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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지 않는 아이들, 우리는 어떤 시민을 키우고 있나?

권리는 가르치면서 책임은 대신해 준 학교… 미래 시민의 책무성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등록 2026.08.05 09:49수정 2026.08.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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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교실
초등학교 교실 김대성(Ai생성)

학교 복도를 걷다 보면 바닥에 휴지나 과자 봉지가 떨어져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여러 학생이 그 옆을 지나가지만 좀처럼 줍는 아이는 없다. 화장실 역시 마찬가지다. 변기 주변에 휴지가 흩어져 있고 세면대에는 물과 비누가 그대로 남아 있어도, 자신이 사용한 공간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제가 버린 게 아닌데 왜 제가 주워야 해요?"

학교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 틀리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반드시 주워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으로 쓰레기를 외면한다면 공동체의 공간은 누가 돌볼 것인가.

공교육의 위기는 반드시 거대한 사건으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용한 자리를 정돈하지 않는 행동,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보고도 외면하는 태도, 공공시설을 함부로 사용하면서도 누군가 치워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에서 공동체의 균열은 시작될 수 있다.

학교에서 사라진 '내가 해야 할 일'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직접 준비해야 하는 학습 준비물이 크게 줄었다. 학교가 대부분의 준비물을 제공하고, 교사가 수업 전에 필요한 물품을 정리해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숙제도 학생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최소화하는 추세다.


교실 청소 역시 비슷하다. 학생이 청소에 참여하더라도 자신의 책상 주변을 간단히 정리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복도와 특별실, 화장실 등은 청소 노동자가 담당하고, 교실의 마무리 정리는 담임교사가 떠맡기도 한다.

학교가 학생을 세심하게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다. 가정환경에 따라 준비물과 학습 기회가 달라지는 문제를 줄여야 하며, 학생에게 위험하거나 과도한 노동을 맡겨서도 안 된다.


그러나 지원과 대행은 다르다.

학생이 해야 할 일까지 학교와 교사, 학부모가 모두 대신해 주기 시작하면 학생은 자신이 학교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기 어렵다. 학교는 학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학생은 그 서비스를 받는 사람으로만 남게 된다.

배움을 준비하는 일, 사용한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 자신의 자리를 닦는 일, 부족한 학습을 스스로 보완하는 일은 공부와 무관한 잡무가 아니다. 배움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책임지는 교육의 일부다.

권리는 배웠지만 책임을 실천할 기회는 부족했다

학생의 인권은 마땅히 보호돼야 한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모욕당해서는 안 되며, 부당한 체벌과 통제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학생 인권의 보장은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교육의 기본 원칙이다.

문제는 권리가 강화된 것 자체가 아니다. 권리와 함께 가르쳐야 할 책임을 학교가 충분히 교육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최근 초·중등교육법에는 보호자가 자녀를 교육하고 학교 교육활동에 협력할 권리와 책임을 이행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학부모를 학교에 요구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교육을 함께 책임지는 주체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학생의 권리와 책무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권리와 책임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자신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학생은 다른 학생의 학습권도 존중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책임도 있다. 안전하고 쾌적한 교실에서 생활할 권리가 있다면 그 공간을 함께 돌볼 책임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학교에서는 학생의 책임을 강조하는 순간, 학생을 통제하거나 과거의 권위적인 교육으로 되돌아가려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일부 학부모는 "아이에게 왜 청소를 시키느냐", "학교에 공부하러 갔지 봉사하러 갔느냐"고 항의한다.

그 결과 학교는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학생에게 역할을 맡기지 않게 된다. 교사는 학생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학부모는 자녀가 겪어야 할 작은 불편과 실패까지 제거한다. 그렇게 우리는 학생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는 노동 전가가 아니라 공동체 교육이다

"학생들에게 다시 청소를 시켜야 한다"고 말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반론이 있다.

"청소 노동자의 일을 학생에게 떠넘기자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학생에게 위험한 약품을 사용하게 하거나 비위생적인 환경을 정비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학교 시설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학교와 교육 당국의 책임이다. 학생의 나이와 발달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청소 역시 교육이 아니라 노동 전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적인 시설 관리와 자신이 사용한 공간을 정돈하는 활동은 구분해야 한다.

자신의 책상과 사물함을 정리하고, 사용한 학습 도구를 제자리에 놓고, 학급 친구들과 함께 교실 바닥을 쓸고,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일까지 모두 청소 노동자에게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함께 학교를 청소하는 시간을 운영하고, 학생들에게 당번과 학급 역할을 맡기는 문화가 널리 정착돼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도 일본의 기초교육을 소개하는 자료에서 대부분의 학교가 학생들이 협력해 학교를 청소하는 시간을 두고 있으며, 학생들이 다양한 학급 당번을 맡는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일본 교육을 그대로 따라 하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에게 자신이 사용하는 공간을 스스로 돌보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교육적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청소는 단순히 먼지를 없애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배우는 과정이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경험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이해하는 교육이기도 하다.

매일 깨끗한 교실만 이용한 학생은 그 공간이 저절로 깨끗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반면 직접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어본 학생은 쓰레기 하나를 치우는 데에도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인 1역'은 작은 민주주의다

과거 학교에서는 학생마다 '1인 1역'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칠판을 정리하는 학생, 창문을 확인하는 학생, 학급 문고를 관리하는 학생, 우유나 급식을 정리하는 학생 등에게 작은 역할을 부여했다.
운영 방식에 따라 형식적인 활동이 되거나 일부 학생에게 일이 편중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교육적 의미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갖는다는 뜻이다. 아무런 역할도 맡지 않은 학생에게 공동체 의식만 갖추라고 요구하기는 어렵다.

민주시민교육도 마찬가지다. 선거의 원리와 헌법의 조항을 외운다고 민주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급 규칙을 함께 만들고, 자신이 동의한 규칙을 지키며, 맡은 역할을 수행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로 해결해 보는 과정에서 시민성이 형성된다.

학생의 주도성과 자율성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내버려 둔다고 자라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며, 실패했을 때 다시 시도해 보는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무엇이든 대신해 주는 교육의 역설

오늘날 많은 부모는 자녀가 힘들거나 실패하는 모습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준비물을 잊으면 학교로 가져다주고, 과제를 하지 못하면 함께 해결하며, 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부모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처리한다.

학교도 다르지 않다. 학생이 준비하지 않으면 교사가 준비하고, 학생이 정리하지 않으면 교사가 정리한다. 학습이 부족하면 별도의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정작 학생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책임은 충분히 묻지 못한다.

물론 학생의 어려움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에게 같은 수준의 자립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 장애가 있거나 정서·행동의 어려움을 겪는 학생, 가정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학생에게는 더 세심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도움의 목적은 학생을 계속 의존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학생이 조금씩 자신의 삶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어야 한다.

학생이 할 수 있는 일까지 어른이 모두 대신해 주는 것은 친절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생에게 성장의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될 수 있다.

무책임한 학생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책임질 기회를 주지 않은 교육이 무책임한 학생을 길러낸 측면도 돌아봐야 한다.

미래 시민의 책무성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되라고 말한다. 창의적인 인재, 민주 시민, 세계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자신의 자리조차 정리하지 않는 학생에게 지구 환경을 책임지는 세계 시민이 되라고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 학급에서 맡은 작은 역할도 수행해 보지 않은 학생에게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민의 책무성은 성인이 되는 순간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내가 사용한 자리를 닦는 경험, 복도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경험, 친구들과 역할을 나누고 끝까지 수행하는 경험, 공동으로 만든 규칙을 지키는 경험이 쌓여 시민의 태도가 된다.

따라서 학교는 학생을 보호받고 교육받는 존재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학생은 학교를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의 주체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학생에게 책임을 가르치는 것은 권리를 축소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학생을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일이다. 자신에게도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이제 학생들에게 작은 책임을 돌려주어야 한다. 자신의 학습을 준비하고, 사용한 공간을 정리하고, 학급의 역할을 맡으며, 잘못한 행동의 결과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공교육의 회복은 거창한 정책 구호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내 자리를 스스로 정리하는 아이, 다른 사람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는 아이, 복도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 아이를 길러내는 것. 그런 작은 교육의 회복에서 공교육의 신뢰도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공교육회복 #민주시민교육 #학교청소 #학생책무성 #별의별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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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중심 교육을 고민하는 초등학교 교감이자 교육 칼럼니스트. 교육청 장학사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정책과 학교 현실의 간극을 분석하며, 다양성 교육·교육활동 보호·공교육 회복을 주제로 미래교육의 방향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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