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거리를 걷다가 동료에게 안겨준 것

가객의 흔적과 추억이 깃든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을 걸으며

등록 2026.08.06 11:40수정 2026.08.0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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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벽면을 온통 녹색으로 채운 능소화 대구 대봉동의 명소인 능소화 폭포 건물. 꽃은 많이 졌지만 녹음이 우거진 벽면이 한여름의 청량함을 전해준다.
건물 벽면을 온통 녹색으로 채운 능소화 대구 대봉동의 명소인 능소화 폭포 건물. 꽃은 많이 졌지만 녹음이 우거진 벽면이 한여름의 청량함을 전해준다. 홍영미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지난 5일,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현직에 있을 때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옛 동료와의 점심 약속이었다. 서둘러 나선 길, 동료의 아파트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있으니 살랑 바람이 불어와 한여름의 열기를 잠시 식혀주었다. 근처 한정식집에서 정갈한 밥상을 마주하고 지나온 이야기꽃을 피우니 정겨움은 배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기러 나온 길, 건물 한 벽면을 온통 녹색 잎으로 채우고 있던 능소화 건물(대봉동 능소화 폭포)에 다다랐다. 한창 피어났을 전성기의 화려함을 짐작하며 서로의 사진을 남겼다. 돌아보니 그 뒤편 골목이 바로 대구 중구 대봉동의 명소, '김광석다시그리기길(김광석 거리)' 일대였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이었지만,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오랜 기억을 품은 길

 기타와 한 그루 나무로 형상화된 김광석 벽화 "나무처럼 살던 사람, 영원히 우리 곁에 서 있다"는 문구처럼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객 김광석의 모습을 담은 벽화.
기타와 한 그루 나무로 형상화된 김광석 벽화 "나무처럼 살던 사람, 영원히 우리 곁에 서 있다"는 문구처럼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객 김광석의 모습을 담은 벽화. 홍영미

이 골목이 처음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닿던 화려한 거리는 아니었다. 대봉동 방천시장은 원래 가수 고 김광석이 1964년 태어난 출생지다. 비록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서울 창신동으로 이사를 가며 어린 시절 대부분을 대구 밖에서 보냈지만, 방천시장은 그의 뿌리가 시작된 장소였다.

2010년부터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와 지자체의 도시 재생 사업, 그리고 지역의 젊은 문화예술인들이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쇠퇴해 가던 골목 350m 구간에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한 벽화를 하나둘 그리고, 다양한 예술적 구조물을 설치하면서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SNS를 타고 쓸쓸하면서도 다정한 포크송의 분위기와 아날로그 감성이 입소문을 타며 대구의 명소로 거듭났다.

내게도 이 거리와의 인연은 꽤 깊다. 40대 시절, 학교에서 늦게까지 남아 야근을 할 때 텅 빈 사무실을 채워주던 유일한 벗이 바로 김광석의 목소리였다.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일어나>를 듣다 보면, 그의 목소리에 담긴 깊은 슬픔이 역설적으로 가슴 밑바닥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곤 했다.

한동안 이 거리를 여러 번 찾아왔다. 남편과 아들의 손을 잡고 걸었던 날도 있었고, 혼자 걸었던 날, 모임 동료들과 웃음꽃을 피우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 중에서도 가장 가슴 깊이 남은 것은 엄마, 언니와 함께 온 날이다.


그날 우리는 태어나서 가장 많이 웃었다. 처음으로 미용실에 엄마를 모시고 가서 머리를 예쁘게 손질하고, 화장까지 해드렸던 날. 엄마는 은근히 좋아하시면서도 카메라를 들고 "엄마, 이렇게 포즈 취해봐!" 요구하는 두 딸의 등쌀에 귀찮은 척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내심 기분 좋게 딸들의 요청을 다 들어주던 그때 엄마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엄마는 가수 김광석을 잘 몰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골목에서 두 딸과 함께 세상을 다 얻은 듯 실컷 웃었던 그 한낮의 기억 만큼은 엄마의 마음에도 따스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니 참았던 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진다.


새로운 벽화로 거듭난 김광석 거리

오랜만에 찾은 김광석 거리는 반가운 변화로 가득했다. 벽화마다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과 작품 해설이 꼼꼼하게 붙어 있어, 그림을 감상하는 깊이가 한결 달라졌다. 특히 나를 격하게 반기듯 꽂혀 있던 '김광석과 함께하는 매스투어(Math Tour)' 리플릿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과거 대구수학교육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이 매스투어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으로 직접 참여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매스투어는 내가 자문하던 당시보다 훨씬 더 완성도 높게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김광석길 안내소에 비치된 매쓰투어 및 벽화 탐방 리플릿. 거리를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토리와 수학 미션으로 탐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김광석과 함께하는 Math Tour' 리플릿과 벽화 다른 그림 찾기 리플릿.
김광석길 안내소에 비치된 매쓰투어 및 벽화 탐방 리플릿. 거리를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토리와 수학 미션으로 탐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김광석과 함께하는 Math Tour' 리플릿과 벽화 다른 그림 찾기 리플릿. 홍영미

거리 곳곳에 배치된 QR코드를 찍으면 재미있는 수학 문제들이 미션으로 등장한다. '김광석 길 관광객 수', '그래피티 작품과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 C(Choice)', '사랑의 자물쇠 개수', '기타 줄과 화음의 원리', '벽화 속 해상도', '석이네 포차',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등 8가지 미션을 해결해 나가며 완주하는 형태다.

이외에도 골목을 순례 하듯 도장을 찍는 '스탬프 투어'와 벽화 속 숨은 재미를 찾아보는 '벽화 다른 그림 찾기' 프로그램도 잘 마련되어 있어, 이를 활용한다면 한층 더 역동적이고 색다른 투어의 재미를 더할 수 있다. 단순히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김광석의 삶과 음악, 그리고 그 안에 녹아든 다양한 스토리와 체험을 탐험하듯 즐길 수 있다.

 김광석 스토리하우스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청음실. 스토리하우스 2층 청음실에서 헤드폰을 통해 그의 음반과 생전 노래를 들으며 잠시 추억에 젖을 수 있다.
김광석 스토리하우스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청음실. 스토리하우스 2층 청음실에서 헤드폰을 통해 그의 음반과 생전 노래를 들으며 잠시 추억에 젖을 수 있다. 홍영미

거리 남쪽 끝에 다다르자 2017년 개관한 '김광석 스토리하우스'가 나왔다. 동료의 권유로 처음 들어선 그곳 1층에는 김광석의 생전 유품과 사진, 친필 메모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2층에는 그의 음악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는 음반과 헤드폰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은 것은 딸 소연이를 향한 그의 메모들이었다. 해외에 나가서도 딸이 보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던 고백이 적힌 수첩 쪽지, 그리고 딸과 함께 보낸 행복한 순간들이 영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던 위대한 가객이기 전에, 한 아이를 온 마음으로 사랑했던 '아버지' 김광석의 모습 앞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전히 아름다운 거리를 나서며

"나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허전함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를 치열하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나."

그가 생전에 남긴 고독한 메모처럼, 그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저 깊은 심연의 슬픔과 위로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스토리하우스에서 그의 노래와 이야기를 마주한 뒤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며 한결 더위가 누그러져 있었다. 골목 안 꽃 무인 판매점에서 예쁜 장미와 거베라, 노란 해바라기 한 다발을 샀다. 동료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내일 만날 지인에게 선물할 꽃을 품에 안은 채 다시 거리를 걸었다.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무인 꽃 판매점 거리를 걷다 발견한 무인 꽃집에서 장미와 거베라, 노란 해바라기 한 다발을 사서 동료에게 마음을 전했다.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무인 꽃 판매점 거리를 걷다 발견한 무인 꽃집에서 장미와 거베라, 노란 해바라기 한 다발을 사서 동료에게 마음을 전했다. 홍영미

1995년 학전 소극장에서 라이브 공연 1000회를 달성하며 "그저 기타 줄 한두 번 튕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라며 소탈하게 웃던 사람. "노래로 나라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아픈 마음을 위로할 수는 있을 것"이라며 우리네 삶을 보듬어주던 가객. 비 오듯 쏟아지던 땀방울 속에서도 그의 노래는 한없이 마음에 닿아 깊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노래로 만들어 선물하고, 이제는 우리 곁에 영원히 서 있는 그를 떠올리며, 우리는 여전히 뜨겁고도 아름다운 김광석 거리를 나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김광석거리 #대봉동가볼만한곳 #김광석과함께하는매쓰투어 #김광석스토리하우스 #김광석거리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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