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운대 석각을 재현한 비석
여경수
지난 2일에는 여름 휴가로 가족과 함께 부산 해운대를 방문했다. 폭염이 지속되는 날씨였다.
신라시대 사람인 최치원이 이곳에 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고 바위에 '해운대'라는 글씨를 새겼는데, 이 이름을 따 훗날 이곳에 정자가 세워지면서 오늘날까지 해운대로 불리고 있다. '해운'은 최치원의 자(字)이다. 동백섬 내에는 한자로 '해운대'라고 새겨진 석각이 있다.
나는 가족들이 숙소에서 쉴 때 해운대가 있던 자리까지 산책을 갔다. 오랜 세월 동안의 비바람을 이겨내고, 여전히 그 글씨가 있었다. 해운대로 불렸던 정자는 사라졌지만, 석각이 남아 있다. 동백섬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석각을 모조한 것을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다.
조형물은 길이 2.3m 폭 0.6m 크기로 원형을 그대로 재현했다. 나는 며칠 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개최된 전시회에서 암각으로 남은 최치원의 글씨를 볼 수 있었다. 전시의 이름은 '고운(孤雲), 글씨를 새기다'였다. 고운 역시 최치원의 또 다른 자(字)이다.

▲ 돌아와요 부산항 노래비
여경수
동백섬까지 가는 길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와도 마주쳤다. 동백섬은 2005년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개최된 장소이다. 당시 누리마루 APEC 하우스를 건립했다. 벌써 20년 전 일이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각국의 정상들을 일일이 맞이하던 중계 방송을 시청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외국 정상들이 부산을 찾았던 장면이 나에게는 경이로웠다.
저녁에 찾았을 때는 누리마루 하우스를 비추는 조명이 있어, 동백섬이 더욱 밝았다. 해운대 석각 원본도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부산에서 해운대 지역은 신시가지로 발전하여, 하나의 자치구의 이름이 되었다. 부산의 읍치가 있던 동래구, 근대 시기에 발전한 중구, 동구, 남구와는 달리 해운대구는 현대에 발전된 지역이다. 오늘날에는 현대적인 호텔들과 주상복합아파트들이 백사장을 에워싸듯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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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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