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여름 계간 <현대예술비평>이 도서출판 청하에서 나왔다. 발행 겸 편집인 장석주, 주간 우남식, 편집위원 김욱동·김희영·장진길·장석주, 편집과장 이선영이다.
창간호는 좌담 '전환기의 문학비평', 특집 '포스트모더니즘', '오늘의 세계문학', '새로 쓰는 비평사', '한국문학의 재조명', '문학과 사회에 관한 에세이' 등을 싣고, '비평용어사전'을 연재했다.
발행인 장석주의 창간사 앞 부분이다.
20세기의 말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가 열리면서 우리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세계사적 대전환의 국면에 들어섰다는 움직일 수 없는 여러 징후들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쉽게 얘기하자면, 전환은 변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우리 시대의 변화는 일종의 '탈화'로의 변화이다. 변화는 속도를 수반하고 속도는 변화를 가속화시킨다. 변화의 속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빠르고, 그것이 빠르면 빠른 만큼 우리의 의식은 교란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해진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그 밑바닥부터 혼란과 불안에 사로잡힌다. 작게는 우리의 나날의 삶의 한 부분인 소비와 여가형태가 변화하고 있고, 크게는 세계의 정치 체제가 새롭게 수정되거나, 폐기되는 등 재편되고 있다. 일상적 삶의 내용들이 변화하고 있고, 그것을 규정하는 제도와 체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21세기의 문턱에서 새롭게 맞고 있는 변화와 전환의 시대는 탈화의 시대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경악으로 커다랗게 떠진 눈의 망막에 맺히는, 전환의 시대가 만들어내고 있는 현대사회의 '탈화문화'의 양상으로 덧씌워져가는 세계 속의, 이른바 '포스트모던'하다는 새로운 현실구조, 새로운 삶의 구조의 의미를, 과거 세계 이해의 유용한 틀이었던 합목적적 이성중심주의의 체계로는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탈화 문화는 곧 탈화 문명으로 연결된다. 과거에 유용했던 체계들과 이해의 틀의 전면적인 무용화, 혹은 패기처분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인식의 혼란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갈등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탈화 문명의 시대가 곧 새로운 위기의 시대임을 깨닫게 한다. 위기의 시대라고? 그렇다. 탈화 문화 시대의 중요한 현상들로 대두되고 있는 중심의 와해, 자아의 분열성, 전통적 문화양식들의 해체, 희망의 소진과 새로운 의혹과 니힐리즘의 유포, 추구해야 할 진실의 파편화, 과거에는 유효했던 일체의 규범과 지표의 유실, 전망 부재의 암담함, 불확정성의 논리들 속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것은 바로 "주체의 혼란과 위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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