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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잃은 나에게 "에베레스트 가자"는 친구

한계를 짓지 않고 내가 가 보지 못한 세계를 함께 가자고 말해주는 사람들

등록 2026.08.05 16:20수정 2026.08.0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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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편과 울산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 만난 수국.
남편과 울산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 만난 수국. 이희진

일 년에 두 번, 방학 시즌이면 만나는 벗들이 있다. 각자의 삶에 느닷없이 끼어든 변주곡에 정신없이 장단을 맞추며 살다가 잠시 일시정지 버튼이 켜지는 그런 순간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 시간을 위해 두 계절을 쉼 없이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과의 하룻밤은 현실과 비현실, 그 경계 어디쯤에서 빛난다. 마흔이 넘어도 이렇게 소녀처럼 웃으며 무해하게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사이가 또 있을까?

만나야 쏟아지는 속의 것들이 있다. 절대적인 내 편들 앞에서는 시간이 두 배로 빠르게 흐른다. 얼룩져 접어두었던 묵은 마음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함께 까르르 웃고, 때때로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제 일처럼 가슴을 치다가 온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 구석구석이 말갛게 씻기는 기분이 든다.


올해 2월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나눴다. 최근 오마이뉴스에서 보내 주셨던 점자 명함도 자랑처럼 꺼내 보여 주었다. 내 어깨도 으쓱해졌다. 평소에도 내 글을 좋아했던 한 친구가 말했다.

"난 너와 함께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싶어."

언젠가는 '한계 없는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할 수 있도록 내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때 다른 친구가 웃으며 대화를 거들었다.

"동네 뒷동산만 올라도 체력 방전되는 애한테 그게 무슨 이야기야? 히말라야 배경으로 인증샷 하나만 찍으면 되지."

그 말에 모두가 한바탕 까르르 웃었다. 끝나지 않는 슬픔도, 영원히 머무는 기쁨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어른이 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정신없이 이어지던 삶에도 드물게 쉼표가 찍히는 날도 오지 않던가? 그러니 맡겨진 생의 역할 앞에 지나친 과몰입 금지를 당부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에베레스트를 생각했다.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감각을 내 손끝에 닿게 하고 싶은 친구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심장 가까운 그곳이 오래도록 뜨거웠다.

시력을 잃은 뒤 나는 안전한 길, 익숙한 곳을 먼저 찾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세상, 낯선 길 앞에서는 어쩐지 늘 마음부터 주춤해지곤 했다. 그런 내게 친구의 말은 단순히 높은 산을 오르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 많은 풍경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 앞에 서고, 더 깊이 숨 쉬어 보자는 초대처럼 들렸다.


남편이 계절마다 달라지는 정원 앞으로 나를 데려가는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봄이면 남편은 벚꽃길 앞에 나를 세운다. 낮게 드리운 가지를 조심스레 내 쪽으로 기울여 꽃잎을 만져 보라고 한다. 겨울을 뚫고 나온 보드라운 생명력이 손끝에 닿으면 이상하게 또 그렇게 용기가 생긴다.

오월의 장미정원 앞에서 꽃봉오리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헤아리고,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서 흐드러지게 핀 초여름의 수국도 손끝으로 만져 보게 한다. 남편은 부지런히 계절을 내 앞에 데려온다. 눈으로 담지 못하는 계절을 나는 손끝으로 기억하며 산다.

좋은 친구는 내 한계를 대신 정하고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세계를 함께 가는 사람이다. 무리하지 말고 안전한 거기에만 있으라고 울타리를 쳐 주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괜찮으니 더 멀리, 더 높이, 더 널리 가 보자고 다정하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그렇게 사랑은 두려움으로 막혀 있는 담을 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어쩐지 에베레스트는 내게 도전해야 할 산이기보다 끝내 살아내야 할 거대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과 더 멀리 가 보는 여행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느리게 걷다가, 좀 더 천천히 머물며, 손끝에 닿는 모든 것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다 오고 싶다. 나는 그렇게 눈보다 손끝으로 세상을 기억하는 여행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살아감 #좋은친구 #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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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주부이자 선생님, 글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 어둠 속에서도 가장 찬란한 빛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생의 주인공. 다정한 이웃들과 동행하는 반딧불 라이프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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