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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있는 곳엔 한국인, 불 쓰는 곳엔 외국인... 60대 노동자가 목격한 현실

은퇴할 나이에도 기계를 고치고 배달을 뛰는 67세 김철수씨의 이야기

등록 2026.08.05 11:39수정 2026.08.0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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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자금? 그런 거 없어요, 내가 자본주의에 안 맞는 사람이라 그런지 돈을 못 모았네요." 67세 김철수(가명)씨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AI생성 이미지)
"은퇴 자금? 그런 거 없어요, 내가 자본주의에 안 맞는 사람이라 그런지 돈을 못 모았네요." 67세 김철수(가명)씨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덥죠, 덥다고 일을 안 할 수가 있나, 그제는 그래도 에어컨 나오는 공장이라 너무 좋았는데 오늘은 불 때는 공장으로 가야 하네요. 은퇴 자금? 그런 거 없어요, 내가 자본주의에 안 맞는 사람이라 그런지 돈을 못 모았네요."

67세 김철수(가명)씨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인터뷰를 정리하던 무렵, 뉴스에는 최근 폭염 속 도시락을 배달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의 위태로운 근무 환경이 보도되고 있었다. 법적으로 '고령자'인 김씨 역시 오늘도 폭염 속 일터로 향한다. 어느 날은 유압 기계를 고치러 공구를 들고, 의뢰가 없는 날엔 공구 대신 배달 앱을 켰다.

구인난의 역설, 늙은 기술자만 남은 자리

김씨는 모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특장차를 제조하는 중견 기업에 취업했다. 특장차는 유압 장치를 필수로 다루는 분야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압 기계와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개인 사업의 꿈을 안고 퇴사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고 프랜차이즈 음식점에도 도전했지만 오히려 금전적 손실만 봤다.

그렇게 돌고 돌아 몇 년 전부터 친구와 함께 작게나마 유압 기계 유지 보수 사업을 시작했다. 함께하는 친구는 원래 작은 유압 기계 공장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구인난과 관련 시장 붕괴로 공장 문을 닫을 처지에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은 최근 여러 공장이 낡은 유압 설비를 고칠 사람을 못 구해 애를 먹는다는 사실을 접했다. 이에 김씨는 아들의 도움을 받아 유압 기계 정보를 다루는 블로그를 열고, 은퇴할 나이에 다시 노동의 현장에 뛰어든 것이다.

- 웬만한 제조 공장에는 유압 장치가 설치되었을 텐데, 왜 젊은 관련 기술자가 없나요?


"중국제 저가 유압 기계가 들어오면서 국내 유압 기계 제조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관련 시장이 붕괴한 거지요. 게다가 유압 기계 수리는 전형적인 3D 업종으로, 힘들고 더럽고 어려운 일인데, 일터가 사라지니 그나마 기술을 배우려는 청년도 사라져 갔고, 기술자가 사라지니 구인난에 남은 일터도 사라지는 악순환에 빠진 거고요."

이 악순환은 김씨가 종사하는 업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아는 어느 주물공장 현장에는 젊은 직원이라고는 단 두 명, 나머지는 모두 70대 후반 노인들이라고 한다.


"거기 노인들은 그 바닥에서 너무 오래 굴러서 좀 고약해, 그런 데는 못 가요. 내가 봐도 징그러워. 나라도 안 가고 싶을 거야."

몸은 늙어가는데, 기계는 그대로다

일감은 고정적이지 않다. 블로그를 본 사람들의 그때그때 연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입은 들쭉날쭉하다. 많으면 한 달에 이십일을 일하고, 없으면 열흘 남짓. 이 불규칙함을 메우는 게 배달 대행 일이다. 과거 배달 음식점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유압 기계 수리 일이 없는 날엔 배달 앱을 켠다.

"배달도 체력이나 순발력이나 젊은 애들한테 밀리는 건 당연해요. 다만, 집 근처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지."

문제는 몸이다. 무겁고 억센 기계를 상대하다 보니 관절 여기저기에 무리가 온다. 기계가 놓인 현장은 대개 덥거나 춥거나 습하거나 지저분한 곳, 그야말로 열악하다.

실제로 그가 최근 일한 현장은 요즘 같은 폭염에도 불을 때야 하는 곳으로, 찜질방보다 더 더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공간에서 일하는 한국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가 최근 일한 현장은 요즘 같은 폭염에도 불을 때야 하는 곳으로, 찜질방보다 더 더웠다고 한다. (AI생성 이미지)
그가 최근 일한 현장은 요즘 같은 폭염에도 불을 때야 하는 곳으로, 찜질방보다 더 더웠다고 한다. (AI생성 이미지) 오마이뉴스

"공장은 계급 세계야. 수리할 기계가 있던 장소가 폭염에도 불을 쓰는 곳이라 그런지 에어컨이 없었어. 냄새도 말도 못하고. 그곳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다른 쾌적한 공간에는 주로 한국인들이 일하는 거지. 우리 노동자에게 300여 만 원(잔업까지 해서) 줄 테니 그 열악한 그곳에서 일하라 하면 아무도 안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그게 큰돈이거든."

김씨는 그 말을 전하며 씁쓸해했다. 한국 청년이 떠난 자리를, 외국인 청년과 한국의 노년 노동자들이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국민연금은 받고 계신가요?

"받고 있어요. 80여 만 원 정도 나와요. 그걸로는 어림도 없죠. 월세, 식료품비, 병원비 이런 거 다 감당하려면 벌어야 해요."

- 혹시 배우자분도 맞벌이하시나요?

"하죠, 그런데 나이가 있어 여러 관절이 안 좋아서 하루에 몇 시간 못해요."

- 친구분들도 비슷한 상황인가요?

"주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이 십여 명 있는데, 그 중, 정말 쉬는 친구는 한 명뿐. 다들 뭐라도 해요. 친구 중, 오랜 공무원 생활로 적잖은 연금이 나오는 친구들조차 경비를 서거나 과거 일했던 곳에서 검침원으로 일하더라고, 그런 친구들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거라도 해야 세월이 가거든."

- 지금 연세에 기계를 다루는 일은 너무 고된 것 같은데, 정부 고령자 일자리 사업은 알아보셨나요?

"그걸로는 벌이가 안 돼요. 지원한다고 해도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지금 하는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일감이 있으니까 하는 거지."

- 언제까지 일하실 계획인가요?

"누가 돈을 거저 주나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지요."

노인이 떠받치는 자리

정부는 해마다 노인 일자리를 위해 '역대 최대' 예산을 발표한다. 하지만 그 자리조차 얻지 못하거나, 그 일자리만으로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노년들은 기계 앞으로, 배달 오토바이 위로 향한다. 이미 은퇴했을 나이에, 청년의 일을 대신하고 있다.

인터뷰 중 김씨는 일터에서 목격했던 이야기들도 전했다. 벽돌 공장에서 손가락을 모두 잃은 여성, 여든 넘은 사장에게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공장의 할머니들, 여름의 무더운 열기와 쏟아지는 장대 빗속에서도 하루 십수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는 배달 기사들, 풍요롭다는 이 시대와는 분명 괴리감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특장차 공장에서 유압 기계를 처음 만졌던 젊은 시절의 그와, 노쇠한 몸에 버거운 기계를 고치는 지금 그의 사이에는 40여 년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시장은 붕괴했고, 기술은 끊겼고, 청년은 떠났다. 그 빈자리를 노인과 외국인들이 나눠 메우고 있다. 이들 노년에, 노동의 종말은 없었다.
#노동 #고령사회 #노인일자리 #은퇴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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