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글라이더
저는 삼성전자에서 16년간 반도체 식각과 첨단 패키징 분야를 연구해 왔습니다. 회사에서는 매일 반도체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중학생 딸에게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하려 하니 첫 문장부터 막혔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전문 용어를 하나 쓰면 설명해야 할 단어가 세 개씩 늘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단순하게 줄이면 정확하지 않은 설명이 됐습니다. 몇 마디 지나지 않아 딸의 표정은 예의 바른 무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말이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반도체가 중요하다는 말의 반복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습식 식각과 플라즈마 식각의 차이는 '욕조와 샤워기'로 풀었습니다. RAM과 저장장치는 '책상과 책장'에 비유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출발해 웨이퍼와 제조 공정, 메모리, AI 반도체와 HBM까지 하나씩 연결했습니다.
설명을 마쳤을 때 딸이 반도체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더는 예의 바른 무표정은 아니었습니다. 어렵기만 하던 아빠의 일이 조금은 자기 이야기처럼 들린 듯했습니다.
모두가 엔지니어가 될 필요는 없지만
모든 청소년이 반도체를 전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공부하고 인공지능을 사용하며 살아갈 아이들이라면, 그 기술을 움직이는 반도체가 무엇인지는 기본 교양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가를 보기 전에 기업이 어떤 기술로 가치를 만드는지, 진로를 고르기 전에 반도체 산업 안에 어떤 일과 사람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반도체가 뉴스 속 숫자나 어려운 전문 용어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과 미래에 연결된 기술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쓴 책이 <반도체가 사라진다면?>(2026년 8월 출간)입니다. 반도체의 기본 원리부터 제조 공정, 메모리, 인공지능 반도체, HBM과 첨단 패키징까지 10대의 눈높이로 담았습니다. 각 장에는 기술을 일상과 진로에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질문과 토론 거리도 넣었습니다.
온 나라가 반도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반도체가 중요하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딸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이 더 많은 아이와 어른 사이에서 반도체 이야기를 꺼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반도체가 사라진다면?
홍정표 (지은이),
글라이더,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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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서 16년간 반도체 식각과 첨단 패키징을 연구해 온 현직 엔지니어이자 작가입니다. 어려운 기술을 사람과 삶의 언어로 풀어 씁니다. 『반도체가 사라진다면?』, 『그래서, 유럽에 가면 저녁이 있습니까?』, 『The Semiconductor Kitchen』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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