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도역
박영호
남원은 참으로 오래된 도시다. 통일신라시대의 '9주 5소경'은 다들 들어보았을 터이다. 내 고향인 원주도 북원경이라 아주 익숙하다. 중원경(충주), 북원경(원주), 서원경(청주), 금관경(김해)은 모두 이름이 바뀌었지만, 남원경은 여전히 '남원'이라는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여행 내내 오래된 것들과 자주 만났다. 저녁을 먹으러 우연히 들른 중국집은 1909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역사가 무려 117년에 달한다. 검색에도 나오지 않는 집인데, 처음 맛본 물짜장의 맛이 단연 으뜸이다.
남원 하면 떠오르는 광한루를 품은 광한루원을 둘러볼 때도, 커다란 팽나무를 비롯해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고목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저녁을 먹고 찾아가길 참 잘했다. 거리를 밝히는 청사초롱이 운치를 더한다. 때마침 광한루가 국보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현수막도 눈에 들어왔다.

▲ 팽나무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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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사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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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 오는 광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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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한루원 완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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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은 화엄사에 다녀왔다. 숙소에서 이튿날 일정으로 서도역과 마찬가지로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인 천은사를 검색하다가, 구례에 있다는 말을 보고 문득 화엄사가 떠올랐다. 1995년 친구와 지리산을 오를 때, 화엄사에서 출발해 내원사로 내려왔던 기억이 스쳤다. 그때는 그저 지나쳐 버린 탓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찰인 줄 미처 몰랐다.
때마침 온통 붉게 피어난 배롱나무꽃이 천년 세월을 훌쩍 넘긴 국보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돌탑이나 석등은 다시 천년이 지난 후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도 배롱나무가 지금처럼 붉은 꽃을 피워내면 좋으련만, 요새의 심상치 않은 기후 변화를 떠올리면 은근한 걱정이 앞선다.

▲ 오르는 길에 문 안팍에 핀 배롱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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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카메라를 들게 하는 배롱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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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장하는 손처럼 보이는 '화엄원융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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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황전은 '깨달은 임금'이란 뜻으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숙종 28년(1702년)에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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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엄사 각황전 앞에 있는 석등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 조사가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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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통전 앞에 선 사자탑도 677년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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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국보는 모두 몇 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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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이후 인조 14년(1636년)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화엄사를 중창하면서 지금의 보제루를 다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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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다고 건너뛰면 후회하는 각황전 뒷산에 있는 '사사자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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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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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구례(求禮)'는 '예를 구한다'는 뜻으로, 백제 때 '구차례(求次禮)'로 불리던 것을 757년 신라 경덕왕 때부터 '구례'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오래된 것과 만나는 즐거움'이라는 문장으로 정돈해 본다. 천은사는 화엄사에 견주면 볼품이 없지만 천은사를 지나 성삼재에 오르는 길은 아름다운 길로 손꼽힌다고 하니 여유가 있다면 살펴보면 좋겠다. 시간이 없어서 천은사까지만 돌아보았다.

▲ 방장산 천은사, 방장산은 지리산의 옛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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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은사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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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 노닐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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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자, 지금까지 다녀본 수많은 사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고 싶다. 연일 새로운 기록을 만드는 유난히 뜨거운 땡볕과 허술한 계획으로 찬찬히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리산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살면서 화엄사만큼은 꼭 한번 다시 찾고 싶다. 그렇게 좋다는 홍매화가 붉게 피어날 무렵이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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