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철 만화가의 작품들 〈까대기〉(2019), 〈제철동 사람들〉(2022), 〈힌남노〉(2024), 〈다시 전태일〉(2026, 보리)
보리출판사
'활동가' 이종철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만화가가 어떻게 해서 '만화가 이종철'이 되었는지에 대해 고백하는 서사가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해 이종철만의 작가 탄생 서사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책의 뒷 부분에 적힌 '작가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선언이 적혀 있다.
"스스로를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족할지라도 세상이 조금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만화라는 친숙하고도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는 '활동가'이고 싶습니다."(278)
여기서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활동가'가 되고 싶다는 고백은 만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자, 앞으로 자신이 어떤 만화를 그릴지 선언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 텍스트 자체는 만화가 이종철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 없을뿐더러, 이 선언을 통해 과거의 작품을 다시 읽을 수 있다.
그의 만화에서는 노동자의 모습이 자주 꿈틀거린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공단 주변에 식당을 차렸을 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은 많은 노동자를 보며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곳에서 고된 일을 마친 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노동자의 모습은 그에겐 하나의 정겨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런 살결이 작품에 반영된다. 개인적으로도 만화가 자신도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만화가를 꿈꾸기 위해 생계형 노동을 했으니, 그때 만난 택배 상하차 노동자들과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가랑비에 젖은 어깨처럼 작품에 스며들게 된다.
우연히 고향을 찾았을 때, 태풍 힌남노를 마주하면서 서로 돕고 의지했던 마을 사람들의 끈끈한 우정이 작품 속에 재현된 것 역시 그가 직접 경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경험이야말로 힘없는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과 주변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에겐 식당에 모여든 또 다른 노동자'들'을 본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그의 만화에는 '노동자'들이 다양한 결의 형태로 등장한다.
<다시 전태일>
이런 맥락에서 <다시 전태일>은 자신의 창작이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지 고백한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종철의 이번 신간은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인 인물인 노동자 전태일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전태일만을 만화로 재구성하지는 않는다. 노동자 전태일을 충분히 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배치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서 <전태일 평전>과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다루고, 이 책을 읽은 충격으로 감수성이 재배치될 수밖에 없었던 시절을 담는다.

▲ 〈다시, 전태일〉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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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경험만으로 '만화가 이종철'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그 역시 동시대 만화가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인기 있는 로맨스, 학원물, SF, 무협 등과 같은 만화를 계획해 유명인이 되기를 바랐다. 실제로 작품에서는 자신의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로맨스 만화를 연출해 공모전에 투고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낙방 하게 되지만, 만화 지망생들처럼 당대의 만화 주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만화가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냉정히 쳐다보게 된다. 유행이 아닌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만화적 내용과 형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어깨 너머로 경험할 수 있었던 식당에 모여든 노동자들과 이모들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꿈꾸기 위해 서울의 작은 원룸에서 노동하며 버티는 자신과 닮은 사람들의 표정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에게 그것은 억지로 짜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잘 지을 수 있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만화가 이종철은 자신의 색을 찾아 나선다.

▲ 〈다시, 전태일〉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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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자리에 전태일이 있었다. 작품 초반에 전태일 동상 앞에서
"나도 살 수 있을까? 당신처럼...(8)"이라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고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태일은 당대에 온몸을 던져 노동자들 편에서 함께한 영웅이었다. 그를 응시하면서 영웅은 되지 못하더라도, 단순한 만화가가 아닌 '활동가 이종철'로 남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이 그의 예술 세계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동시대의 플랫폼 노동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작가 탄생 서사와 선언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 시대 노동의 표정도 담는다. 당대 노동의 풍경은 과거의 노동 현장과 다르다. 이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기술 발전으로 수많은 직종을 중개 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많은 노동자가 이 현장에서 일한다.
그들은 과거 전태일이 놓였던 시대처럼 노동법과도 노동조합과도 멀어져 있다. 물론, 이들 역시 함께 모여 목소리를 높이지만, 미래의 노동은 시대적 기술로 인해 노동자끼리 뭉치는 것을 애초에 불가능하게 만든다. 오히려 멀리서 무한 경쟁을 하도록 부추긴다.
이런 시대 노동의 풍경을 만화가 이종철이 <다시 전태일>을 통해 다룬다. 동갑내기 친구 동진을 통해서는 부조리한 산업 재해에 대해서 다루고, 학과 선배인 기우 누나를 통해서는 포괄 임금제에 대해서 다룬다. 마지막으로 안타깝게 이 계절에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 1994년생 고 김용군을 통해서 '우리'를 이야기한다. 이 시작에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266~267)라고 외쳤던 전태일이 있다.
독자들에게 이 텍스트를 추천한다.
다시 전태일
이종철 (지은이),
보리,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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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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