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해나의 소설 중에.
차유진
작품 속 '흉내만 내는 놈'이라는 말은 배우에게 가장 아픈 경고처럼 다가왔다. 연기란 그럴듯하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모임 배우들 대부분이 '혼모노'에 유독 마음이 머물렀던 것은 아닐까. 배우라면 누구나 외면할 수 없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반면 나에게는 '구의 집'이 '혼모노'보다 더 오래 붙잡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갈월동 98번지. 실제 남영동 대공분실을 모티브로 한 이 공간은 기존 건물을 개조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문을 위해 설계된 건물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국가권력이 얼마나 치밀하게 폭력을 설계해왔는지 실감하게 된다.
권력욕과 훗날의 책임 회피를 위한 계산 속에서 스승 여재화는 모든 설계와 시공의 책임을 자신이 가장 다루기 쉬운 제자 구보승에게 떠넘긴다. 건물의 이름마저 '구의 집'으로 새길 만큼.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라는 가르침을 받은 구보승은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본래의 의미마저 자신만의 논리로 뒤틀어 해석한다. 건축적 합리성과 효율성에 몰두한 그는 급기야 '희망'이야말로 인간을 잠식하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 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취조실에 폭이 좁은 수직창을 설계해 하루 단 십 분만 빛이 들어오게 하고, 그 빛마저 희망이 아닌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겨주는 장치라고 확신한다.
여재화의 만류에도 자신의 논리를 향해 광기 어린 속도로 질주하는 구보승을 보며 배우로서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무엇이 그를 멈출 수 없는 집착으로 몰아갔을까. 답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
태생도, 실력도 내세울 것 없던 움츠러든 인물이 처음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기회를 얻는 순간, 그 욕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그 내면의 뿌리를 들여다보자 악인 역시 단순한 악이 아니라 결핍과 한계를 가진 한 인간으로 다가왔다. 구보승의 비극은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논리를 끝내 자신만의 진실로 믿어버린 데 있지 않았을까.
연기와 삶 안에서 붙잡고 있는 것
책을 덮으며, 평소 밝은 자신의 모습조차 타인의 기대와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봤다는 정다은 배우의 고백은 그의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오래도록 깊은 잔상을 남겼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진짜인가, 아니면 진짜라고 믿고 싶은 것인가."
연기와 삶 안에서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려 한다. 결국 배우에게 필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보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한 성찰일 것이다. 적어도 '흉내만 내는 놈'에 머물지 않고, 조금이라도 진짜에 가까운 놈이 되기 위해.
다음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이제니의 시집 <그리하여 흘려쓴 것들>이다. 선정자인 정다은 배우는 시를 읽을 때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며 해석하려 애쓰다가 오히려 책을 덮게 된 경험이 많았다며, 함께 읽는다면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 나 역시 격하게 공감했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만큼, 시 속에서 또 어떤 연기의 언어와 지침을 발견하게 될지 벌써부터 낯선 설렘이 피어난다.
독서 토론일 : 2026년 7월 23일
선정 도서 : <혼모노>
선정자 : 이연신
참석자 : 최선한, 서구슬, 정다은, 이연신, 김혜진, 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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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단편 가운데 배우들이 유독 끌렸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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