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구속된 김민수씨의 석방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 2024년 2월 29일 대구 서구 비산동 포레스트홀 ⓒ오마이뉴수 조정훈2024.02.29.
조정훈
그의 행동이 위험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장면의 앞부분도 보아야 한다. 출입국은 몇 달 전부터 제보를 받고 두 차례 사전 조사를 했다. 긴급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애초 계획서에 적힌 사업장이 아니라 도로에서 운행 중인 대형 버스를 차량으로 에워쌌다. 사업장에서 관리자의 동의를 받아 진행하는 통상적인 방식도 택하지 않았다. 단속 과정에서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법무부의 인권 보호 준칙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김씨는 어린 시절 집을 떠나 살아본 경험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잘 알았다고 한다. 그에게 "살려 달라"는 외침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법원은 1심에서 징역 3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했고, 형은 확정됐다. 위법하거나 최소한 무리한 단속을 피하려 동료들을 도운 행위가 '환대의 범죄'가 된 것이다. 공무집행의 적법성을 엄격히 따지지 않은 채 결과만으로 김씨를 무겁게 처벌한 판결은 아쉬움을 남긴다.
혐오가 범죄가 되었을 때
그 무렵 대구·경북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내국인 보호 명목으로 설립된 자국민보호연대 소속 회원들은 불법 체류자로 의심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상대로 검문·체포를 일삼았다.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나 전기자전거를 탄 외국인을 불러 세우고, 쪼그려 앉힌 채 팔이나 옷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체포 장면을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기도 했다. 그중에는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도 있었다.
이들은 시민도 출입국관리법위반 현행범을 체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외국인이라는 사실과 번호판 없는 오토바이를 탔다는 사정만으로 미등록 체류자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중에 미등록 사실이 확인됐더라도 체포 당시 범죄가 명백하지 않았다면 적법한 현행범 체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구지법은 조직적인 사적 체포와 폭행을 유죄로 인정했고, 대표에게 선고된 징역 1년 2개월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다른 사건에서도 법원은 피해자의 얼굴과 국적을 공개한 행위가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회수와 정치적 이익을 노린 명예훼손이라고 보았다.
환대한 사람은 교도소에 갔고, 혐오한 사람도 교도소에 갔다. 그러나 둘을 같은 저울에 올려서는 안 된다. 한쪽은 위기에 처한 동료의 호소에 반응했고, 다른 쪽은 외국인을 범죄자로 낙인찍어 사냥하듯 추적했다.
법원이 사적 체포에 제동을 건 것은 다행이지만, 혐오가 폭력으로 번진 뒤에야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권력 스스로 이주민을 '단속 대상'으로만 다룰 때 민간의 혐오는 국가의 언어를 흉내 낸다.
죽음 뒤에야 도착한 국가의 책임
법원이 한 걸음 더 나아간 판결도 있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씨는 2020년 12월 20일 한파 속에서 전기와 난방이 끊긴 포천의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졌다. 장시간 노동과 의료 접근의 어려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숙소가 겹친 산업재해 사망이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사업주가 신고한 기숙사를 매년 한 차례 이상 지도·점검하도록 한 지침을 두고도 단 한 차례도 점검하지 않았다.
1심은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항소심은 달랐다. 고용허가제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국가가 이주노동자의 주거 환경을 감독하지 않은 책임을 인정해 부모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대법원도 2026년 1월 정부의 상고를 기각해 판결을 확정했다. 배상액은 한 생명의 무게에 턱없이 작다. 그럼에도 이 판결은 이주노동자의 숙소와 건강을 사업주 개인에게만 맡겨 둘 수 없으며, 국가의 방치도 위법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환대는 거창한 친절이 아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먼저 의심하지 않는 것, 위험에 처했을 때 손을 내미는 것, 안전하게 일하고 치료받고 사람답게 살 집을 보장하는 것이다. 혐오 역시 몇몇 극단주의자의 일탈로만 생기지 않는다. 이주민을 값싼 노동력으로 부르면서 권리는 제한하고, 필요할 때 쓰다가 체류 자격을 잃으면 추방 대상으로만 보는 제도가 혐오의 토양을 만든다.
체류 외국인 300만 명 시대에 필요한 질문은 "얼마나 더 데려올 것인가"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 온 사람을 어떤 이웃으로 대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환대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들고, 혐오가 폭력이 된 뒤에야 처벌하며, 사람이 숨진 뒤에야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이주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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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달라"는 외침에 버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운전자는 감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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