리에 김복룡을 잡아 죽인 것이다. 김복룡이 김삼룡의 형이란 것도 당연히 알았을 터였다.
김복룡이 자기 아버지 학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김복룡이 우익 인사 여럿을 살려 준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빨갱이'에 대한 증오심이 물불 가리지 않게 한 것이다. 이는 김복룡의 죽음이 이◯◯의 단순한 오해가 빛은 참극인지, 이성을 잃은 광란의 폭력인지를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등수 바꾸면 안 되겠니?", 병영의 가슴에 난 이날의 상처
남로당 총책 김삼룡 집안의 불행은 김삼룡과 그의 형 김복룡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김삼룡의 맏형 김쌍룡은 동생들의 연이은 불행에 화병을 얻어 1952년 12월 세상을 하직했다.
김삼룡의 두 동생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행방불명되었다. 김삼룡의 동생 김동식과 김순만이 그런 경우이다. 김삼룡의 막냇동생 김순만(1918년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씨름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그는 백중날 때마다 엄정면에서 벌어진 씨름대회에서 우승한 스타였다.
심지어 인천 전국 대회에서도 우승을 했다. 그런 청년 장사가 6.25가 발발하자마자 김삼룡의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행방불명되었다. 동식과 순만은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으로 대한민국 군경에게 학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삼룡의 바로 아래 동생 봉룡(1912년생)의 인생 역정 역시 만만치 않다. 봉룡은 형 복룡(1905년생)과 함께 인공 시절 엄정면 인민위원회에서 일을 했다. 형 복룡이 원만한 성격이었다면 동생 봉룡은 원리 원칙대로 일을 집행해 남들의 원성을 산 경우였다. UN군 수복 후 봉룡은 자식 둘을 남겨두고 경상북도 청도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이름을 바꾸어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전직 경찰을 했던 봉룡의 큰동서가 청도에 은신하고 있던 봉룡을 신고하겠다는 것이다. 불고지죄를 두려워한 이가 자신의 가족을 신고하는 행동은 박정희 정권 아래서는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복룡의 아들 광영은 작은아버지 봉룡이 자수하도록 권유했다. 봉룡이 자수하면서 인공 시절 부역 행위는 공소시효 기간인 10년이 지나 처벌되지 않았다. 한편의 소동은 반공 시대의 우화(偶話)였다. 자식이 부모를, 동생이 형을 신고하는 시대는 이승만·박정희 시대에 빈번한 일이었다.
좌·우 이념대립과 국가 폭력, 이에 따른 연좌제의 상처는 김삼룡 대에 끝나지 않았다. 김삼룡의 조카 대에까지 이어졌다. 봉룡이 청도로 가면서 남겨둔 자식 중에 딸 희자(1940년생)가 있었다. 홍음전이 조카 희자를 거두었지만, 희자 얼굴에는 늘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경찰의 미행과 감시가 따랐기 때문이다.
'꼬마 경찰'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가 툭하면 희자를 찾아와 "네 아버지 어디 있냐? 집에 다녀갔지?"라며 윽박질렀다. "아버지를 신고하지 않으면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 경찰의 협박을 이겨내지 못한 희자는 17세의 나이에 충주군 엄정면 백운암으로 출가했다. 1957년도였다.
복룡의 막내아들 병영(1946년생)에게도 시대의 불운은 벗겨가지 않았다. 엄정면 충원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할 때였다. 교장이 병영에게 "등수 좀 바꾸면 안 되겠니?"라고 했다. 즉, 전교 2등을 한 아이를 1등 한 것으로 바꿔 대학 진학에 유리하게끔 하려고 한 것이다. 병영은 어차피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병영의 가슴에 난 이날의 상처는 아버지가 6·25 때 학살된 것만큼이나 컸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노동자·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 모든 이가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꿈꾸었던 김삼룡의 꿈은 깨졌다. 그의 일가도 파멸되었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주홍 글씨는 자식 대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이제라도 국가가, 우리 사회가 김삼룡 일가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를 어루만져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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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총에 맞고, 아들은 1등 자리마저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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