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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 제주 사람 발자국 화석이 지워지고 있다

[현장] 사계해안 사람·동물 발자국 화석, 밟히고 씻겨나가고 곰팡이 슬고… 보존 계획 서둘러 실행해야

등록 2026.08.09 20:03수정 2026.08.0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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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파란 하늘과 잔잔한 바다 그리고 그 사이 검은 현무암 해안.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이 풍경 앞에 흰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 화석산지로, 소중한 자연유산입니다. 국가유산 보호와 화석표본 훼손 방지를 위하여 부득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니…

정중한 문구가 이어진다.

사계해안 3일 찍은 사계리 해안의 인류 발자국 화석지대
▲사계해안 3일 찍은 사계리 해안의 인류 발자국 화석지대 김태진

그런데 현수막 바로 뒤편 통제구역이라는 그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풍경이 달라진다. 파란 그물, 하얀 스티로폼 상자, 붉은 부표, 부서진 바구니까지 파도에 밀려온 것인지 누군가 버리고 간 것인지 모를 쓰레기들이 풀숲과 갯바위 사이에 뒤엉켜 있다. 자연유산을 지키겠다는 안내문과 그 문구가 무색하게 방치된 쓰레기더미가 같은 프레임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셈이다. 이 부조화한 장면 하나가 지금 이 화석 산지가 처한 상황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사계해안 3일 찍은 사계리 해안의 인류 발자국 화석지대의 해안쓰레기들
▲사계해안 3일 찍은 사계리 해안의 인류 발자국 화석지대의 해안쓰레기들 김태진

사람과 동물 발자국 무더기 발견

사계해안 화석 사계 해변 화산지대에 남겨진 인류 발자국 화석
▲사계해안 화석 사계 해변 화산지대에 남겨진 인류 발자국 화석 세계자연유산센터

이곳이 그저 그런 해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되짚을 필요가 있다. 2004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와 안덕면 사계리 해안 일대에서 사람과 코끼리, 사슴 등의 발자국 화석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후기 구석기 시대, 현생 인류가 이 해안을 걸어간 흔적이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생흔 화석이자, 아시아에서는 최초, 세계적으로는 8번째로 확인된 인류 발자국이라는 학술적 무게 덕에 이듬해인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4호로 지정됐다.

발자국들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무리 지어 이동한 인류의 동선을 보여주는 동시에, 동물 발자국과 함께 발견돼 당시 생태계를 복원할 실마리까지 품고 있다. 세계에서 여덟 곳뿐인 기록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제주 바닷가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지정 이후 20여 년, 이 화석 산지를 지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도들은 하나씩 무너져 왔다.


먼저 자연 자체가 화석의 적이었다. 선명하던 발자국은 해를 거듭할수록 파도와 바람에 의한 해안 침식으로 상당 부분 유실됐다.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자 당국은 초기에 발견된 발자국 화석의 복제본과 자연스레 떨어져 나온 전석(암반에서 떨어져 물 따위의 작용으로 원위치에서 밀려 나간 돌)들을 한데 모아 보관할 시설을 마련했다. 2021년 새로 지어진 수장고였다.

하지만 이 수장고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항온항습기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면서 습도와 온도 조절에 실패했고, 보관 중이던 화석에 곰팡이가 피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화석들은 수장고 밖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온 화석 전석들은 지금 수장고 옆 주차장에서 1년 넘게 그대로 노출돼 있다. '임시 보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방치가, 어느새 예사로운 풍경이 돼버린 것이다.


같은 시기 현장에서는 또 다른 균열이 벌어지고 있었다. 출입금지 안내문과 울타리가 있는데도 이를 넘어 들어가는 관광객과 보호구역 안에서 해산물을 채집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목격됐다. "다들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다"라는 한 관광객의 말처럼, 통제는 이미 형식만 남은 상태였다. 무른 응회암에 새겨진 발자국은 단 한 번만 밟혀도 원형이 영구히 훼손되는데도 말이다.

관리 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유산본부가 수장고 옆에 관리사무실을 두고 공공근로 인력 2명을 배치했지만,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인적이 드문 야간과 새벽은 사실상 무방비다. 근무시간이라 해도 넓은 구역과 카메라 사각지대 탓에 통제는 쉽지 않고, 무단출입에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 조항은 있으나 실제 부과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리고 지금, 사진 속 풍경이 보여주듯 통제구역 안에는 정체 모를 쓰레기까지 쌓여가고 있다. 자연침식, 수장고 기능 상실, 무단출입, 쓰레기 방치. 네 겹의 위기가 동시에, 그것도 누적된 채로 이 화석 산지를 잠식하고 있는 셈이다.

대안은 없는 것일까

사계해변 사람발자국 화석지대
▲사계해변 사람발자국 화석지대 제주도

역설적인 것은, 이 문제를 풀 실마리가 이미 마련돼 있다는 사실이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인 이곳을 '자연유산 명소'로 되살리기 위해 세계유산본부는 지난해 4월부터 연구용역을 진행했고, 그 결과가 나름 잘 나왔다는 점이다.

연구용역의 진단은 냉정했다. 화석산지 현장 자체를 관광자원으로 앞세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생태·문화적으로 활용할 자료가 부족한 데다, 과거 제작한 복제본조차 보존 상태가 좋지 않고, 해안가 화석은 침식으로 이미 상당 부분 훼손돼 화석 원형을 앞세운 현장 가이드 관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여기에 최근의 수장고 기능 상실 사태까지 더해지며, 상황은 용역 진행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한층 심각해졌다.

그래서 제시된 방향은 화석 원형이 아니라 '전시·교육 인프라'로 관심을 되살리자는 것이었다. 단기적으로는 화석산지 일대를 유네스코 제주도세계지질공원의 지질명소로 지정하고, 수장고 내부·옥상·주차장 등을 활용해 화석 복제품을 전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세계유산축전 등 자연유산 행사 기간에 한시적으로 화석 산지를 개방해 가치를 알리자는 제안도 나왔다. 중장기적으로는 상모리·사계리뿐 아니라 서귀포층 패류 화석 산지 등 제주 전역의 화석을 한자리에 모은 '제주도 화석 방문객 복합센터' 조성이 제안됐다. IT 기술을 활용한 전시, 해설사를 통한 교육관광, 형제섬 전망대와 화석 테마 카페까지 갖춘 체류형 명소로 키우자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 정도 청사진을 이미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현장은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화석은 주차장 한 쪽에 1년 넘게 방치돼 있고, 쓰레기는 통제구역 안에 쌓여가며, 무단출입은 반복되고, 관리 인력은 야간에 자리를 비운다. 화석 복합센터나 지질명소 지정 같은 중장기 계획을 논하기 이전에, 지금 당장 곰팡이 핀 수장고와 노천에 방치된 전석 그리고 눈앞의 쓰레기더미부터 치우지 못한다면 용역 결과물은 서랍 속 보고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체계적인 관리·보호·전시는 따로 노는 과제가 아니라 한 묶음으로 움직여야 하는 과제다.

수장고 정상화가 최우선: 항온항습 설비를 근본적으로 교체·보수하고, 옥외에 방치된 전석들을 안전한 보관처로 즉시 옮겨야 한다. '임시'가 1년 넘게 이어지는 상황부터 끝내야 한다.

정기 청소·환경 정비: 통제구역이라는 이유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현장 점검과 쓰레기 수거 체계를 갖춰야 한다.

관리 공백 해소: 야간·새벽 시간대의 무인 감시 체계(CCTV 사각지대 해소, 경보 시스템 등)를 갖춰 24시간 관리 공백을 없애야 한다.

처벌 실효성 확보: 있으나 마나 한 과태료 조항이 아니라, 실제 적발·부과 사례를 만들어 무단출입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야 한다.

자연침식 대응: 해안 화석에 대한 정기적인 상태 모니터링과 보존 처리(필요시 보호덮개, 배수 개선 등) 검토가 필요하다.

연구용역 실행: 단기 과제부터 예산과 일정을 못박아 조속히 착수하고, 중장기 복합센터 조성도 로드맵을 공개해 추진해야 한다.

10만 년의 흔적, 몇 년의 방치로 사라질 수 있다

2004년 발견, 2005년 지정, 2021년 수장고 신축까지—이 화석 지대를 지키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은 항온항습기 고장 하나로, 관리 인력의 근무시간 하나로, 무심코 넘은 울타리 하나로 그리고 누군가 버리고 간 쓰레기 하나로 번번이 흔들려 왔다.

10만 년을 버텨온 발자국이 관리 부실 속에 단 몇 년, 어쩌면 단 하루의 무관심만으로도 형체를 잃을 수 있다. 자연침식이야 인간이 완전히 막을 수 없는 영역이라 해도, 방치된 쓰레기와 곰팡이 핀 수장고, 형식만 남은 통제 만큼은 의지만 있다면 지금 당장 바로잡을 수 있는 문제다.

관계 당국은 지금이라도 눈앞의 환경 정비와 수장고 정상화에 나서는 동시에, 이미 손에 쥔 연구용역 결과를 서랍 속에 묵혀두지 말고 단계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아시아 최초, 세계 8번째로 확인된 인류의 발자국이 현수막 뒤편에서, 방치와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지워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계해변 사람발자국 화석지대
▲사계해변 사람발자국 화석지대 제주도
#인류화석 #제주도 #세계자연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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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이어가며 세계를 둘러보며 눈 앞의 지역을 살리려 대안을 찾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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