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 <1인칭 여자 시점>
글을낳는집
책 속에서 그가 만난 여성들의 삶은 강렬하다.
스물세 살의 작가가 만난 여든 살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서운(1924~2004)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할머니는 1992년 본인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며 본격적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전한다. 1995년엔 베이징에서, 1996년에는 미국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며 일본에 사과를 요구했다.
작가가 할머니를 만난 건 할머니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이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지만 공개 증언한 사람은 소수였고, 대부분은 숨죽여 지냈다. 몇몇 사람들은 등 뒤에서 손가락질을 했다.
작가는 강연장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강연이 끝난 후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할머니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셨나요?"
이때 할머니의 대답이 작가의 가슴 속에 '콕' 하고 박혔다.
"나의 결혼 생활은 행복했습니다."
강연 직후 작가는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렸다. 집에서 할머니와 평생을 함께 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온화한 미소로 맞이했고, 할머니의 대답이 현실이었음을 느꼈다.
강한 할머니 옆엔 온화한 미소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이듬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 뒤로 오랫동안 할머니는 부드럽지만 강한 여성의 이미지로 작가의 마음 속에 남았다.
또 한 사람은 이 시대 최후의 조산원 가운데 하나인 '평화열린조산원' 원장인 구순태였다. 스물일곱에 조산사가 된 그녀는 어느덧 칠순이 되었고, 그 때가 작가와 만난 때였다.
간호사로 직업 생활을 시작한 구 원장은 생계를 위해 조산사로 변신한다. 구 원장의 삶에 휴가는 없었다. 한 번은 짧은 해외여행을 마치고 밤늦게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산모에게 달려갔다.
구 원장은 '자연주의 출산'을 내걸었다. 당시 인식은 수술 도구의 발달이 곧 의료 기술의 발달이었다. '자연주의 출산'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 됐다. 구 원장의 출산법은 시대와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자연주의 출산'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 철학을 함께 하는 이들이 꾸준히 구 원장을 찾았다. 45년 동안 그렇게 나온 아이가 대략 4000여명. 하동에서 출산을 돕던 중 거제에 있던 산모의 긴급 연락을 받고, 전화 통화만으로 아이 아빠가 직접 탯줄을 자르고 태반을 정리하도록 지시해 출산을 성공시킨 일화는 놀랍기만 하다. 시대와 맞서며 자신의 철학을 지켜낸 구 원장 역시 작가가 본 '강한' 여성이었다.
'강한' 여성엔 작가의 어머니도 등장한다. 오빠가 아장아장 걷고 작가가 태어날 무렵 아빠가 밖으로 떠돌기 시작한다. 돈을 벌어오지도,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엄마는 스물여섯에 두 아이를 책임지는 홀로 가장이 돼 버린다. 생존을 위해 식당에 나갔고, 식당 일은 30년 동안 이어졌다. 분식집으로 시작한 식당은 국밥집, 고기집, 매운탕집, 국수집으로 바뀌었다.
바뀌지 않은 건 단 하나. 엄마의 출퇴근 시간이었다.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는 일상이었다. 먼훗날 모두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런 엄마에게 작가는 질문한다. 오빠와 나를 두고 도망치고 싶은 적이 없었느냐고. 여기에 대한 엄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런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다."
상냥함을 지키는 '강함'

▲ 신간 <1인칭 여자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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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일곱 명의 인생도 흥미롭다. 산후우울증을 견뎌내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은 마라톤 풀코스를 뛰고, 마침내 사하라 사막과 고비 사막을 종단 한다.
35년을 서울에서만 살던 한 여성이 갑자기 시골 남자와 결혼한다. 다들 걱정이 태산이었다. 여성은 열심히 적응했지만 시골살이가 만만치는 않았다. 갑자기 땔감이 떨어져 늦은 밤 시댁으로 나무를 구하러 간 일은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다.
한 여성은 아빠의 억압과 폭력에 시달렸다. 그 분노는 세상으로 확장됐고, 때론 자신을 향했다. 그 여성을 지배하던 건 '분노'와 '불안'이었다. 여성은 '분노'와 '불안'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한다. 명절날 방안에 누워 TV만 보던 사촌 오빠들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우리는 다 일하는데 오빠들은 뭐 하냐고? 당장 나와서 설거지 해."
이 책은 여성들 이야기이면서 '강한' 여성들 이야기다. 또한 결혼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상처 받고, 이겨내려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선 '비혼'이라는 단어가 꽤 자주 등장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자유로운 여성, 간섭 받지 않고 존중하는 여성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 여성들을 '강한' 여성이라 표현했다.
작가는 자기는 '약한' 여성이며 그 징표가 '상냥함'이라고 느꼈다. 책을 다 덮고 난 지금 고백하자면 "이제는 나를 가두던 상냥한 감옥의 문을 부수기로 했다"는 작가의 고백은 실패했다. 여기서 작가에게 말하고 싶은 대목이 생겼다. 작가가 끝까지 상냥한 건, 강해서라고. 강해서 그 상냥함을 지킬 수 있었다고. 그래서 '강한' 여성 목록에 작가 또한 이름을 올려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1인칭 여자 시점
조세인 (지은이),
글을낳는집,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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