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어있는 빈소
이형웅
장례식장 상담실에 마주 앉으면 직원은 대개 두 가지를 묻는다. "빈소는 몇 평으로 하시겠어요?" 아니면 "무빈소로 진행하시겠어요?" 하나는 빈소를 사용할 경우 규모를 정하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빈소를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를 묻는 말이다. 얼핏 단순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두 질문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크기'를 고르는 질문이다. 후자는 '결핍'을 확인받는 질문처럼 들린다. 실제로 상담을 받아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빈소로 하겠다"고 답할 때 묘하게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이 적지 않게 나온다. 조문객을 받을 생각이 애초에 없었는데도,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뭔가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기자가 이 질문에 주목한 이유는 하나다. 이름 하나가 왜 사람들의 선택과 마음가짐까지 바꾸는 것일까.
'무(無)'라는 글자가 하는 일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답이 나온다. 무자격, 무허가, 무보험, 무면허. '무'로 시작하는 말은 예외 없이 결핍을 가리킨다. 원래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 접두어가 붙는 순간, 뒤에 오는 명사는 자동으로 '기본값에서 뭔가 빠진 상태'가 된다.
'무빈소'도 이 문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단어가 통용되는 순간, 빈소를 차리는 쪽이 은연중에 정상이고 기준이 되며, 빈소 없는 쪽은 거기서 하나를 뺀 파생형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런데 정작 실제 사정은 그렇지 않다. 빈소가 필요한지 아닌지는 조문객이 몇 명 올지, 가족이 접객을 원하는지에 달린 순전히 상황적인 문제다. 어느 쪽이 '기본'이고 어느 쪽이 '결핍'인지는 원래 정해져 있지 않다. 이름이 그 구분을 임의로 만들어낸 것뿐이다.
만약 이 방식에 처음부터 '가족장'이라는 이름이 쓰였다면 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가족장은 원래 있던 말이고, 그 어디에도 결핍의 뉘앙스가 없다. 그런데 왜 하필 결핍을 떠올리는 이름이 이렇게 널리 자리를 잡았을까.
가격표 옆에 나란히 놓아 보니
취재 과정에서 장례식장과 상조업체 여러 곳의 상품 내용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봤다. 빈소 없는 가족장 상품은 대체로 100만~200만 원대에 형성돼 있다. 반면 빈소가 포함된 일반 장례 상품은 조문객 접대 비용까지 더해져 1,0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흔했다. 같은 용품, 같은 의전, 같은 리무진을 쓰면서도 가격은 최대 10배 가까이 벌어진다.
이 정도로 가격 차이가 큰 두 상품을 한 회사가 동시에 팔아야 한다면,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저가 상품의 이름이 그저 '가족장'이었다면, 소비자는 순수하게 필요성만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조문객이 없으면 저가를, 있으면 고가를 고르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름이 '무빈소'가 되는 순간, 사정이 달라진다. 소비자는 "이 선택엔 뭔가 빠져 있다"라는 인상을 받고, 그 인상은 "혹시 부모님께 부족하게 해드리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불안은 자연스럽게 "그래도 빈소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결론으로 미끄러진다. 상담 직원이 강권하지 않아도, 이름 하나가 이미 소비자를 더 비싼 쪽으로 슬며시 밀어놓는 셈이다.
이것이 누군가 회의실에 모여 의도적으로 설계한 결과인지, 관행이 굳어지며 우연히 만들어진 결과인지는 취재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름의 효과와 가격 구조가 지나치게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오래된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방식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도 이 인상을 뒷받침한다. 과거 무빈소 장례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경우였다는 증언이 업계에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무빈소'라는 이름에 배어 있는 이 오래된 이미지,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택하는 방식이라는 인상은 쉽게 씻겨나가지 않는다.
그러니 조문객을 받을 생각도, 접객이 필요하지도 않은 가족이 유독 이 이름 앞에서 한 번 더 망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형편이 어려워 보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실제로는 필요 없는 빈소를 예약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한마디가 되곤 한다.
다시 던져야 할 질문
정리하면 이렇다. 빈소는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을 때 안 쓰는 것이지, 있고 없음 자체가 장례의 완성도를 가르는 잣대가 아니다. 지금 이 시장에서 진짜로 물어야 할 질문은 "빈소 없는 장례를 택해도 괜찮은가"가 아니라 "왜 하필 이 선택에만 결핍을 뜻하는 이름이 붙었는가"다.
이름 하나 바꾸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실 의자에 앉아 "무빈소로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듣는 순간, 이미 그 대답의 절반은 이름이 정해주고 있다. 이름을 다시 따져 묻는 일이 사소해 보여도, 그것이 결국 불필요한 지출로부터 지갑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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